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Jan 04. 2019

가끔 엄마의 위로가 필요해

우리의 그늘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한때 엄마의 자궁에다 집을 짓고 살았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공간이 맨 처음의 그 집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집을 떠나오는 순간 우리의 삶이란 것은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첫 번째 집이 마지막 집이 될 때도 있고, 그 집에서 나오는 순간이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이 될 때도 있다. 기억에도 없는 그 안락함을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불안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한 몸에서 분리되어 다른 몸이 되면서부터 겪어야 했던 비극들이 점점 많아지게 된 것을 보면.

엄마는 내게 비극적인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희극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엄마의 상처가 커질수록 그 눈에 아이의 존재는 들어오지 않게 된다. 무능한 남편 때문에 늘 돈을 좇아가야만 했던 그의 발은 바쁘고 힘들기만 했으니 다른 이를 챙길 정신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친구들은 김밥을 싸는 엄마 옆에서 김밥 꽁다리를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으레 그 날 아침 온 식구의 메뉴는 김밥이 된다. 엄마가 있는 주방은 늘 햇살로 가득 찰 거란 상상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오늘 하루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떠들 수 있다는 건, 일상의 아주 작고도 큰 기쁨일 것이다. 좋았던 일, 나빴던 일을 엄마에게 모두 다 토해놓고 나서 먹는 밥은 상처에 발라주는 연고이자 속병을 낫게 하는 치료제 정도가 아닐까.     


친한 후배는 집에 가면 항상 엄마가 없었다고 했다. 혼자 말하고, 혼자 놀고, 혼자 밥을 먹으면서 자신은 먼 훗날 엄마가 되면 반드시 다른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때의 다짐대로 그녀는 집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자신이 미처 받지 못 했던 애정을 아이에게 주고자 노력한다. 유년에 뚫려버렸던 큰 구멍을 그렇게 스스로 메우려고 노력하면서.     


나도 집에 가면 혼자 놀 때가 많았다. 엄마는 시내에서 장사를 하느라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곤 했다. 나보다 한 참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그녀에게 엄마라는 역할은 무겁기만 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소풍 때 김밥을 싸가 본 적이 없다. 늙은 아버지가 싸다주는 맨 밥에 반찬이 전부였다. 딱 한번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던 날 엄마가 생애 처음으로 김밥을 싸 준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김밥을 전혀 쌀 줄을 몰랐다. 속에 있는 김밥 재료들이 중간에 몰려있는 것이 김밥의 당연한 모습인데 엄마의 김밥은 그렇지 않았다. 속재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엄마의 김밥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편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그 김밥의 모양이 너무 부끄러워 도시락통을 간신히 가리고 먹어야 했으니.     


항상 엄마가 집에 있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일들이 정말 나에게 큰 위로가 될지 직접 겪어보지는 못 했으므로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진짜 그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되는 거냐고. 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싸준 그 김밥의 추억 하나로 힘든 세상을 버티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한을 자식도 겪는다는 것은,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나의 지난날의 고통의 역사를 떠올리는 것이기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학교나 학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험한 일을 당하면 주저하지 말고 엄마와 아빠와 상의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 항상 너를 응원하고 너를 도울 준비가 돼 있는 부모가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어른이 돼서도 내내 그런 마음이기를 바란다.     


어느 날 큰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며 하소연을 하기에 엄마가 그 마음을 대신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다음 날 도장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위로도 받았다. 둘째 아들도 엄마가 안아줘야 비로소 울음을 그친다.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가끔은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엄마한테 이르고 싶어진다. 나한테 잘못했던 사람들에게 엄마가 대신 따지고 화내주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위로만 받고 싶다.  

    

신을 믿는다. 아주 꼬맹이였을 때부터 신을 믿었지만, 그가 진짜 내 옆에 있다는 확신을 가져본 적은 별로 없다. 신이 나를 구원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기보다 구원해줄지도 모르니 일단은 믿어보는 것이 더 맞는 것일 거다. 세상에서 너무 험하게 살았는데, 죽어서는 그래도 천국에 가야할 것만 같으니. 그러나 그 신은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도 너는 나를 사랑하라고 한다. 너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너한테 일어나는 무참한 일을 그냥 뻔히 보고만 있더라도 너는 나를 믿으라고 말한다. 그런 신의 모습이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관계에 대해 절대적인 무지와 무관심을 가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건 마치 자식이 바로 옆에서 무뢰배들한테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부모가 아무 관심도 없이 지켜만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자식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지만 나중에 부모대접은 받고 싶은 심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의 부모들이 점점 이기적이고, 제 욕심을 차리고,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무조건적이 아닌 교환적인 관계로 변하는 것도 신의 모습을 닮기 위해 지극히도 당연히 그를 좇아가는 것일지도. 어떤 순간에서도 절대적으로 나는 네 편이며, 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너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을 자식에게 줄 수 없다면 자식은 어떤 푯대를 잡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려나. 그래, 내게는 들리지 않던 신의 음성을 누군가는 틀림없이 들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와는 달리 마음이 참 넓으니.      


아무리 애를 써도 들리지 않는 음성을 억지로 들어야한다거나,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수도 없는 위로를 스스로 쥐어짜내는 일이 어떤 순간에 우리에게 위로로 다가왔었는지. 그저 나는 들리는 거리에, 보이는 곳에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에게도 가끔은 그런 엄마가 필요하니까.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어른에게도 무척 버거운 일이니까.      


어쩌면 모든 위로의 부재는 우리가 우리의 첫 번 째 집을 파괴하고 나오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던 건 아닐까.     


“혹자는 신이 너무 바빠서 엄마를 보내줬다고 하지만
그런 엄마가 없는 사람에게는 도대체 누구를 보내준 것일까요?
그 한 사람이 당신 곁에 있기를 빌어요.”     





작가의 이전글 질투는 불행의 거울같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