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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Oct 04. 2020

그를 꼭 안아주고 싶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_<보건교사 안은영> 리뷰

9월부터 넷플릭스에서 엄청나게 홍보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이 9월 25일 공개됐다. 쌓인 과제들을 뒤로하고 추석 연휴라는 핑계로 정주행(?)을 시작했다. 1화를 보고 든 감정은 정유미의 괴짜 같은 스타일링에 대하 놀라움이었다. 삐죽삐죽한 단발머리에 긴 치마, 흰 가운을 입고 다니는 안은영, 아니 정유미의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드라마의 분위기나 대사가 생각보다 그로테스해서 놀랐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소설의 표지도 밝고 예고편의 분위기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아마도 연출된, 엉성하고 촌스런 구도나 B급 감성도 처음엔 어색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땐 빠져들었다.


1화의 중간쯤 보다가 끝까지 봐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정유미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남주혁도 좋아하고 매번 캐릭터에 녹아들어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는 문소리 때문에 끈기를 가질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문소리의 얇고 긴 초승달 눈썹. 아직도 잊히지 않아..


내용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크게 두 가지이다.


1. 왜 사랑은 모여서 괴물이 될까.

2. 안은영은 누가 구해줘? 안은영의 친구는 누가 해줘?


첫 번째 질문은 안은영이 괴물 젤리들을 퇴치할 때마다 그 젤리들이 작은 하트 모양의 젤리들로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배경인 목련고등학교는 예전엔 연못이었던, 즉 마을의 숨구멍 위에 세워졌다. 그 기운을 막기 위해 압지석이 존재했던 것이고. 압지석의 뒷면에는 이를 설명하는 전설이 쓰여있다.


예부터 이 연못은 정인을 잃은 젊은이들이 몸을 던지던 곳이었으나,
자살을 위장한 타살 시신이 버려지는 등의 폐단이 있다.
게다가 시신을 뜯어먹은 민물고기와 두꺼비, 도마뱀 등의 살이 올라 극성이다.
그래서 관에서 명을 내려 흙으로 못을 메우게 했다.

<보건교사 안은영> 1화



정인을 읽은 젊은이들이 몸을 던지던 연못은 애련의 장소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악용한 이들 때문에 시작됐다. 연못의 소문을 이용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사람들의 비틀린 욕망이 모여 저주의 장소가 된 거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여러 리뷰들을 찾아봤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젤리'들을 인간의 욕망이라고 해석하는 평들이 대부분이었다. 맞는 것 같다. 다만 젤리=욕망이라는 도식화는 어딘가 찜찜하다.


욕망. 욕망이 너무 없어도, 욕망이 너무 과해도 문제가 된다. 욕망해야 살아갈 수 있다. 2년 전 이맘때쯤 망신창이가 되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뭘 먹고 싶고, 뭘 사고 싶고, 뭘 갖고 싶어 하길 간절히 바랐다. 내가 무언가를 욕심내었을 때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했다. 욕망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살아가는 것 역시 욕망 덕분이라 생각한다.


안은영이 물리친 괴물 젤리들은 안은영의 공격을 받고 결국 작은 하트들로 분산되어 사라진다. 감독은 왜 괴물 젤리의 구성을 작은 하트들로 연출했을까? 내가 '하트=사랑'이라는 단순한 도식에 갇혀 "왜 사랑이 모여서 괴물이 됐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일까. 글을 쓰다 보니 '하트=인간의 심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다.


하지만 ' 욕망의 극대화=욕망의 결합'은 다르지 않은가? 그 수많은 하트 젤리들을 괴물 젤리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 그 메커니즘이 궁금하다. 지금으로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럼 두 번째 질문. 정세랑 작가는 "안은영이 여러분 모두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안은영은 학생들을 위해 젤리 퇴치에 열심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백혜민의 운명을 바꿔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 성공한다. 안은영 곁에는 화수가 있었다.(물론 이젠 아니지만) 그의 기운을 충전해주는 홍인표도 있다. 하지만 젤리를 보는 사람들 중 안은영의 친구는 없다. 젤리로 가득한 안은영의 세계를 공유해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나타나긴 할까.


젤리가 안 보이니까 너무 좋아요. 평범해지니까 너무 좋아요. 미안해요.
<보건교사 안은영> 6화

안은영은 친구의 소멸 이후로 잠시 동안 젤리를 보지 못한다. 사직서를 내고 목욕을 즐기고 따사로운 햇살을 즐긴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목련 고의 괴이한 현상에 대한 뉴스를 보고 이내 학교로 돌아온다. 모든 재앙의 근원인 압지석을 열어버린다. 동시에 사라졌던 젤리들은 다시 등장한다. 그 순간 안은영은 읊조린다. "씨발."

<보건교사 안은영> 스틸컷
젤리가 안 보이는 세상은 정말 특별했다. 고요하고 참 편안했다.
모든 색깔이 조화롭고 모든 모양은 완벽했다.
잠깐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나를 계획한 누군가는 결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왜 내게 숨겼나요?
<보건교사 안은영> 6화.


안은영 덕분에 학생들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안은영은 친구 강선의 말처럼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라고 되뇐다. 하지만 그래도, 안은영의 세상이 조금은 조용하고 고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나의 욕심일까. 아니면 차라리 다 같이 젤리를 본다거나. 그럼 소설도 드라마도 의미 없겠지. 안은영이 소설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일도 없었겠지. 그래도 난 모든 이의 친구인 안은영이 안쓰러웠다. 홍인표는 "나쁘지만 않으면 이상한 편이 더 좋아요. 평범한 것보다."라고 말했지만. 난 그냥 평범하고 싶다. 사실 평범한 게 특별하고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그냥 난 안은영을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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