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SNS에서는 "낵아"라는 말로 나를 강조하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그 표현을 자주 사용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온통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가득하던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낵아"라는 말이 거대자기를 상징하는 가장 적절한 말처럼 느꼈다.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하면 그는 대화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자신의 말만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평소에는 안 그런 사람이 왜 하필 나를 만나면 그렇게 둔갑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자기 이야기에 푹 빠진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만나자마자 자기 말만 하다가 헤어질 때도 여전히 자기 말만 하던 친구도 있었고, "쟤는 도대체 숨은 언제 쉬냐?" 주변에서 의아해하던 대상의 친구도 있었으니까. 나는 단 한번 말을 떼보지도 못하고 추임새만 넣은 적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아름다웠고 화려했던 과거에 빠져있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안달인 존재인 것인지, 아니면 나의 업보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상담사라는 직업이 크게 한몫을 차지하는 것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온 세상에 자기(Self)로 가득한 사람이 있다. 말은 커지고, 몸짓은 과장되며, 자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말끝마다 "나는"으로 시작한다. "오빠가", "언니가"로 자신을 지칭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기도 아닌데 3인칭으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어른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 중에는 간혹 사랑스럽거나 귀여운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게 미워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건 아마도 다른 특별한 매력이 그를 덮기 때문이거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넘쳐서일 것이다. 아무튼 안물안궁인 자기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그 한 가운데에 나를 크게 박아놓고서는 나만 보라고 졸라대는 사람들은 마치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이제는 자기를 한껏 부풀려야 하는 일만 남은 사람들 같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식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뉴스를 무작위로 뿌렸다. 때로는 자신이 이만큼 이뤘다고 교회 목사에게 뜬금없이 자신의 이력서를 보내기도 했다. 물어보지도 않은 직장 동료에게 오늘 어떤 시험을 봤는지 그 시험이 어땠는지부터 갑자기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동생에게 전화해서 또 어떤 날은 엄마에게 전화해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겨워진 엄마는 급기야 그가 입금한 돈을 돌려주면서 그것이 자기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데에 대한 대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돈을 받는 것보다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게 더 좋겠다면서 절대 자기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는 말까지 남겼다. 엄마가 되어서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가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의아심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엄마에게 그 돈은 마치 귀에 때려맞는 말에 대한 매값과도 같았다. 물론 그의 폭격은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나는 그의 주변인들이 그를 보며 느끼는 전이의 감정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딱 한 달만, 그것이 어렵다면 딱 일주일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언어폭격을 멈출 것을 당부했다. 그는 자기가 왜 말하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그러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반문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응하지도 않았고, 언니와 엄마는 제발 연락하지 말자고 단절을 선언했을 정도였고 남편도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그는 그 모든 것들이 괜찮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까지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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