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끔 들러 재잘거려주는 당신이 있다면
언니, 전 요즘 섬이에요...
하루 종일 말 못하는 아이와 집에 있는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섬이 될 이유가 충분하다.
그녀처럼 나도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섬이 되었었다.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그 전에 친구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에 놓이기 일쑤다. 심리적으로 모든 것과 괴리감이 생기고,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한테는 이런 이야기를 해 봐야 이해할 수도 없고, 결혼한 친구들은 자신의 문제에 갇혀 살게 되어 남의 문제까지 돌아볼 여력이 없어지게 된다.
얼마 전에 4개월짜리 아기를 창 밖으로 던진 엄마의 기사가 흘러나왔다. 친정엄마가 목욕물을 받으러 간 사이에 아기를 던져버렸다고 했다. 아기의 말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불행의 시초는 엄마는 아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고, 가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준 것 같은데 울고불고할 때는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랑은 종국에는 사랑하기 힘들어지는 대상이 되기도 하며, 나에게 온 몸과 온 생명을 의지한 누군가의 존재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너 혼자서 아이 키우니? 다른 여자들은 둘, 셋도 잘 키워.
어쩌면 그녀는 이런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첫 아이를 낳아서 한창 힘들어할 때 친정엄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이해되지 않더라도 작은 위로정도는 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들이 옆에 놓여져 있었다면 되돌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애초에 일어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예전 엄마들은 어떻게 견뎠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키워낸 그 엄마들은 어떻게 그렇게 견디어 내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의 엄마들은 지금의 엄마들처럼 섬처럼 지내지 않았을지도... 공동체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지금의 엄마들은 찾는 이 별로 없이 오롯이 혼자서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동체가 붕괴되기 전 엄마들은 좋든 싫든 옆에 누군가는 있었을 것이다. 또 그 때는 그냥 던져놓으면 아이들끼리 크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잘 키워내야한다는 그 모든 부담감이 한사람에게 오직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때에도 모두가 잘 견뎌낸 건 아니라 생각된다. 그 옛날에도 힘들어서 아이를 두고 도망가는 엄마들도 있었고, 아이의 생명을 끝내는 엄마들도 있었다.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가 그런 소식들을 더 잘 접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다. 허무한 느낌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나의 하루는 모든 수고를 털어낼 수 있는 잠자리에 들면서조차 긴장하고 있어야 하며 내가 잠을 잔 것인지 어땠는지도 모를 정도의 밤을 보내고선 있는 힘을 다 해 남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날들이 많았다. 잠을 못 자서 속이 메스껍고, 너무 졸린데 잘 수가 없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웃는 아기의 얼굴도 애교 떠는 아이의 얼굴도. 음악도 글도...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건 무서운 거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나 혼자 힘든 것이 아니기에. 허무함이 온 장기를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다. 허무함의 크기가 당혹스러울 만치 크다.
엄마가 된다는 건 고통이다.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속할 수 없는... 결혼 전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게... 누가 애를 낳으래... 지들이 좋아서 낳아놓고선 힘들다 어쩐다... 남의 애 대신 키워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로부터는 이해받을 수 없다. 그래서 4개월의 아이는 던져졌던 걸 거다.
어쩌면 태초의 범죄로 말미암아 출산의 고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육아의 고통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수고하여 아이를 낳는다는 것의 이면에는 누군가를 온전히 키우는데 수십 년이 걸려 고통을 느껴야 하는 벌이 애초에 포함된 것이었다.
그렇게 벌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쯤, 이제는 편하게 내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될 즈음, 이제는 좀 놀아볼까 생각할 때 즈음에는 하늘로 돌아가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섬에 한 발 내디뎌 준다면, 종달새가 되어 그 섬에 있는 그녀에게 말이라도 걸어준다면 그녀의 온 몸을 감싼 허무함이 기쁨으로 변하고, 이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한참 힘든 시기에 써놓았던 글입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예전처럼 힘들진 않지만 문득문득 허무함이 또 밀려들 때가 있어요.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했던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오고 가는 이 없는 세상에 홀로 갇힌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특히, 우아하게 밥을 먹던 그 여인은 온 데 간 데 없이 허겁지겁 밥을 입 속으로 쓸어넣을 때의 내 모습을 의식하는 순간 참 씁쓸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삶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마음을 풍성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남편과 나누고 있어요. 그럼에도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 모든 걸 내어줄 용기만으로도 부족하다 싶을 때가 많지요. 오늘 섬에서 홀로 고군분투 중인 그녀를 본다면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주세요. 그녀에게 당신은 참 따뜻한 사람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고
추억할 거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