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트라우마라는 시한폭탄

by 요술램프 예미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으로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처 또한 과거에 묻어버리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있는 한, 과거와 그 속의 상처는 현존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어떤 한 사건 안에 머무를 때는 내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모를 때도 많다. 왜냐하면 살아남아야 하거나 아픈데도 아픈 줄 모를 때는 생존본능으로 인해 뜯기고 잘려 나간 마음의 한쪽을 볼 수가 없다. 세세하게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그걸 모두 보고 느끼다 보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힘이 생기면 그래도 현재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파편화되고 단편화되어서 당시에 보이던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고 아팠던 하나의 장면, 아팠던 감정만 남는다. 상처를 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를 받고 있던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서 보는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깊은 트라우마일수록 사라지지 않고 내내 남아서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잉태되고 또 잉태되기를 반복한다. 어떤 순간에는 사라졌다 싶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파도처럼 밀려와 자아를 쓸어버린다. 어떤 이들은 의아해한다. 옛날의 상처로 이제 와서 아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어떤 일이 증상이 되는 데 있어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가 공방이 될 때가 있다. 배상이나 보상을 해줘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할 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법적인 이슈가 제기될 때가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왜 여태까지 아무 말도 없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아프다고 하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어떤 문제로 인해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주장을 쓸데없는 억지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트라우마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때로는 남의 상처에 대한 무심한 마음 때문이다. 정신과 영혼은 시간의 흐름대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몸에서 일어나는 암 같은 병도 길고 긴 시간을 거쳐 아주 먼 과거의 원인이 쌓이고 쌓여 일어나는데 마음의 병도 당연히 시간의 근접성으로 그 원인을 따질 수 없는 것이다. 특히나 트라우마는 갑자기 접한 사건으로 과거의 것을 가져오는 특성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특정 상황에서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트리거라고 부른다. 마치 방아쇠가 당겨져서 총알이 나가는 것처럼 트라우마도 그렇게 하나의 촉발 요인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니 나오면서 나의 심장을 뚫고, 또 다시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요술램프 예미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작가 조우관. "상처의 흔적들을 유배시키기 위해, 무용이 유용이 될 때까지 쓰고 또 씁니다!"

2,25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슬픔의 유효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