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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Sep 18. 2020

하얗게 세어가는 그의 머리털

엄마는 비 오는 날 창문이 멋지다고 말했습니다.

요새 자꾸 오한이 듭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러면 안 되는 데 말이죠. 춥고 두렵고 떨립니다. 아픔은 꽤나 힘든 것이어서 아플 때면 짜증도 쉽게 나고 화도 곧잘 냅니다.

엄마가 아픕니다. 엄마가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부쩍 짜증이 늘었습니다.

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을 이제 막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점점 약해지고 늙어갑니다. 그런 엄마가 안쓰럽습니다. 나는 젊고 내 머리는 점점 검어지는데 우리 엄마의 머리카락은 점점 하얘집니다. 예전에는 거뜬히 들었던 장바구니도, 곧잘 풀어내곤 했던 비닐봉지의 매듭도 이젠 힘겨워합니다.

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그만 거둬야 할까요.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라도 그를 사랑해볼까요. 아니,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난 그를 사랑합니다. 다만 그만큼 미워할 뿐입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험담으로 가득한 글을 그가 보고도 아무런 혼도 내지 않는 이유는 엄마만의 사랑과 미안함의 표시겠지요.

힘든 속마음을 그동안 잘 털어내지 못했던 이유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문에 힘든데, 그 힘듦을 발설하는 건 부도덕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론 내 얘기를 듣고 남들이 그를 미워하면 어떡하나, 못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나 걱정합니다. 우리 엄마 욕은 나만 하고 싶습니다. 욕심쟁이 심보입니다.

엄마가 내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난 엄마와 같은 방에서 잡니다. 나는 잠꼬대를 참 많이 하는데, 엄마는 그걸 참 싫어합니다. 근데 어느 순간 잠꼬대에 대한 잔소리가 쏙 들어갔습니다. 아마 잠결에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 자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투덜댄 거 같습니다.

오늘 밤도 오한이 듭니다. 하루 종일 입맛이 없어 먹은 게 없습니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빈속에 약 먹는 겁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떡을 욱여넣었습니다. 그리고 몰래 타이레놀 콜드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몰래 이 글을 씁니다. 언젠간 엄마에게 이 글을 보여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난 그와 대화하고 싶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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