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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Aug 27. 2020

실패담,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기억.

보고 있나, Tübingen.

  저는 2019년 1학기 독일 Tübingen이라는 도시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여러 곳에서 장학금을 많이 받아 자부심과 뿌듯함, 그리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걱정이 가득한 채로 비행기에 탔던 기억이 나네요.


  출국날은 2019년 4월 2일이었어요. 기본 수화물 용량 기준을 초과한 땅땅한 캐리어 두 개를 들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독일 남부의 튀빙겐까지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도착했고, 하루는 튀빙겐의 에어비엔비에서 묵었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이라 캐리어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외쳤는데, 허리가 아프시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던 호스트 아주머니와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그냥 입구에 캐리어를 내려두고 잠을 청했어요. 소매치기가 일상인 유럽에서 말이죠..ㅎㅎ 그래도 다음 날 캐리어는 그대로 있었답니다.

  사실 한편으론, 출국날이 다가올수록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귀찮음이 커져서 떠나기 싫다고 찡찡거렸던 날이 많았어요. 이런 얘기를 하룻밤 묵을 에어비엔비 호스트 분께도 했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라시던 아주머니의 따스한 친절은 아직도 감동입니다.


  독일에 도착 후 한 달은 정신없이, 그리고 신나게 학교를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버디였던 Lisa와 Lisa의 친구 Mieke 덕분에 순탄한 출발이었어요. 플랫 메이트로부터 'center of attention'이라는 별명도 들을 정도로요. 하하:]


  Anmeldung인가요, 여러 서류 작업을 하러 시청에 갔다가 소중한 인연들도 만났고요. 수연 언니는 아직도 가끔 생각나고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뜬금없이 연락하기도 했어요. 예중이랑, 짧지만 강렬했던 성나 언니도 생각나네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울해지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여기서 죽으면 난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버렸어요. 거기서 사귄 친구들이 "How are you?"라고 물으면 "Sad, I'm so gloomy."라고 대답하던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독일-한국 간의 8시간 시차만 계산하며 살고 있더라고요.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 순간은 눈물을 흘리고, 그러다 지쳐 잠이 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무기력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저를 붙잡아 준 친구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고마운 예중이, 독일어 능력자 수연 언니, 별다른 말 없이 귀국 날 공항까지 배웅해줬던 또 다른 수연 언니까지요. AG 친구들이나 Tandem 친구들도 제가 귀국하면 그들의 언어 공부 파트너가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저의 선택과 고민을 존중해주었습니다. 교환학생이 결정된 후 오래전부터 설득해(?) 한국에서 날아와 2주간 함께 지낸 수진이도 있었어요.

한국에서 절 응원해주던 많은 손길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결국 5월 29일 한국행 티켓을 끊었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어요. 한국을 가면 알바도 하고, 일정한 생활 루틴이 생기면 이 우울과 무기력도 조금은 옅어질 것 같았거든요.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제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았어요..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용기와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어떤 선택이라도 당신을 응원한다는 거예요. 성공과 성취로 가득한 글 사이에서 제 경험을 보고 당신이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교환학생 생활에 적응하는 건 힘들어요. 그 당시 저는 적응할 힘이 아직은 부족했던 거겠죠. 그게 잘못이 아니라는 걸 당시엔 몰랐어요.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그렇구나 이 생각만 맴돌았습니다.

  중도 귀국 이후, 받았던 장학금들을 다 뱉어내고 알바-이불-알바-이불의 연속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한국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 같고 그래서 숨어 다녔어요.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도 찾아가지 않았고, 책상은 몇 달째 독일에서의 짐도 풀지 않은 채 엉망이었습니다.

  1년 반쯤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이유는, 그동안 이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에요. 돌아오고 나서 상태가 괜찮아질수록 중도 귀국을 후회한 적도 많았습니다. 저의 귀국을 말리던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아 사람이 미치도록 힘들면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할 때도 있는 거구나.'라고 제 자신을 토닥여줬더니 그때부터 힘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실패의 소용돌이 속에 힘들어하고 있을 당신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교환학생 생활을 계획하는 것조차 불투명한 일이 되어버렸지만요. 언젠가 다시 자유롭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2019년은 위와 같은 이유들로 깜깜한 순간들 뿐이었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던 저에게 언젠간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실수와 실패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주 월요일에 나눈 대화에서 어쩌면 이 독일 사건이 저의 가장 밑바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하고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들었어요. 분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이런 좌절을 맛보아야 할 순간도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요.

  언젠간 꼭 쓰고 싶었던 글이었는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힘겨운 순간에 있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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