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누구보다 그래야지
생일이다, 오늘.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생일인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제는 챙겨주는 이가 있으니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치는 일은 없다.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지나가다 얼핏 텔레비전에서 보았는데, 제목이 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그냥 한 장면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떤 여성이 케이크를 들고선 자기자신에게 생일 축하송을 구슬프게 불러주던 장면.
Happy Birthday To Me~
청승과 처량의 극치이기만 했던 그런 장면이었다. 뭔가 예술영화로서의 분위기를 한껏 풍겼던... 뭔가 맺히고 쌓인게 많은 그런 여자인 것 같던... 아무리 외로워도 나 혼자서 저러지는 말아야지 생각했었다.
누군가의 탄생이 가족 이외의 다른 누군가에게 진정 행복한 일이 되려면,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려면 그 사람의 의미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커야 가능한 일이 될까?
살면서 진심을 다해 누군가로부터 생일을 축하받아본 적이 많이 있었던가...
의도적으로 그리 되지는 않았겠지만, 하필 생일이면 피터지게 얻어터졌던 기억이 우선 많이 남아 별로 생일이 되어도 기대될 거 하나 없는, 평범한 날들보다 더 기다려지지 않던 그런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생일만큼은 행복한 일들이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 기대감으로 아침부터 설렜던 적이 있었다. 그 설렘이 불행함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미역국까지는 바랐던 적도 없었다. 그래도 그 날은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폭력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부모로부터 축하와 축복을 받지 못하던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라고 뭐 얼마나 대단한 축하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학창시절에는 그래도 축하와 선물을 받았던 적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빴고 외로웠던 기억만 머릿 속을 한가득 채우고 있어 좋았던 기억과 추억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꽤 친한 친구들의 무리가 있었다. 서로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다들 돌아가면서 생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친구들로 지냈다.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이 마침 생일이었는데 당연히 축하받을 줄 알았던 날 다들 내 생일을 잊어주는 센스들을 발휘해 주었다. 그래, 내 생일이 뭐라고 남들로부터 축하를 받을까 싶은 좌절감만 맛보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내 생일도 다른 이의 생일도 내겐 무의미한 그런 것이 되었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일... 그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려보니, 그것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 것 같다. 그 존재가 없으면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니 남편과 아이들이 태어난 것은 본인들보다 내게 더 큰 축복이다.
나의 존재가, 또 너의 존재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그 무엇이 된다면 나의 또 너의 태어남이 서로에게 큰 행운이구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늘 누군가에게 좋은, 깊은 의미를 가진 사람이고 싶었다. 아주 적은 사람들에게라도 그런 의미를 지닌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적어도 이 순간 세 명의 사람에게는 내 존재가 아주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옛날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했던 생일을 보냈지만 이제 생일은 행복해도 되는 날이 되었고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로서, 생일이면 따뜻한 추억을 항상 아이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그 날이 기대되는, 선물보다 더 선물같은 그런 하루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해뒀다가 축하해주는 일, 누군가가 또 역시 그리하는 일... 그런 선물같은 일들이 남은 날들에 많이 생길 수 있다면... 참 멋진 인생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뜻하지도 않게 아침부터 축하메시지가 많이 왔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생일파티라는 건 별로 해 본 적도 없고 그 날따라 이상하게 아빠한테 맞았던 적이 많았어요. 좋았던 생일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안 좋았던 기억이 그 모든 것들을 덮고 있었죠.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아직도 내 생일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조금은 놀랍고 행복하게 다가왔어요.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이렇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보상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봤어요. 생일만큼은 우리 모두 행복한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