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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Sep 18. 2016

내 일이 아니에요

지난 후에 남는 게 없다는 걸 느낄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인 것 같아도 그건 결코 내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어요.


상담사로서 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이라고 하면 내담자와 라포를 잘 형성하고 그저 상담만 잘 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실적'이라는 것이 적용된다. 나처럼 구직자 상담을 하는 경우엔 취업을 얼마나 시켰는지, 구인 업체를 얼마나 발굴을 했는지 등 그 잣대가 아주 분명히 정해져 있다.


열심히 살았다. 아니, 열심히 일했다. 나는 일을 아주 잘 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의 습득도 잘 하고, 일의 처리도 빠른 편이다. 목표의식도 분명하고, 경쟁심리도 활발히 작동해 실적도 잘 낸다.


서울시 어느 구에서 구직자들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일하던 구는 25개 자치구 중에 17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구였다. 그때 과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상위권으로 들어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국장이라는 자리가 걸려 있었고, 어마어마한 예산이 또한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상담사들 역시 우리 구를 상위권에 진입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특히, 나는 서울시에까지 일 잘 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일을 열심히 그리고 아주 잘 했다. 서울시에서 나온 분이 도대체 그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을 정도로.



함께 일하던 선생님 중에 공무원으로 평생을 일 한 후 상담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시던 분이 계셨다. 자기보다 직급이 낮았던 공무원에게 지시를 받으면서 자신이 몸 담고 있던 공직에서 다시 일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리고 강남에서 꽤 부유하게 살고 계시던 분이었는데 그렇게 일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남 험담이나 해대던 꼰대들이 가득한 곳에서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상담사에게 절대 반말도 하지 않으셨고, 꽤나 어른 같은 분위기의 그분이 중심을 지키고 계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인 것 같아도 그건 결코 내 일이 아니에요. 지나가 보면, 내게 남는 건 하나도 없어요.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요. 그러니 너무 열 내면서 일 할 필요 없어요."


실적의 압박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던 내게 어느 날, 그 선생님은 이런 말씀들을 하셨다. 그 당시엔 그 말이 잘 와 닿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일 하고 좋은 실적을 내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줄 것이고,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내가 일하던 구는 하위권에서 드디어 최상위권의 구로 진입하게 되었었다. 과장이 고맙다고 밥을 사긴 했지만, 그것이 내 이력에 큰 획을 긋지도 이후에 나를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공은 과장에게로 돌아갔을 테고, '구'라는, '과'라는 하나의 조직 전체로 돌아갔을 테지.


그러고선 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떠올렸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나는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고 있는 사업에 참여하여 지금도 여전히 상담사로서 일하고 있다. 가끔 채워야 하는 실적이 주어진다. 어떤 상담사들은 그 실적을 악착같이 채운다. 어떤 상담사들은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다. 예전 같았으면 나 역시 그 실적을 어떻게 해서든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실적을 내맡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실적을 채운 사람들을 보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다음의 실적을 또 내민다. 느긋한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그래서 주어진 실적을 악착같이 채운 사람들은 조직 전체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적당히 해 줘야 과제를 주는 사람들도 적당한 과제를 주기 마련이다.


지금의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셨던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던 중에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서 끝끝내 일어나지 못하셨다. 이후에 나아지셨는지, 어떻게 되셨는지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그 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열심히 일 해서 고위직까지 올라가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나중에 내게 남은 것은 별로 없더라.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더라. 그분이 쓰러지시고 난 후 함께 일 하던 사람들 중 과연 그분을 찾아뵌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젊은 날 내게 주어진 많은 일들이 나를 좋은 길로 안내해 줄 것이라 믿고 청춘을 바쳐서,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과 사람들을 희생하며 일을 하지만, 나중에 남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 내 손가락에서 빠져나갔다는 허탈감과 가족과의 그리고 친구 간의 마음의 거리뿐이라는 것을 느끼며 인생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허무함만이 나를 휩싸고 돌 것이다.


가끔, 육아의 힘든 과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을 핑계로 일 뒤로 숨어버리곤 하는 남자들을 본다. 또 가끔 일에 치여서 친구가 뭔지, 소중한 사람이 뭔지 연락도 씹고 그 속으로 자기 자신을 억지로 구겨 넣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나의 성공을 위해 혹은 가족과 자식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일 하지만, 그건 결코 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하나의 부속품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 부속품은 금방 새 것으로 교체될 것이고, 내가 이룬 성과는 나의 몫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공허와 허무와 외로움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미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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