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은 외로움을 잊게 해 주니까
소망이 있다. 가까운 미래에, 지금의 힘든 시기가 지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길 때 즈음,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소망... 될 수 있는 한 많은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
가끔 텔레비전에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또 그걸 설거지하는 아이들이 나올 때가 있다. 아직도 세상엔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그 아이들에게 라면은 배를 채워주는 양식이자, 외로움이고, 삼킬 수 없는 눈물일 것이다. 차라리 울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이제는 일상이 되어 원래는 남의 몫이었던 그것이 처음부터 자신의 몫이었던 것마냥 묵묵히 해내고 있는 손과 얼굴에 마음이 아려오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엄마의 밥이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이고 목마름이기도 하다.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었던 적이 많았다. 라면은 누군가의 외로움과 함께 할 때가 많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던 중 아주머니한테 레시피를 물어보고 집에서 해 먹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 흔한 떡볶이도 엄마가 해 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몸무게가 17kg였고, 2학년 때까지 20kg를 넘기지 못했다. 잘 못 먹고 커서 그 보다 어렸을 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혼 전까지 먹는 것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먹는 것은 그저 배만 채우면 그만인 것이었다. 임신을 했을 때는 살이 너무 안 찐다고 의사들이 늘 걱정을 했었고, 아이들을 이렇게 잘 낳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빼빼쟁이다.
엄마 음식을 별로 먹어 본 적이 없다. 음식도 못 할 뿐더러 일하느라 늘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사랑이 담긴 엄마의 음식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밥은 내게 커다란 의미였다. 엄마로서의 정체성이었고, 사랑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몫이었다. 내게 밥은 그랬다. 나의 설움을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이었다.
옆 집에 꽤 친하게 지내던 할머니와 손녀가 있었다. 그 날따라 그 집엔 외삼촌네도 오고 해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상이 나왔다. 마침 그 집에서 놀고 있던 나는 그 상을 보고 꽤나 놀랐다. 할머니와 아줌마가 같이 먹자고 했지만, 남의 집 밥을 얻어먹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한사코 사양을 했다. 그냥 집에라도 갔으면 되었겠건만 집에도 안 가고 입에서는 침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침 삼키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조심조심 침을 삼키다 나중엔 침을 삼키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있었다. 속으로는 너무 먹고 싶었는데 먹지도 못하고 집에나 갈 것이지 가지도 못했던 그때의 내가 왜 그렇게 못나고 또 불쌍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남의 밥 얻어먹는 것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더 창피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저런 거구나 생각했었다. 늘 아빠가 해주는 밥을 먹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밥이었다. 나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말랐다며 걱정들을 했었다. 마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말들이 답답하기만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엄마를 둔, 음식을 온갖 정성으로 해주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무척 부러웠다. 고등학교 때 짝꿍이 가져왔던 김밥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맛있는 김밥을 쌀 수 있는지, 세상에 이런 맛을 가진 김밥도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마침 엄마가 싸주었던 김밥이 너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그 흔한 김밥도 잘 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건 행운이다. 그리고 그것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행운이다.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져오고, 추억에 잠길 수 있다는 건 지금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그 때의 나를 살찌우기 위해 바빴던 그녀의 몸과 마음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에게 밥을 잘 얻어먹고 자란 사람은 사고치지 않을 거라는 것, 인생의 샛길로 빠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 엄마의 밥은 사랑이므로, 그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은 엄마를 원망할 수도 세상을 원망할 수도 없을 거라는 걸...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가끔 점심을 먹는 중에 저녁 메뉴가 뭔지 아들이 물어볼 때가 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웃겨서 이제 겨우 점심 먹는데 벌써 저녁이 궁금하냐고 되묻곤 한다. 나를 닮아서 아이들이 잘 못 먹으면 어쩌나 했던 걱정들은 한낱 기우였다. 아이는 먹는 걸 정말 좋아하고 정말 많이 먹는다. 어쩜 내 아들이 저렇게 먹는 걸 좋아할까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아이와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먹을 때 밀려드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손을 씻는다. 채소나 과일을 씻을 때도 담금소주와 식초를 넣어 깨끗하게 재료를 씻어 준비한다. 장 봐 온 재료도 포장 그대로 냉장고에 넣지 않는다. 늘 식재료를 깨끗한 용기에 다시 옮겨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둔다. 음식을 만들 때도 행여 내 입 속에 있을 세균이나 병균이 아이에게로 갈까 봐 수저나 국자로 맛을 보는 대신 항상 종지에 담아 맛을 본다. 사실, 맛을 보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엄마의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닐지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음식이라고 아들에게 말해 준다. 먼 훗날 아이들이 결혼해서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엄마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지 못한다. 하지만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다.
나는 여전히 빼빼쟁이이다. 하지만 내 음식을 먹고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이 있다.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 물론 설거지는 남편의 몫이다.^^
소망이 있다. 가까운 미래에, 지금의 힘든 시기가 지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길 때 즈음,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소망... 될 수 있는 한 많은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
추억할 엄마의 밥이 있다면
엄마의 밥을 떠올리며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