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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Nov 02. 2016

소금의 계절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분해되기를 반복합니다

소금이 피는 계절


나는 소금이라는 계절에 태어났다.

모두가 소금과 햇살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다는데
신은 내게 소금만을 쥐어준 채
어둠 속에서 나를 잉태하였다.
소금만을 가지고 소금의 계절에 태어나
눈밭에서만 잠을 잔다.

그리하여 
꽃을 본 적이 없고
별을 담은 적이 없다.

오직 소금만을 가진 채 태어났으므로.

사람은 태어난 계절을 닮는다지.
나는 어둠에서 일어나 죄로 잠든다.

오늘도 소금의 계절을 걷고 있다.




매일 밤 나는 서러움에 분해된다. 아직도, 이 나이에도 서러울 것이 있다니 세상은 서러움을 내 마음에만 다 담았나 보다. 밤마다 분해되어 다음 날이면 다시 조립되기를 반복하다 어느 부속품 하나정도 잃어버리는 날이 오면 일회용처럼 던져진 채 잊히기도 하는 것일까...  분명 행복한 순간인데도 눈물이 차올라 가슴에 나방 한 마리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계절 탓이려니 애써 생각하며 이 밤에 차가운 라테 한잔만 하릴 없이 벌컥벌컥 들이킨다. 


요즘 사람들은 흙수저라도 들고 태어난다지만, 나는 수저 하나도 들지 못한 채 태어난 것만 같았다. 어떤 축복의 존재도 될 수 없다는 것이 내겐 늘 서러움이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것이 나를 서럽게 하는 것인지, 처음처럼 여전히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만 같아 그것이 서러운 것인지. 나의 존재가 생성되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조차 나는 늘 불안감에 떨었다. 엄마는 배를 두드리며 내가 죽기를 바랐다. 아마 더 아프게 자신의 배를 때려서라도 내가 없었던 곳으로 되돌아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반가운 존재가 아닌 존재는 더 끈질기게 누군가에게 붙어 있는 법인가보다. 꼭 오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은 이상하게 더 자주 마주치는 것처럼.


부모님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요즘이야 다들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지만 나의 아비는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들에 비해 한참 나이가 많았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한 동네에 오래 산 사람들이 그걸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이미 그들에겐 충분히 익숙한 일이었기에.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서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아버지를 향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말문이 막힌 적도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그의 나이를 안 교회의 누군가가 놀라면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놀람을 넘어 경멸에 가까운 눈빛이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친부모가 사실은 따로 있어서 그들이 나를 구원하러 오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아이들이야 부모한테 혼나면 가끔 그런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에게 그건 상상이라기보다 오히려 바람에 가까웠다.


나는 늘 나와 내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을 부끄러워하며 살았었다. 그 부끄러움에 내 발길이 머무는 모든 곳이 차가웠다. 


가끔은, 아직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차가운 계절을 홀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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