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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ul 22. 2016

그녀는 여전히 참외를 먹고 싶다

아직 자라지 않은 소녀 그대로인 채 

저 참외껍질을 먹어도 될까...


그녀는 땅바닥에 떨어진 누군가 먹다 버린 참외껍질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외를 무척 먹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참외껍질을 주워 먹었다. 껌질 안에 있는 참외는 얼마나 맛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물을 길러 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집에 청소를 해 주러 가야 한다. 말 그대로 식모살이를 하러 간다. 그 나이 열 몇 살쯤 되었을까. 그녀의 아버지는 오늘도 도박을 하러 갔고, 그녀의 어머니는 무기력하다. 그리고 그녀의 밑에는 동생이 셋이나 된다.


누가 그녀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웠는지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그건 그저 보통의 일상일 뿐이었다.




일생이 서러움과 눈물로 점철된 역사의 연속이라면 그 역사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이젠 특별할 것도 없는 그것이 그저 내 것으로 인식이 될까.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들이 누군가의 착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 마음의 창살에 갇힌 신세가 되어 여러 해를 눈물과 한숨으로 뒤범벆된 채, 누군가 그 창살을 없애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을 테지. 아비에 이어 남편이 그녀가 쉬지 않고, 아니 쉬지도 못한 채 벌어 온 모든 것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가져가 버린 후 허공 중에 날려버렸을 때의 허무함을 누군가에게는 풀어놔야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테지. 


그렇게 어린 엄마는 더 어린 나에게 하염없이 하소연을 하고 또 하였다. 어렸을 때의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 자신의 고통을 자식인 나에게 그렇게 풀어놓는 것인지 왜 그 짐을 나와 함께 짊어지자고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도 없었고 둘이 같이 짊어지게 된 그 짐이 너무 무겁기만 했다. 함께 짐을 양쪽에서 들었지만 키가 작았던 나에게로 그 짐의 무게가 쏠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너무 어렸다. 스물한 살에 나를 낳고 그녀에게 삶이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어린 딸에게라도 그걸 나누어 들자고만 해야 했었다. 자신의 한이 너무 커서 자신의 세계가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딸의 슬픔과 아픔까지는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는 자신의 슬픔에 갇혀 버렸다. 함께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눈은 항상 그 먼데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나와 아빠가 아닌, 늘 고향에 있는 엄마와 형제자매들을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하였고, 여전히 딸의 곁이 아닌 그들의 곁에서 살고 싶어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 할머니는 누구랑 살아요?"

"할머니는 혼자서 사는데..."

"네? 혼자서 산다고요? 그럼 할머니 집은 어디예요?"

"할머니는 집이 없어~"

"네? 집에 없다고요? 그럼 땅바닥에서 자요?"

"응~ 할머니는 땅바닥에서 자~"


엄마의 손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참 가볍기 그지없다. 태어날 때도 아무것도 없던 손에 지금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아빠가 남긴 빚 때문에 엄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일하는 가게에 있는 골방에서 생활하며 아직도 그토록 시린 하루하루를 좁디좁은 세계에서 살아간다. 엄마에겐 집은 없고 작디작은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방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땅바닥에서 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 가족에겐 그렇게 늘 집이 없었다. 어렸을 땐 누군가의 집을 빌려 살았고, 내가 대학생이 된 후에 나는 기숙사에서, 엄마는 가게에서 아빠는 여전히 누군가의 집을 빌려서 이렇게 흩어져서 살 뿐이었다. 그래서 난 부부싸움을 해도 갈 수 있는 친정이 없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멋진 집 하나 선물해줄 수 있을까... 




꽃다운 시절... 그녀에게 그 꽃 같던 나이를 지켜줄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더라면...

한숨을 쉬어 본다. 그 한숨 누구 하나 들어줄 이 없지만...

눈물을 흘려 본다. 그 눈물 누구 하나 보아줄 이 없지만...


그녀는 오늘도 일을 한다. 그저 그것이 그녀가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라고 믿으며...


그녀는 어렸을 적 무척 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없어, 남이 먹다 버린 참외껍질만 누가 볼까 얼른 먹어대던 그때의 자신을 위로하며 늘 참외를 한 가득 사 먹는다. 모두는 아니지만,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당신을 위로한다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올여름에는 참외를 건네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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