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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ul 13. 2016

편견, 그 두꺼움에 대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편견일 때가 많다




신과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자기연민'이며
인간과 인간을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편견'이다.


예전에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이렇게 일기를 써놓았었다. 이제는 자기연민에 빠진 나머지 신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때도 편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왜 그건 현재 진행형인 건지...


심리학 매거진에 출생순위에 관한 글을 쓸 때도 '편견'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었고 여전히 어떤 풀리지 않는 숙제 같기만 하다. 내겐 나를 향했던 '편견'이 분명 있어왔고, 그로 인해 많은 시간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에.


자기 외모는 누가 봐도 딱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외동딸이지.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어. 누가 자기 외모를 보면서 그렇게 고생하며 산 줄 알았겠어.


편견에 대한 화두를 꺼내자 남편이 한 말이다. '철딱서니'와 '외동딸'이 이어진 외모.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가난해 보이지 않고 부잣집이 더해진 데서 위로를 느껴야 하나... 비쩍 말라빠져 볼품없다 늘 스스로 생각하는데 왜 내 외모에서 그런 모습들이 풍기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남편은 나를 보며 관계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또 너무 의미를 많이 둔다고 한다.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겠다거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는 그러한 생각이나 바람은 아니다. 가끔 나의 그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외동딸'의 이미지가 나를 가리고 있다든지, 누군가의 질투의 대상이 될 때쯤 밀려오는 정체불명의 감정들. 거기에서 비롯되는 아쉬움 내지는...


내가 결코 해결할 수 있는 주체적인 문제들이 아닌 문제를 접했을 때의 답답함... 그저 그런 것들이다.



이 정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예전에 아주 싫었던 사람, 이해하기 힘들었던 사람,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좀 더 편해지기 시작하고 이제는 아주 싫은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이야기하기 힘든 사람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피부는 너무 어두워 그에 가려진 속의 것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은 또 너무 두꺼워 진짜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어지곤 한다. 


'고생 하나도 안 해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 사람의 인생에는 감히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과 아픔의 역사가 자리할 수도 있다. 어떤 이의 행동을 보며 우리가 아주 쉽고 단호한 언어로 그를 정의 내리려고 할 때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잃어버릴 수도 있다.


조금만 그를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이내 우리는 그 어떤 누구도 욕할 수 없음을 금세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 나쁜 사람은 없으리라 믿고 싶어 진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이 곧 나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는 나빴던 사람이 나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흉이나 욕도 새겨듣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는 나를 지키는 또 다른 인격들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라 믿으며.


그저 만나는 사람들과 웃고 싶을 뿐.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을 뿐.




서로 웃음을 나눠요.
마음의 빗장을 걷고.

나를 향했던 편견은 나를 알아가는, 알게 된 사람에겐 걷힐 수도 있었고 걷히는 과정에 있을 수도 있다. 또 여전히 그런 기회는 갖지 못한 채 진행되기도 한다. 어차피 편견을 가질 사람은 가지고 아닌 사람은 아닌 채로 놓아둘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노력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마음의 공간이라는 것도 있다.


이제는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야말로 '자유' 그 자체가 되고 싶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기도 했고, 또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색하게도 했던 그 관계의 쇠사슬들을 끊고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과 쉽게 넘겨버려야 할 것들을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외동딸' 그 이미지도 어쩌면 괜찮겠다 싶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을 것도 같다. 어쩌면 과거의 나로부터 가장 먼 이미지가 과거의 나를 잃게도 또 새롭게도 해 주진 않을까...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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