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들의 나이든 현재 모습이 점점 더 젊어져 과거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영상들이 한창 유행이었다. 배경음악이 나올 때면 벌써 아련하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멋있었지만, 누군가의 모습은 현재와 너무 달라서 놀라웠고 또 슬펐다. 공통적인 건 과거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눈부시고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영상들에 달린 댓글들을 봐도 비슷한 반응들이었다. 청춘 그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영상의 주인공을 대신해 안타까워 했고, 영상속 주인공처럼 지금의 자신을 보며 회한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벤자민 버튼처럼 한창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면 인간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삶은 어떤 의미가 될까를 괜스레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어쩌면 한창 청춘일 때에 생일 마감하게 된다면 죽음은 더 큰 사건이 되지 않을까 그때의 인간은 죽음에 더 몸부림치지 않을까, '죽는다'는 사실 자체보다 '힘없이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죽는다는 사실이 더 비참하고 힘들지는 않을까. 늙음에서 젊음으로 인생이 변한다면 삶은 점점 더 활기차지고 재미있지 않을까.
며칠 전, 냅다 도로 위를 달려나가려고 하는 순간 도로 한복판에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는 모습이 어느 시트콤이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아주 완벽히 앞으로 슬라이딩을 했다. 정말 어린 아이와 같았고, 한 줌 낙엽과도 같이 나풀거렸다. 어쩜 그렇게 다리라는 것이 정처없이 흐물거릴 수 있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내 다리는 언제 이렇게 힘을 잃었나, 왜 발은 내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나, 뛴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었나 실소가 나왔다. 덕분에 양쪽 무릎과 팔꿈치는 남아나지 않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대자로 앞으로 넘어졌으니 얼굴이 쓸리거나 뼈가 잘못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몸뿐만 아니라 요즘 거울을 보고 있자면 대체 왜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거울 속에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도 엄마 모습에서 싫다고 생각했던 모든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어린 내가 봤던 엄마의 나이듦과 지금 나의 나이듦을 바라보는 느낌이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웃을 때 주름이 생기는 것을 넘어 못생겨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한창 청춘의 때인 사람들을 보면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든 모두가 예뻐 보이고, 나이가 든 사람들을 보면 그 옛날 얼마나 화려하고 예뻤든지간에 전혀 예뻐보이지가 않는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예뻐 보일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눈에는 그 전에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했던 연예인들이 전혀 예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쁜 건 예쁘게 생긴 얼굴이 아니라 청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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