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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Aug 26. 2016

마음의 부재는 말의 부재를 이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위로의 능력을 부여받았다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말들을 쏟아내고 차가운 마음은 차가운 말들을 쏟아내는 것일까? 


어떤 이는 자신은 속정이 깊은데 그 깊은 속정을 차마 말로 담을 수 없다고, 담아낼 능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차가운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 버리기도 한다. 가끔은, 얕디 얕은 언어능력으로 내 마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어 백치 아다다가 돼버릴 때면 언어의 한계치를 체감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궁휼히 여기고 측은하게 여기는 심성을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로할 수 있는 언어의 능력도 태어날 때부터 역시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언어의 능력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가끔 말이란 단어 뒤로 자신의 마음을 숨길 때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재혼의 의사를 밝혀왔다. 그래, 좋은 사람이 있다면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기적인 나의 마음은 홀로 될 나의 모습에 머물렀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나의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졌고, 재혼이라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한 일인 건지도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그때의 나는 성경적 지식이 많지도 않았고, 성경적 궁금함을 가장한 위로를 받고 싶기도 했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성경이 재혼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는지 문의하였고, 위로받을 마음의 준비 역시 함께 하고 있었다.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될 지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아무 문제없다. 네가 엄마가 하시는 일에 뭐라고 상관을 하느냐."


순간, 소금기둥이 아니라 얼음기둥이 되어 버릴 지경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엄마까지 재혼하시면 정말 외롭겠구나'가 내가 원하던 대사였건만 이 무슨 시베리아 벌판과 북해도의 횡단이란 말인가. 물론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해주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위로받는 일이, 위로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것일까... 위로할 능력이 모자란 리더 밑에 있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엄마는 그때 재혼을 하지 않아, 여전히 나와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중이라 그냥 그때 재혼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결혼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혼을 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옛날 내가 알던 오빠가 지금의 남편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워질 때가 가끔 찾아오기도 하고, 꼴 보기 싫은 시어머니 아들 노릇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져 뭐 하나쯤은 잡아먹고 싶은 불굴의 의지가 솟아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옛날 그에게서 사랑을 받던 나의 아름다운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처참히 구겨진 쓰레기통 A4 용지 같은 느낌에 빠져들어, 당장에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흘러나온다.


"남편이 결혼하더니, 변했어~"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남편도 네가 변했다고 느끼겠지~"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내숭 떨고, 애교 많던 나의 모습도 사진 속에서만, 지난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는 내겐 그 말이 '그만 닥치라'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이후엔 그런 말들은 그 친구 앞에서 꺼내지도 않게 되었기에 그 말은 그냥 닥치라는 말의 결과와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지혜로운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했을테지만, 그것이 참된 지혜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우리들의 따뜻한 말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를 생각해 본다. 언어의 온도는 왜 마음의 온도를 따라

갈 수 없는 것일까... 아니, 최소한 자신의 마음이 고작 그런 언어 정도만을 담고 있다는 것을 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내려야 할 대답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상대방의 마음같은 것은 미처 보지 못하는 장님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이 내린 해답이 그럴 듯 했다고 안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들은 가끔 옳은 말, 바른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힘든 세상, 마음껏 힘들지도 못하게 힘든 마음 앞에서 세상은 닥치라는 말을 내뱉곤 한다. 힘든 사람에게 '너만 힘드냐'는 말은 안그래도 힘든 마음에 위로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허허벌판까지 경험하게 한다.


세상에 위로의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신이 우리의 마음속에 언어를 배우기 훨씬 이전부터 넣어놓은 것인데 말이다.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나는 마음만은 따뜻하다 항변한들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 소리 없는 메아리일 뿐인 것을.


말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그런 언어만을 담을 수 있는 마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주 때때로 우리는 차가운 '자기'라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언어의 부재 뒤로 마음의 부재를 숨기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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