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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Oct 05. 2016

의식이 박피된 돼지

수술대 위에서

수술대 위에서 


나는 의식이 박피된 돼지였다.
모두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모두가 내려다보는 앞에서
발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하나의 덩어리였다.

나는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나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우르륵, 꽥꽥

양 팔과 양 다리가 묶여진 채
헛소리를 지껄이자
모두가 달려들어 나를 까발렸다.

우르륵, 꾸우웩
알아들을 수 없는 짙은 메아리만이
울려퍼지는 사막 위에서 
흘러다니는 의식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허공 중에 헤매는 다리 한 쪽
내게로 오지 못해
나를 잡은 이에게 복종하고야 말았다.

나는 파스슥 흩어진 고기였다.
떨어져나간 살점에도 영혼은 있었다.


수술대 위에서 나는 의식이 박피된 채 몸뚱아리 하나 까발려지기를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한마리의 돼지였다. 그날을 생각하며 졸시 한 편 남긴다.


알록달록한 색을 입히고, 푹신하고 아늑한 침대로 장식해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수술을 해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삭막하고 차가운 곳이 감히 수술실 안 수술대 위라고 말할 수 있다. 엄마도, 아빠도, 사랑하는 연인도 따라들어갈 수 없는 수술실, 그 곳에서 발끝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숨 쉴 구멍이라고는 다 막혀버린 듯한 느낌에 빠져들고 있었다.


차라리, 전신마취를 하는 편이 속 편할 거라 생각했다. 하반신 마취를 하고나서 서서히 다리가 굳어오는 느낌이 들자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내 다리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 느낌은 두 번 다시 느껴보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이러다가는 수술을 하다 죽을 것이 아니라 심장이 튀어나와 죽을 노릇이었다.


미칠 것 같다는 내게 마취과 의사가 잘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깊은 잠의 세계로 방출되었다. 의식이 돌아오자 침대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을 것 같던 내 다리 두 짝은 허공 중에 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누가 톱으로 슬근슬근 내 다리를 잘라내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진통제 주사를 맞았지만, 속만 뒤집어졌다. 게다가 5인실을 쓰고 있었는데, 옆 자리에 있던 환자의 보호자가 치킨에 먹을 것을 잔뜩 사와서는 병실에서 환자와 먹고 있었다. 안그래도 울렁거리는 속에 그 냄새까지 맡으니 더 울렁거려 엄마가 나 대신 밖에 나가서 먹었음 좋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환자의 보호자는 더불어 사는 세상 어찌 자기 편한대로만 살겠냐며 싫어도 이해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다. 도대체 더불어 사는 세상 병실에 누워있는 다른 환자를 생각하지 않는 어떤 보호자의 입에서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이 나왔을 때 지금 같았으면 온 병실과 온 병원을 뒤집어 놓았을텐데, 그땐 참 순진하고 착했는지 그 말을 듣고선 이내 포기하고 코만 틀어막고 있었다. 원래 병원의 병실 안에는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이 병원의 규정인데도 그걸 본 간호사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것이 마치 환자 보호자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대한민국 병원들의 환경은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다.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나는 어쩌면, 아니 분명히 다리 수술을 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굳어오는 몸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몇날 며칠 망치로 두드리고 톱으로 자르는 듯한 통증, 매일매일 찾아오는 저승사자같은 물리치료사. 무릎을 한번 꺾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지 않아면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제발 물리치료사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 나는 참 인간의 몸 하나가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으로 변질될 수도 있구나 생각했었다. 수술은 할 것이 못된다. 수술실과 병실은 있을 곳이 못 된다. 비인간적인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고, 비인간화가 만연한 곳이었다.


제발, 1인실로 옮겨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돈 걱정만 했다. 돈이 있는데도 돈 걱정만 했다. 결벽증을 심하게 앓던 남자친구는(물론, 지금의 남편과는 다른 인물이다) 병원에 오면 무슨 전염병에라도 걸릴까봐 문병온지 10분만에 줄행랑을 쳤다. 그런 인간이 당시의 남자친구였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물리치료실에 가서 걷는 연습을 하는 첫 날, 그 날따라 엄마는 당뇨로 머리가 어지럽다며 주저앉아 있었고, 보험 때문에 찾아왔던 친구가 나를 들쳐업고선 걸음마 연습을 시켰다. 이성친구였는데도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살면서 병원에서 수술 한번 하지 않는 사람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죽는 날까지 수술대의 차가운 공기를 내 몸 안에 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의 삶을 살았다는 것일 거다. 


수술대 위에 눕는 순간 세상 모든 공포와 걱정이 내 것이 된다. 그 서늘한 기억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수술대 위에 홀로 놓여진다는 것 자체가 환자에겐 무서운 일이니 수술실의 벽도 조금은 따뜻한 색감으로 칠하고 따뜻한 음악이 흐르고 안심할 수 있는 말 한마디 건네 주는 의료진이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리고 병실은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므로 환자의 보호자나 문병자들이 다른 환자들의 안정을 위해 조금 배려해준다면 좋을텐데...무엇보다 병원과는 최대한 멀리 떨어진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일테고.




모두 건강하세요~^^
병원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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