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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Sep 25. 2020

9년 그리고 2년

돌아올 때까지 부디 건강하세요.

내일 제주도로 간다. 9년 만이다. 거진 10년이다. 할머니랑 엄마랑 간 뒤로 처음이다. 그리고 혼자 간다.


첫 여행은 13살 때 처음 엄마와 단둘이 갔었는데, 뚜벅이 여행이었다. 어딜 많이 돌아다녀본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건 테디베어 박물관과, 맛있었던 흑돼지 삼겹살과, 너무 추워서 산 양면 패딩이다. 그 패딩 참 오래 입었다.


두 번째 여행은 할머니와 엄마, 나 이렇게 셋이 갔다. 엄마가 운전을 못해서 택시를 대절했다. 난 그 아저씨가 그렇게 싫었다. 찍기 싫은 사진을 계속 찍으라고 했다. 능글맞아서 싫었다. 그때 찍은 사진들 중 건질게 하나도 없다. 그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건, 할머니랑 같이 탔던 잠수함, 그리고 조식 뷔페를 먹은 뒤 산책하며 맞았던 아침 이슬.


저녁에 할머니께서 전화가 오셨다. 떨리는 목소리로 여행 가는데 용돈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울컥했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다.


할머니는 고비를 넘기고 하루하루 겨우 숨 쉬고 있는데, 손녀인 나는 내일 여행을 간다. 2년 전에도 그랬다. 할머니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는데, 손녀인 나는 온 집안을 헤집었더랬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할머니께 안부전화 드리라는 엄마가 미웠다. 우리 할머니는 나름 신세대라서 손자라고 예뻐하지 않는다. 할머니한테 자주 연락하는 날 제일 예뻐하셨다.


그런데 난 그게 싫었다. 다른 사촌들은 명절에 얼굴 한 번 비추면 되는데, 나는 꼬박 전화드리고 자주 놀러 가야 했다. 엄마는 매번 네가 안마를 잘하니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드리라고 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효도를 강요당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사촌들처럼 게임이 하고 싶었다. 안마가 아니라.


할머니가 난소암 진단을 받으신 뒤에는 더 심해졌다. 엄마는 매주 할머니 댁을 갔고,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주말을 뺏겼다고 생각했다.


선생님한테 이런 얘길 늘어놓자 나보고 엄마의 딸이 아니라 막냇동생 노릇을 하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분노가 일었다. 아, 이건 정말 부당한 일이었어.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2년간 모두를 미워했다. 엄마를, 이모를, 할머니를, 그리고 삼촌을, 그리고 세상을. 추석 당일 늦게 갔다가 세 시간도 안돼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삼촌이랑 싸웠다. 사촌언니의 추도예배 때문이었다.


온 가족에게 나는 당신들 때문에 상처 받았다며 감정을 쏟아냈다. 분노했고, 원망했다.


할머니가 아프다. 이번 여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시고 확 달라지셨다. 할머니는 암 진단을 받고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투철하셨는데, 최근 본 할머니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그래서 이제 진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셨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지쳤다. 그 지침에 나도 일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상처 받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너무 공격적이었다.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말에 담긴 폭력을 정당화했다.


할머니의 떨리던 목소리가 계속 맴돈다. 추석까지 일주일이다. 그 일주일 동안 할머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번 추석도, 내년 추석도, 앞으로의 추석을 할머니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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