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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Apr 02. 2016

당신의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나쁜 기억 지우개'가 보내는 메시지

기억의 한 자락을 저에게 내어주세요.

제가 대신 짊어지겠습니다.     


기억의 흔적을 저에게 보여주세요.

제가 말끔히 지워드리겠습니다.   

  

기억의 아픔을 저에게 드러내 주세요.

제가 완벽하게 치워드리겠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하지만 굳건한 당신은 사라지고 말 거예요.




얼마 전에 '무한도전'에서 '나쁜기억지우개' 편이 방송되었다지요.

저는 무한도전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나쁜기억지우개 편도 보지는 못하고, 이런 방송을 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어요. 그 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하면서 나에게도 저런 지우개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봤을까 짐작이 되더군요. 


저도 늘 생각해 왔어요. 내 어린 시절의 일부 기억을 잘라내 버린다면 난 정말 더 여성스럽고, 더 부드럽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사람들로부터 더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아직도 잊히지 않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나쁜 기억들로부터 자유롭고도 싶었거든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기분 나쁜 기억들이 아직도 있죠.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고만은 있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또 들었어요. 나쁜 기억들, 나쁜 경험들,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 같은 일들 이런 것들을 다 지워버리고 나면 그동안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더 단단해지고, 더 굳건해졌던 나도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요.


어렸을 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랐어요.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많았죠. 하지만, 그때 죽어버렸더라면 지금 제게 온 행복은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다른 여성들보다 더 부드럽고 여성스럽지는 못하지만 웬만한 어려움 앞에서는 굴하지 않는 제 자신도 없겠지요.


때로는 좋은 경험들보다 나쁜 경험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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