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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Sep 17. 2020

징크스

"요즘 잘 지내."

징크스가 있습니다. 괜찮다고, 그동안 잘 지냈다고 말하면 금세 불행해지는 징크스입니다. 너무 애정결핍 같은 징크스죠? 애정결핍 맞는지도 모릅니다. 저번 주에 의사 선생님에게 그동안 잘 지냈다고, 말할 게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속으로는 불안함에 떨고 있었습니다. "잘됐군요. 그렇다면 우리 이제 보지 맙시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서요.


지지난주까지 정말 잘 살고 있었습니다. 기사도 3편이나 출판하고, 브런치에 글도 썼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알바에서도 실수하지 않았어요.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생산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분도 좋았고, 가벼웠어요.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지난 2주간 잘 지내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 불안함을 고백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그만 보고 싶지는 않아요." 선생님은 제 말을 듣고 약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오면 알아서들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다행히 약도 줄지 않았어요. 하루에 4알. 그대로였습니다.


근데 병원 문을 닫고 나오는데, 순간 너무 헛헛해졌습니다. 그냥 모든 게 허무해졌습니다. 갑자기 울고 싶어졌습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너무 외로워졌습니다. 내가 괜찮아지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은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이번 같은 일이 처음 일어난 게 아닙니다. 예전에 상담을 받을 때도 그랬습니다. 매주 가는 상담에서 저는 상담시간 50분을 꽉 채우고 나서도 할 말이 많아서 문제였습니다. 50분이라는 시간은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상담을 시작할 당시 저는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였을 겁니다. 체중은 일주일에 1-2kg씩 빠지는 건 기본이고, 잠을 자지 못해 퀭한 눈으로 정말 숨만 쉬고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근로학생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경사가 높아 300원짜리 셔틀버스가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는데, 저는 그 300원을 아끼겠다고 땡볕을 걸어 다녔습니다. '나에게 저 셔틀버스는 사치야.'라고 생각하면서요.


누가 봐도 위태로웠던 저는 상담도 받고, 병원도 다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웃는 날도 많아졌고, 진짜 웃음을 짓는 날도 생겼습니다. 상담 선생님과는 사이가 꽤 좋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을 솔직히 말했습니다. 잘 지내면 잘 지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 일주일은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이유는 다 생각나지 않지만, 아 '상담센터 언제 가지'라는 생각만 달고 살았습니다.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상담 선생님께서는 매 상담을 '이번 주 힘들었던 일 3가지 말하기'로 끝내셨어요. 저에겐 특효약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 요즘 잘 지내.'라고 말하는 게 저한텐 아직 어렵습니다. 두렵습니다. 내가 잘 지낸다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꼭  그들이 "이제 됐다."라며 나를 떠나가버릴 것 같아요. 많은 도움과 지지 속에 그런 생각이 조금 옅어져 가고는 있지만, 이 징크스는 저에겐 꽤나 오래갈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선생님께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그걸로 칭찬도 받아서 그런가 이번 2주는 참 길고 허전하고 쓸쓸하네요. 전 아직 칭얼거리고 싶나 봅니다. 부정할 생각도 없어요. 전 이런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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