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 그대로여도 좋아요
여보, 작년 어린이날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였는데, 올 해는 나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어요. 당신이 밥 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어린 아이가 된지 한 달도 안 되었지만, 난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느끼게 해 주고 싶지 않아서 놀이동산이며 백화점이며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아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나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어요. 당신이 그렇게 누워 있는 것에 나는 슬퍼할 겨를이 없어요. 내가 슬퍼하면 아이들도 따라 슬퍼할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강해지기로 하였어요. 하지만 여보, 아기여도 좋으니 죽지만 말고 내 곁에 있어줘요.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함께 살아갈 수는 있으니까요. 그런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나는 힘을 더 낼 수 있어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미안해하지도 말아요. 내가 당신의 몫까지 해 낼게요.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의 역할을 혼자서도 다 해 낼 수 있도록 힘을 낼게요.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기도해줘요. 그리고 나는 여기서 당신은 거기서 우리 함께 늙어가요...
여보, 당신이 아이로 돌아간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내가 서른 두 해 되던 해 당신은 다섯 살이 되었지요. 그 때의 어리기만 했던 우리 아이들도 이제 어른들이 되었어요. 걱정 말아요. 두 아이 모두 의사가 돼서 미국에서 잘 살고 있어요.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했고요. 그 때는 슬플 겨를도 눈물 흘릴 겨를도 없었는데 지금이 되고보니, 눈물이 나고 슬퍼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나를 보며 여장부라고 그래요. 그런데 여보... 당신 앞에서 투정부리고 연약한 여자인 채 살아아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나를 그리 부를 때 조금씩 가슴이 아려와요. 오늘은 교회도 가기 싫어서 안 갔어요. 교회 가면 다들 가족끼리 와서 예배드리는데, 난 나 혼자서 예배를 드려요. 오늘은 왠지 그게 너무 슬퍼서 교회에 가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나를 여장부라고 알고 있는데 괜스레 슬퍼져서 울기라도 하면 어쩌겠어요... 여보, 오늘은 눈물이 나서 당신 품에 안겨 울고 싶었어요. 여전히 당신은 나를 보며 밥 달라는 말밖에 못하는데, 나는 당신과 너무너무 얘기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나도 그냥 연약한 여자이고 싶네요...
우리, 하늘로 돌아가면 그 때는 당신과 실컷 얘기할 수 있겠지요... 아이들도 모두 미국에 있고, 난 여기서 얘기할 사람도 하소연할 사람도 없어요. 하늘에서 당신한테 그 동안 못했던 투정도 부리고, 원망도 하면서 실컷 울래요... 그 동안 당신도 나한테 그렇게 못해줬으니 거기선 내 모든 걸 다 받아줘야 해요... 여보, 그래도 당신이 여전히 내 옆에 있어서 나는 좋아요...
제가 알고 있는 분을 떠올리며 그 분의 마음이 되어 글을 적어 봤습니다. 서른 두 살 되던 해 남편분이 사고를 당하셔서 홀로 아이 둘을 아주 훌륭히 키워내신 분이세요. 그 분은 누가 봐도 여장부이고 자신감이 넘쳐나고 강한 분처럼 보이지만, 원래 그랬던 분이 아닌 것만 같았어요... 강해져야지 마음 먹고 그 모진 시간들을 견뎌오신 것만 같았어요... 그 분의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이 많이 슬퍼서 그 분의 마음이 이렇지는 않을까 이렇게라도 그 분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