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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Oct 31. 2016

마음을 담을 수 없을 때

마음이 선물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아빠는 나를 때리고 나면 꼭 무언가를 사주곤 했다. 아빠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어린 나는 아빠가 무엇을 사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죄책감을 감추고자 애쓴다는 사실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사주는 선물이 반갑지가 않았었다. 때리지나 말지 꼭 때려놓고선 무언가를 사주면서 그 사실을 어린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너무 깊이 그 선물의 의미를 알아버렸다.


살면서 애정 어린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을 주고 받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학창시절에 학알이나 종이학을 접으면서 누군가에게 주었던 선물은 나이가 들면서는 가장 받고싶지 않은 선물이 되었고,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고이 쓴 카드와 함께 정성스레 선물 포장을 하던 손길은 이제 선물을 주고받는 것과는 멀어지는 손이 되기도 하였다. 


남편의 지갑이 많이 낡아 있었다. 그 안에 별 거 넣고 다니지 않더라도 남자는 멋진 지갑을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늘 생각해 왔으면서도 남편 지갑이 낡아 있는 걸 신경쓰지 못했다. 결혼한지가 수년이 지났지만, 남편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는데, 정작 남편에게는 제대로 된 선물을 한 기억이 없었다. 선물을 준비하며 남편을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함께 지갑을 선물했다. 선물을 받은 남편은 무척 기뻐하였고, 한 동안 새 지갑이 아깝다며 헌 지갑을 여전히 들고 다녔었다. 아내에게서 받은 그 선물을 고이 책상 위에 모셔다 놓고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 친구로부터 생일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번도 누군가로부터 초대를 받은 적도, 누군가를 초대해 본 적도 없었고 또 누군가 알려준 적도 없었기에, 생일초대를 받으면 초대한 이를 위한 선물을 가져가야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모두들 생일을 맞은 친구의 선물을 꺼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넌? 너는 무슨 선물을 가져왔어?"


아무도 알려준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 상황이 무척이나 민망한 순간임을 인지하였다. 순간, 나 혼자만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미안...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어. 다음에 꼭 줄게..."


하지만 다음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 날 생일 선물을 챙겨가지 못했던 나는 다음부터 생일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축하하는 마음은 실체가 없었으므로 그 마음을 선물이라는 것에 담아야 상대는 비로소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그 마음 하나 보이지 못하는 것이 세상이었다.


어떤 작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반친구들끼리 선물을 서로 주고받지 못하게 했는데, 그 이유가 선물을 준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를 차별하게 될까봐였다. 처음에 그 글을 일고선 선물을 준 친구와 주지 않은 친구를 다르게 대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더 좋았을 걸 생각했지만,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그걸 달리 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 선생님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여 준비한 선물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때론 그걸 준비하지 못한 그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생일선물도 가져오지 않아놓고선 자기 엄마가 준비한 음식만 축내고 있던 내가 그 친구는 얼마나 미웠을까...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큰 아들이 친구생일 초대를 받았는데 남편이 미처 생일 선물을 챙겨주지 못했다. 혹시나 나처럼 아들도 선물도 주지 않고 음식만 축내는 아이가 되었을까봐 조리원에서 급하게 아들 친구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그 엄마가 마음씨 좋은 분이어서, 나에게 미리 선물을 받았다고 우리 아들에게도 아들의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아들도 엄마가 미리 선물을 보냈다고 하니 마음의 부담없이 그 자리에서 놀 수 있었고, 아들의 친구 역시 섭섭해할 일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누군가가 내 생일 선물을 굳이 챙겨주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정도에까지는 이르렀다. 선물이 곧 사랑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만큼의 어른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선물을 받으면 두 배의 마음을 받는 것만같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해 주지 못한 마음을 기억하기보다, 해 준 그 마음 하나를 기억하며 내내 따뜻한 마음이기를 빌어본다. 


누군가의 낡은 물건이 계속 마음에 걸려 조만간 선물 하나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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