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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Oct 11. 2016

사라진 인정을 찾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좋은 집에서는 처음 살아봐요~"


늘 좁고 형편없는 집에서 살아왔던 그녀는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것도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는 하얀 아파트에서.


남편은 장애가 있는 듯하였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래서 그녀는 실질적으로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은 그녀의 삶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마 바람은 아주 매서운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 곳곳에 칼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깊게 파여있었으니. 그 나이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깊은 흔적들이었다.


해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벗어나 새 아파트로 이사 온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 얼굴의 주름살도 함께 웃고 있는 것처럼 넘실댔다.


그녀의 남편은 뭔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말이 조금 어눌한 것 같기도 했고, 알 수 없는 말들을 해대는 것 같기도 했고 가끔 행동도 이상했다. 곧 사람들은 쑥덕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는 그녀의 아들이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고선 주인에게 들켰다고 했다. 그 사건은 삽시간에 학교에, 아이들 사이에, 또 엄마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그녀의 남편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그 아들까지 이상한 것이 마치 당연한 것이었던듯 엄마들은 많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녀의 아들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아줌마들이 그녀 또한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집으로 이사 와서 너무 좋다던 그녀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그 모든 것들을 견디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이도, 엄마도 상처를 많이 받고 떠나야만 했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던 나와 친구들은 서리를 많이 했다. 어느 수박밭에서 수박 하나를 서리해서는 그 밭 오두막에 떡하니 앉아서는 네 명의 꼬맹이들이 수박을 아주 맛있게 먹었었다. 주인이 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우리는 온갖 수다를 떨면서 마치 저들 집에서 놀듯 남의 집 오두막에서 남의 수박을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다. 만약에 주인이 그 모습을 봤더라도 우리는 잽싸게 도망갔을 테고 주인아저씨도 잡으러 오려는 의지도 없이 그냥 웃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린 시절엔 괜스레 돈이 있어도 슈퍼에서 무엇인가를 슬쩍 갖고 오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다. 집에 장난감이 있어도 문구점에서 장난감 하나를 남몰래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땐, 어른들도 아이들도 그걸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거나 뒤에서 쑥덕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번 호통치는 것으로 끝났을 테고,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 눈물, 콧물 쏟으며 울었을 테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아이였기 때문에 모두가 큰 일로 문제삼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안 그래도 두고 보고 있던 차에 두고 보지 못할 일이 생겼던 것처럼. 뭐 하나만 걸려봐라 하던 차에, 그녀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를 놀게 하지 못할 아주 분명한 명분 하나가 생겼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쟤네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니 놀지 말라고 하기엔 자기 자식 보기에도 부끄러웠을 것이므로.


사람들의 눈과 입이 내뿜은 칼에 맞고 쓰러진 그녀에게 그녀가 그렇게 좋아했던 아파트는, 아파트 단지는 더 이상 좋은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인정은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일까. 작은 아이의 실수 하나, 결핍 하나를 깊은 마음으로 보듬어주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어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이들은 그런 실수도 하면서 크는 거라고 괘념치 말라는 이웃집 엄마는 없었던 것일까. 그녀에게 좋았던 아파트는 영원히 좋은 곳으로 남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녀는 지금도 새로 지은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지... 다시 해가 들지 않는 세상에서 차갑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지... 그녀가 또 그녀의 아이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관심과 사랑을 만날 수만 있었더라면.



부디 앞으로의 삶에서는
가난을 향한 손가락질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들을 많이 만나기를 빕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그녀와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굉장히 슬퍼졌습니다. 그렇게 도망가듯 이사를 가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사를 갈 만큼 그녀와 아이가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들이대는 잣대가 얼마나 차갑고 무서운 것인지요.



고약한 입 냄새 


지린내와 온갖 탁한 냄새의 금붕어.
사람들은 뻐끔거리는 그 입을 보며
세상의 모든 검은 물을 쏟아 부었지.
쏟아지는 오염에 너덜해진 염증을 비웃는
입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났어.

냄새나는 금붕어 앞
냄새나는 주둥아리.

수압을 견디지 못한 금붕어는
미지의 동굴 속을 노려보다가
불멸의 삶을 살기 위한 헤엄을 치기 시작했어.

어항 속은 참 넓기도 넓지.

구겨진 손가락이
잠들 수 없는 눈을 푹 찔러본다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성스러운 의식.

금붕어는 이제 넓은 어항 속에서 빠져나와
드디어 좁은 세상에서 죽은 채로 살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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