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찬란한 이름

가장 고통스럽고도, 가장 기쁜 부모라는 이름

by 요술램프 예미

아이를 낳고 몇 년 정도가 지나면 비로소 부모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부모가 된지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부모인 자기자신이 어색하지 않다고 했었다.

문득문득 부모라는 것이,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엄마라니... 어떻게 내 인생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감흥과 놀라움이 순간 몰려올 때가 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행복함은 제발 온전히 내 것이 되기를, 아무도 지금의 행복을 빼앗아가지 않기를 소망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완전하게 내게 의지해 있다는 것은 때로는 부담스럽고, 그 과정 가운데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이 뒤섞이어 나를 죄책감 안에 가두어두곤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결핍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배우자에게 또 자식에게 흘려보낼 만한 사랑이 없는 인간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 대상들에게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홀로 크면서 무척이나 외로웠기에, 아이가 형제자매 없이 큰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형벌을 받은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첫째를 홀로 크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하나님은 오랜 시간 둘째를 허락하지 않았다. 울고 또 울고 매달, 또 매일을 울면서 4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것을 자식에게도 하나의 유산처럼 물려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남편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무렵 둘째가 뜻하지도 않게 생겼다. 그렇게 원했던 아이였건만, 남편의 꿈이 꺾이는 것만 같아 그것이 또 슬퍼서 둘이 부둥켜안고 울어댔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그렇게 원했으면서도 내가 원하던 때에 주지 않음에 신을 원망했었다. 안준다고 원망하더니, 이제는 주었다고 원망하는 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는 부모의 민망한 모습이기까지 했다.



둘째의 태명을 열매로 지었다. 첫째의 태명이 ‘복음’이었고, 둘째는 ‘열매‘로 지어 우리 집에는 드디어 복음의 열매가 맺혔다. 그러나 12주까지만 해도 딸이었던 열매는 한 달만에 성별이 딸에서 아들로 둔갑하고야 말았다. 우리 부부는 있었던 딸이 없어진 것마냥 상실감과 실망감에 하루를 보냈고 나는 급기야 폭풍 오열을 쏟아냈다. 아들인 것이 실망스러워서 운 것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보내며 태담을 했고 그 과정들이 한 순간에 허물어진데에 대한 말그대로의 상실감이었다. 물론 애초에 없었으니, 상실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둘째는 태어났을 때, 여러 가지로 약한 아이였다. 몸무게도 3킬로가 넘지 않았고, 우는 것마저 힘이 없어 잘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울었고, 청력도 세 번만에 겨우 정상 판정이 나왔고, 신생아딤플이 의심된다고도 했다.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 과정에서 잘못하면 걷지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둘째가 생겨서, 또 둘째가 뱃 속에서 자라면서 그 과정들에 감사할 줄 몰라서, 그 기간 동안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온갖 분노에 휩싸여서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나는 산후조리원이 깊은 눈물에 잠길 정도로 울어야 했다. 그렇게 6개월동안 마음 한 켠에 돌덩어리 하나를 던져놓은 것마냥 무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6개월이 지나서 드디어 신촌세브란스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고, 신생아딤플은 다행히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결과를 받고서야 아이 앞에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고통이기도 하고, 또 기쁨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한 고통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이며, 이보다 더한 기쁨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 많은 고통의 순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정말 감사합니다’ 하늘에다 대고 되내곤 한다. 둘째가 태어난 지금 그리고 아무 탈 없이 1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드디어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식이 하나였을 때만 해도 잘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라는 것과,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그것이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것을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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