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Oct 08. 2016

바닥의 여자들

서럽다 울지 않기를...

"혹시 가좌울역 가나요?"


수업을 마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 후문에서 버스를 탔다. 세브란스 병원 앞 정류장에 이르니 여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올라탄다. 그곳은 노인들에겐 집과 같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니까.


할머니가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가좌울역을 가는지 조용히 물었다.


"가좌울역이요? 가좌울역이라는 데도 있나요?"


혹시 할머니는 학여울역과 가좌역을 합쳐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건지, 아니면 가좌울역이라는 곳이 서울시내에 있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다 보면 오른쪽 시장 있는 곳인데..."
"이 버스는 쭉 가요~ 오른쪽으로 빠지거나 하지 않고요~"
"그래요? 그럼 가다가 내릴게요..."
"괜히 할머니가 물어보는 통에 신호 걸려서 2분 늦게 가게 되었잖아요~"


기사 아저씨는 툴툴대면서 할머니에게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다. 할머니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모습이 마치 이제 갓 시집 온 새색시처럼 곱고 얌전하여 누가 뭐라고 해도 그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애써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좀 걸걸한 할머니였다면 젊은 기사의 툭툭 내뱉는 말에 뭐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2분 늦게 가는 게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한마디 하려다가 나는 그만 할머니의 모습만 바라보게 되었다.


두 정거장 정도를 지나자 할머니는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여기서 내리시게요?"

"이번에 말고, 다음에 내리려고요"

"다음에는 다리를 건너서 한참 간다니까요. 이번에 내리세요"

"그럼 이번에 내릴게요"


할머니는 분명 자기가 원치 않는 곳에서 내렸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내려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내리시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할머니는 내려서는 양산을 펼치고 얌전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 할머니는 여기서 내려서 어쩌자고 저러고 가는 거야?"


기사 아저씨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대고 혼자서 궁시렁대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먼 곳에 있으면 거기까지 걸어가도 좋다는 듯. 할머니는 기사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듯 말해도 인상 한번 쓰지 않고 그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에겐 그것이 일상이지는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조금은 서럽거나 슬픈데도 애써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 옆에는 할머니 편을 들어줄 할아버지가 있을까. 서러운 일을 당했을 때 한 걸음에 달려와줄 자식들은 있을까. 할머니의 가냘픈 뒷모습을 보며 나는 괜스레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 주책 맞게.



나는 몸무게도 여느 초등학생 정도의 몸무게에다, 누가 봐도 힘 하나 못 쓸 것같이 생겼다. 찬바람 하나에도 이리저리 나뒹구는 바닥의 낙엽들처럼. 그래서 서러운 일들도 참 많았다. 어렸을 때는 그런 서러운 일들도 참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참고 있는 사람을 사람들은 점잖다고 인내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보기보다 싸움을 잘 한다. 아니, 나를 지키는 과정에서 싸움을 잘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가만히 두고만 보기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누가 먼저 싸움을 걸면 절대 피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내 가녀린 외모에 쉽게 싸움을 걸어오다 결국 나한테 맞아서 울고불고 한 여자애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냥 피하지 않는 것이 내가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이 가난해서 담임선생님한테 차별대우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급식비를 안 냈다고 반 친구들 앞에서 화를 내면서 말하는 통에 너무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도 선생님은 내 가정형편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가난하고, 연약하고... 사람들에게 얼마나 찢기고 피 흘리기 딱 좋게 생겼는지.



또 여자들은 밖에 나가면 남자들에게 얼마나 가벼운 대상이 되기 쉬운지. 흉악한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치근덕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무시당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남자 친구나 남편이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가 또 달라지기도 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조차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절벽으로 내몰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어떤 남자가 옆에서 계속 자신의 몸을 내게로 밀착시키고 일부러 다리를 쩍 벌리고선 내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갖다 붙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에게 다리를 오므려달라고 이야기하자 엉덩이를 들썩하더니 내쪽으로 자신의 몸을 더 밀착시키고 급기야 자기와 함께 지하철에서 내리자며 내 팔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다른 남성이 그 남자를 밀치고 욕을 한바탕 퍼부어주었더니 그 남자는 얼른 지하철에서 내려버렸다. 그리고 어느 동네에서 길을 가고 있는데 계속 한 남자가 따라와서는 내가 가는 앞길을 막고 섰다. 어렸던 나는 너무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다른 남성이 왜 그러냐고 나를 구해주었었다. 어떤 날은 길에서 마주 오던 남자가 갑자기 내 몸을 손으로 훑어 내린 적도 있었다. 파출소가 바로 옆에 있었고 또 남자 친구가 금방 뛰어와주긴 했지만.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기차에서 어떤 군인 아저씨가 내 엉덩이를 만진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참 일들도 많았다.


만약에 나를 구해주었던 다른 남성들이 없었다면 나는 더 험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버스의 할머니를 보다가 나중에 나도 저렇게 젊은 남자가 무시하듯 말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젊고 기운도 있고 배운 것도 있어 누가 뭐라 하면 그대로 맞받아치지만 늙어서는 제 한 몸 간수하고자 어떤 말도 못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책 맞게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바닥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자였다. 남편이라고 있어봐야 그녀를 지켜주고 보호해주지도 못했고, 도와주는 다른 사람도 없어 서러울 일이 많았다. 나는 그래도 많이 배웠다고 말발이라도 있어 어디서 주눅 들지 않고 말이라도 하는데, 엄마는 어디서 말싸움도 못하는 여자였다. 작고 연약한 엄마는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또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아왔을지...


"세상 사는 게 참 서러워, 그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여자들에게 세상살이는 참 서러울 때가 많다. 가장 힘없고(가끔은 어린아이보다 힘이 약할 때도 많은 것이 여자다) 아무데서나 무시당하기 일쑤일 때도 있다. 심지어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할 남편이 내 편이 아닐 때도 많다. 나는 엄마가 어떤 무시와 서러움을 당하며 살았는지 알고 있다. 나 같았으면 도저히 참고 견디기 힘든 일들도 많이 겪었다.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무시와 폭력을 당해도 참고 견디며 차마 어디에도 말하기 힘든 것이 가장 서러운 일이었을 거다.


요즘 들어,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보게 되었다. 밑바닥의 여자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다. 


엄마는 자기가 받은 서러움을 딸까지 받게 하지 않기 위해 딸을 공부를 많이 시켜야겠다 다짐했었다.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세상이 서러운 곳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세상사는 것이 서러워 대성통곡할 때가 있다. 엄마도 그랬겠지. 엄마의 엄마도 그러면서 살았겠지. 


여자들이 더 이상 바닥에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어떠어떠한 대상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댈 수 있는, 비바람 정도는 막아줄 수 있는 나무가 그녀들의 곁에 있어준다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니 연약한 존재가 연약한 존재를 내려다보는 일은 없어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의식이 박피된 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