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Sep 28. 2016

부자연스러운 동거

삶과 죽음의 공존 속에서

서른네 살이란 나이는 적은 나이일까, 많은 나이일까.

서른네 살이란 나이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에 적은 나이일까, 많은 나이일까.

이렇게든, 저렇게든 아직은 너무나 젊은 나이라는 느낌이 든다.


살아가면서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남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것을 태어날 때부터 가져본 적이 없어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어쩌면 내겐 익숙한 일이었음에도, 모르는 이에게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았을 때처럼 부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망설이게 될 때가 있다.



영정사진 속의 그녀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녀를 보며 울어야 하는 것인지, 담담해야 하는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울어야 할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담담할 수 있을 만큼 아무런 일도 아닌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삶을 살아가지만, 늘 죽음과 공존한다. 

부자연스러운 동거. 

그것만큼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또 자연스러운 것이 있을까.


젊은 사람의, 아직은 할 것이 많고 어린 사람의 죽음을 접한다는 것은 그 부자연스러운 일 중에 가장 부자연스러운 일일 거다. 죽음은 늙어서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아니, 늙은 이에게도 죽음이 두렵고 싫은 것을 보면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젊은 나이에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죽음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큰 병이라는 것은 써먹을 만큼 써먹은 몸에서나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씨앗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 고목나무나 되어야 꽃을 피우게 되는 그런 것이라고. 큰 병이 키우는 꽃은 그런 것이라고.


그녀는 위암 3기였고, 수술 후 회복되는 것 같았다. 바깥 활동들도 하게 되었고, 야위었지만 건강을 회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투병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죽음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살면서 영화 같은 일들이 도처에 존재함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우리 모든 삶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그녀가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도 백혈병으로 1년 전에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녀가 그런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사실을 꼭꼭 감추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도 몇 년 전에 오랜 투병생활을 끝내고 돌아가신 상태였다. 그녀는 하늘나라에서 그들을 만나 기뻤을까... 더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을까...


얼마 전에 그녀의 페이스북에 우연히 들어가 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페이스북은 아직 남아 있었다. 너무 힘들다는 글... 너무 아팠을 글... 짧은 문장이었지만, 얼마나 아팠을지 또 얼마나 살고 싶었을지 그 글을 읽고선 한참을 울었다.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는 오며 가며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이제는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했을까... 행여 아픈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것이 실례가 될까 봐 차마 그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예전에 다녔던 교회의 어떤 분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담배도 피지 않는 젊은 여자가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고 아직은 젊디 젊은 엄마였는데 결국 생의 끈을 놓쳤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집 근처 병원에서 입원 중이었는데, 얼굴도 잘 모르는 그분의 죽음이 내내 아팠다. 아이들이 아직 너무나 어리다는 말에 더 아팠던 것 같다. 


어떤 이는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고, 어떤 이는 그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그것에로 자신의 몸을 던지든 그렇지 않든, 마지막 순간에는 후회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게 되지는 않을까...


부자연스러운 동거. 

우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피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나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이기도 하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100년을 살아도 모자란 것이 삶일 것이다.

100년을 살아도 언제 이렇게 시간이 후딱 흘렀냐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주어진 지금이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일이 아니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