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사실 배려가 무척 필요해요.
양보하면 뭐 어때서~
타고 싶다고 하니까 그냥 양보해주는 거야~
난 양보해도 괜찮아~
놀이터에서 놀던 어느 평범했던 날, 아들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와서는 아들더러 그네에서 내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끼어들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어떻게 하는지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아들이 그냥 그네를 타고 있으려고 하자 그 아이가 아들의 손을 물려고 하면서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아들은 그 아이에게 그네를 내어주고 다른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순간, 울컥하는 속상함이 올라오는 건 또 뭐람. 엄마한테 이르는 아이들도 많이 있던데, 엄마한테 이르지도 않고 그냥 순순히 물러서는 아들을 보며 누군가에게 지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에 속상함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인 건지...
"누군가 그렇게 물리적인 힘을 써서 너의 것을 뺏으려고 한다든지, 때리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양보하라고 하면 너도 맞서 싸워도 돼~ 사람들은 피하기만 하는 사람을 약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냥 피하지만 말고 양보하기 싫다고 내가 다 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해도 돼. 엄마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난 그냥 양보하고 싶어서 양보한 거야~ 양보하면 뭐 어때서~ 타고싶다고 하니까 그냥 양보해주는거야~ 난 양보해도 괜찮아~"
그랬다.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내가 괜스레 오버했던 거였다. 아들은 양보하는 순간에도 속상하지 않았고, 양보한 이후에도 그걸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저 나쁜 놈이...' 이러고 있었다.
즐겨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던 중 배철수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집에서 일찍 나와서 라디오 진행을 하러 갑니다. 일찌감치 나와서 운전을 하면서 이 사람한테 양보하고 저 사람한테도 양보하고, 양보하느라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제가 필요할 때 양보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양보를 안 하더라고요. 껄껄"
뉴스를 보다 보면, 끼어들기를 하려는데 양보를 안 해줘서 보복운전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결국 큰 사고를 내는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정작 나는 양보하지 못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양보를 받지 못하면 분노에 휩싸여 남도 파괴하고 자기 자신도 파괴하고야 만다.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 되었고, 속상한 일이 되었을까... 아들의 경우엔 양보하는 사람보다 양보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 일이 되었을 땐 양보하는 것이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래 봐야 조금 더 일찍 어느 지점을 통과하는 것일 뿐인데...
어쩌면 우리는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렸을 땐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것이 별로 속상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이였던 시절엔 양보도 하고 양보도 받고 그게 서로 자연스러웠던 건 아니었을까. 어른이 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심리가 도로에서도, 일상 생활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실은, 사람들은 너무나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배려받고 싶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라도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온통 의문이고 답은 쉬이 내리지 못하지만, 그냥 내가 먼저 배려하면 결국엔 너도 배려받고 나도 배려받고 그런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로부터 너무너무 배려받고 싶은 사람들을 조금은 위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에서도 배려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만 같아, 그래서 온통 사람들은 화가 나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늘 느끼는 건, 아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