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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Dec 19. 2018

소화되지 않는 말들이 있다

우리의 그늘에 대하여

“너는 아직도 그러고 사니?”     


친한 동생은 모범생이었다. 부모님께 맏딸로서 항상 잘 했고, 학창 시절엔 방황 한번 해 보지 않고 착실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때는 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했으니까. 어른이 돼서도 꼬박꼬박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고 결혼 후에도 빠듯한 생활비에서 양가 부모님에게 드릴 돈은 꼭 챙겨두곤 했다. 드릴 용돈이 모자랄 때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드리곤 했다.      


“오춘기가 온 것 같아.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친구가 그녀에게 던진 말은 적잖이 충격이었고, 마음이 상하기에 충분했다. 그 친구의 눈에는 동생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던 걸까, 안타까워 보였던 걸까. 대학 때나 결혼을 하고 나서나 별로 달라진 것 없이 그저 열심히 때로는 아등바등 살면서 돈 걱정을 하고, 부모님께 착한 딸로 없는 생활비를 쪼개서 용돈을 드려야만 하는 현실이 친한 친구의 눈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삶인 걸까. 너의 답답함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는 표현은 얼마나 잔인하기까지 한가.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속이 답답하다는 이유가 대단한 정의감이라도 되는 냥 쓸데없는 말들을 내뱉고는 한다.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고, 상대의 상황을 나아지게 만들 수 없으면서 내 기분만 후련하고자 하는 것은 쓸데없는 말 중에서도 가장 쓸데없는 말이다. 자신은 고구마로 막힌 가슴을 시원히 뚫겠지만 상대에겐 고구마를 목구멍 깊숙이 쑤셔 박아버리는 것이니까.     


우리 눈에는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있는 짐의 크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더라도 봐야 할 때면 꼭 심봉사 행세를 해댄다. 상대의 마음에 어떤 응어리가 있는지 알지도 못 하면서 던질 수 있는 최고로 무거운 돌덩어리를 던지고 그 파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어 하는 못된 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왜 저런 말을 해. 자신의 인생이 저주스럽다는 저 따위 말을 해 하는 거야?”     


심리학을 전공하다 보면 나중에 집단을 운영하기 위해 실습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이때의 집단은 서로가 서로를 공감하고 지지해줘야 하며 그곳에서 나눈 얘기들을 절대로 다른 곳에서 발설하지 않아야 하며 비밀로 지켜줘야 한다. 그 당시에 나는 심한 우울감으로 자살을 생각할 때였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이 저주스럽다고 말했다.      


아무리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마음속에 폭풍은 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의 속을  함부로 짐작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고, 집단 상담에서 집단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운 사람이 나의 말에 알 수 없다는 말을 넘어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단상담 시간에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 그 과목을 듣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비밀유지엄수의 의무는 온데간데없었다.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은 폭력적이다. 전문적 지식에 대해 배우고 있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려는 시도와 다른 이의 말에 공감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의도는 불순하기까지 하다.      


저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지금의 심리 상태가 어떤 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그런 말을 들은 자신의 기분에만 집중하면서 아무말대잔치로 기분을 함부로 배설한다. 감정이라는 현상을 부정하면서 공감적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한 채 냉정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사람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겠다는 발상부터 위험하기 짝이 없다.     


동생의 친구도 심리학 전공자였다. 많은 심리학 전공자들을 만나 봤고 나 또한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배움이라는 것은 이다지도 쓸모없다. 친한 친구에게든, 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에게든 가장 딱딱한 말을 내뱉고 결코 소화되지 않는 말로 만들어버리는 데칼코마니라니. 4년 동안 혹은 그 이상 배운 지식들을 현실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심리학 전공자들이라니.     


나는 그 사람하고는 이후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면서 남을 흠집 내기 바쁜 사람이니 그냥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동생은 한 동안 방황을 했다. 남에게 험한 소리 한번 못 하는 성격이라 소화되지 않는 말을 삼켜대느라 여러 번 체했을 것이다.      


소화되지 않는 말은 이미 썩은 말이다. 그러니 삼킬 것이 아니라 뱉어내야 한다. 상대의 면전에다 가래침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 뱉어버리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을 보지 않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느 때든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체한 속은 까스활명수로 달랜다지만 체한 마음은 달랠 방법이 없으니.     



“나만의 느낌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 들 때
그것은 한낱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폭력은 가슴에 시퍼런 색깔을 칠하고야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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