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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Aug 20. 2016

젊은 날의 초상

달희 씨의 이국 방황기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외로움이라는 것, 감성이라는 것, 결핍이라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방황이라는 것... 유전자 속에 그런 것들은 왠지 없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그 어떤 유전정보보다 더 강하게 우리 영혼 깊숙이, 뼈 마디마디에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의 자궁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을 때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이미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예술가의 방황을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가지고 태어나기로 작정된 인간 같은 느낌이 들 때면 가끔 그 옛날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 어쩌면 나는 이미 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빠져 들기도 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아빠의 인생을 가끔 상상해보고 떠올려보곤 한다. 그는 7형제 중 둘째였는데, 그중 가장 빼어난 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가졌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 동생이자 형은 모든 형제들의 질투의 대상이기도,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혼자서 이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일곱 살 내 어린 시절과 지금 일곱 살인 아들을 떠올려봐도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나라에서 어린 나이에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의 인생의 끝이 어떨 거라는 것을 이미 결정지어 놓은 것만 같잖아. 나 같았으면 울고불고 가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자신만만하고 다부졌던 어린 아빠는 홀로 가는 그 길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그때는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희망찬 마음까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그곳 생활이 결코 그를 그렇게 계속 당당한 모습으로 놔두지 않을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늘 일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부모와 떨어져 홀로 있던 그곳의 생활은 점점 외로워져만 갔으니까. 아무리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고 남들 뒤지지 않게 호화롭게 치장을 시켜주어도 궁핍하고 가난한 영혼까지 그렇게 화려하게 치장할 수는 없었을 거다.


아빠는 곧 젊음의 방황을 시작했다. 공부에는 점점 손을 놓기 시작했고, 일본 아이들에게 맞지 않기 위해 유도도장에서 하루 종일 살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왜 아니겠어. 누가 그렇게 맞으면서 학교를 다니고 싶었겠어. 나라도 당장에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를 때려눕힐 계획만 세웠을 것이다.


그렇게 방황은 대학시절까지 이어졌고, 어느 날 그에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지만, 그 옛날 어떤 부모가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반길 수 있었을까. 결국, 그 여인과의 만남은 둘을 떼놓기 위한 한국행으로 이어졌고, 그때부터 그의 방황은 깊어지기만 했다.


남자에게 첫사랑의 실패는 그렇게 힘든 일인 건가 보다. 그때의 방황이 그 사무쳤던 외로움이 그의 인생 전체를 지배했던 것을 보면, 어쩌면 지금 나의 방황과 외로움은 유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데칼코마니처럼, Ctrl + C와 Ctrl + V가 내 인생의 키워드인 것처럼 아빠의 인생이 어쩌면 내 인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예술적 기질은 내게로 이어졌고,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그의 열망 또한 내게로 이어졌다. 


어쩌면 나는 아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싫었던 모습들이 내게 레이저로도 지울 수 없는 어떤 문신처럼 깊이 새겨진 채.


남편 역시 초등학생 때부터 시골에서 대도시로 유학을 갔었다. 어쩌면 아빠와 남편의 그런 모습도 묘하게 닮았다. 사람이 너무 잘나면 외로워지는 건가 보다.


잘난 것을 잘나게 키우려는 욕심보다, 그저 아이는 아이로 사랑을 해 주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인 것을, 부모의 욕심은 가끔, 아니 아주 때때로 아이를 더 망치기도 한다. 고작 여덟 살의 아빠와 남편은 그냥 부모에게 응석 부리고, 부모 옆에서 매 맞기도 하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랬다면 내 인생의 중요 인물이었던 아빠와 남편의 외로움을 지켜보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야. 


가끔, 나의 또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힘 없이, 그저 부모에게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전체를 지배할지도 모를 어린 시절을 그렇게 외롭게 보내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지. 


어린 시절부터 먼 곳으로 가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들의 인생이 불행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빠져들곤 한다. 정서적 결핍을 끌어안고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고, 소위 말하는 성공을 이루었다한들, 그들의 결핍은 아이들한테 유전자처럼 들러붙고 말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 외로움을 낳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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