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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Sep 07. 2020

너 없이는 나의 삶도 완성되지 않으니.

영화 컨택트(Arrival)

"그만 없던 일로 하면 안 돼?"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쁜 기억을 다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잊어버리거나 되새김질하거나.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쁜 기억을 곱씹고 또 곱씹어서 끝내 사건의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해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엄마는 나와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힘든 일이 생기면 그걸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엄마의 무의식 저편에는 상흔이 남아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그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어느 날 친한 친구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했다. 아빠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였다. 친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했다. 얼굴 한 번 보러 오라그랬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3년 만에 전화해서 하는 소리가 그 소리였다. 나는 아빠의 뻔뻔함에 화가 났다. 분노하는 나를 보며 우리 이모가 했던 말은 너무 감정적으로 굴지 말라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가 막혔다. 이 상황에서 화내는 게 마땅한 일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보고 감정적으로 굴지 말라던 이모의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 이해가 안 된다고. 이게 내 가족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냐고. 엄마는 이렇게 되물었다. "너 오늘 누구 만나고 왔어? 누굴 만났길래 이렇게 신세한탄이야?" 난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엄마에게 힘든 내색 따위는 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힘든 일을 속으로 삭이고, 결국 망각해버리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짠하다. 엄마의 지난 삶을 듣고 있노라면, 엄마가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나였으면 진작 그만두었을 거다. 그래도, 내가 엄마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게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망각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


주말에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2017년에 개봉한 <컨택트>라는 영화였다. 영화는 고통과 슬픔을 감내하고 결국 어떤 선택을 하고야 마는 루이스의 이야기다. 친구는 그걸 보고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인공이 그 방향을 선택한 것처럼, 다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허무한 재귀 같은 게 인생 아니겠냐"며 <컨택트>는 인생을 논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자기도 주인공과 비슷한 선택을 할 거 같다고 말했다. 난 사실 주인공과 친구 둘 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새드엔딩이 뻔한 그 길을 알고서도 가겠다고? 이미 꿈속에서 겪었으면 충분한 거 아닌가 생각했다. 아직 나에겐 선택권이 주어져 있으니, 열려 있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을 해봤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어느 곳에서 태어날지 결정할 수 있다면? 난 다른 결정을 하고 다른 부모를 선택할까? 아니, 난 그러지 않을 거다.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욕을 실컷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난 지금 내가 좋다. 쓸데없이 진지하고, 마냥 해맑지 않은 내가 좋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좋다.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나'로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영화 속 루이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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