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Aug 04. 2016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관계 속에도 갑과 을이 존재할 때가 있다

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넓은 인간관계보다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며 한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 의리를 지키고 마음이 변치 않고자 노력하며, 혹여 나중에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때의 그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나를 믿고 이야기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디 가서 발설하지 않는다. 관계라는 것은 아직도 내게 중요한 그 무엇이며, 가장 신경쓰고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관계가 서로 동일하게 사랑을 주고 애정을 쏟아주면 가장 좋겠지만, 가끔 이상하게도 내가 을이 되는 것 같은 그런 관계가 있다. 어렸을 때도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런 관계가 있다. 물론 내가 을이 되는 관계.



약속을 한다. 만나기로 하든, 어디를 가기로 하든 어떤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그 약속이 나에겐 중요한데 상대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될 때 그 관계는 쉽게 갑과 을의 관계로 전락해 버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한번 한 약속은 깨지 않으려 하고 어떤 급박한 일이 갑작스럽게 생기지 않는 한 약속을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나와의 약속을 밥 먹듯이 깨버리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나와 한 약속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는, 약속한 당일 연락도 오지 않고 또 연락도 되지 않는... 잊은 것이 맞나 의심이 들기도 한다.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가도 이상하게 대화가 뚝 끊어져버린다.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면 보통 처음과 맺음이 있기 마련이다. '나중에 보자'라든지, '잘 자~'라든지, '알았어'라든지 어떤 맺음이 있는데, 무엇을 물어보고 대답을 들어야하는 상황에서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종종 있어왔다. 대답하고 싶은 질문에만 대답하는 것을 보며, 그리고 자신의 신상에 관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며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나보다 내지는 지금은 남의 관심엔 한가로이 대응하고 싶지 않나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지만, 여러 번 반복되는 동안 상대가 나를 기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기도 했다. 


자주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그냥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모진 마음이 있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리 모질지를 못해서 그 관계를 어떻게든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바빠서 그렇겠지, 정신이 없어서 그렇겠지 애써 이해하자 마음 먹고 싶을 정도로 평소 마음을 쏟던 대상이었다.


이 아이는 참 사람 외롭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문제에 갇혀서 다른 이를 돌아볼 여력이 없어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또 그렇게 억지로 믿고 싶었지만, 더 이상 누군가가 나를 외롭게 하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외로운 인생을 겪어왔는데, 관계에서 나를 외롭게 하는 일은 거부하고 싶었다. 한동안 그 관계가 지속됨으로 인해 우울함이 마음을 한 가득 채웠었기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가끔은 나에게 소홀한 한 사람으로 인해 옆에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마음이 들 때가 있는 법이다. 미련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외로울 때는 뻔질나게 연락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기도 하다. 상대에게 뭔가를 얻을 게 없는데도 관심을 쏟을 만큼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사해지기도 한다. 자신이 외로울 때는 친구들한테 연락을 하다가 연애를 시작하면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는 못된 습성의 여자들이 가끔 있는 것처럼. 


모든 관계는 자기중심적이기도 하지만, 그런 관계를 지속하다가는, 관계에 있어 내가 을이 되기로 작정하다가는 자칫 큰 외로움이 나를 덮쳐올 때가 있으므로 적당한 선에서 그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용기가 때론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다. 


나에게 애정을 쏟는 다른 관계들이 분명 많이 있다. 그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고, 내가 을이 되어야했던 관계를 끊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 동안 '소중한 사람 목록'의 순위를 바꾸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였고 되도록이면 그 순위를 지켜나가면서 스스로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순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무도 그런 의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 목록에 속하지 못했던 사람이 어느 날 불쑥 들어오기도 하고, 처음이었던 사람이 마지막이 될 수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갈 수도 있는 유동적인 것이었음을 그 동안엔 잘 몰랐었다. 새로운 관계에 있어 폐쇄적이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을 가지는 데에 대한 두려움과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는 나의 보호본능으로 인해 관계에서의 모험성은 지양하고 싶은 것들이었으니... 


나에게 중요했던 그래서 상처를 줄 수 있었던 대상을 이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으니 내 머리와 마음 속에서 그 존재를 드디어 지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끊고 싶지 않았던 관계를 끊고 나면 뭔가 외로움이 더 밀려들지나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지고, 이제는 나와의 약속이 가벼이 취급당할 일이 없을 거란 기대가 마음에 위안을 가져다 준다. 무엇이 그리 간단하고 극단적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할 만큼 해 본 사람에겐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는 작은 변명 하나 던진다. 


물론 그 아이의 그간의 행동들이 나를 기만하기 위한 목적이나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타 등등의 모두에게 그리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나는 그것이 힘들었다, 몹시도.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그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긴 하지만, 상대에게 신뢰를 갖지 못하고 어떤 약속을 해도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는 것 역시도 불행하긴 매 한가지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하찮게 여기는 존재를 지켜본다는 것 역시도 괴로운 일이다. 


만나는 사람들을, 또 관계들을 소중히 다루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는 마음 따뜻해지고 싶다.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즐거이 만나리라. 나를, 나와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소중히 지켜나가는 관계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리라. 




나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일은 나에게 못할 짓입니다. 누군가 나와의 약속을 하찮게 취급하거나 나를 그리 대한다면 그냥 그 사람은 누구나를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괜스레 못난 사람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를... 우리는 귀한 존재들이니까요. 남에게 상처받지 않을 권리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나는 관계 속에서 을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무게로 당신에게 전달되어지고
무겁진 않되 결코 가벼워지진 않기를 소망한다.





https://www.instagram.com/poetyemi/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는 여전히 참외를 먹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