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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Oct 06. 2020

선생님과 인생의 X같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의 대화

지난 추석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의 여동생인 이모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몇 분 통화 후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통화로 잡담을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이러했다. 요새는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괜찮고, 거기엔 한의원이 잘 듣고, 거기는 어떤 병원에 가야 하고...


질병과 건강에 관한 대화였다. 그들의 안부부터 그들의 관심사까지 어느 하나 질병과 떨어질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물론이고 오랜만에 들은 이모할머니의 목소리도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발화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언제 그들을 잃을지 몰라 무서웠다.


할머니의 대화를 보면서 내가 분노한 건, 그들의 고통에 원인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살아서도, 그 삶을 끝내기까지도 이렇게 괴로워야 하나. 쉬운 죽음이 있던가. 죽음은 고통을 수반한다. 삶 역시 고통을 수반한다. 인생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이들이 도대체 뭘 그리 잘못했나요.


이런 생각들을 늘어놓자 선생님이 말했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그래서 부처가 말하지 않았냐고, 인생은 어차피 고통이니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고통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맞받아 쳤다.


"선생님 그런 말들은 결국 자연사한 인간들의 말이잖아요. 전 고통이 싫고 고통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 세상에 고통이 없어질 방도가 없다면, 내가 사라지는 게 맞는 거 아닐까요."


"저도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은 아니에요.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인생은 좆같죠. 그래도 그 좆같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꼭 죽는 게 방법만은 아니잖아요. 고통을 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꼭 죽음으로 귀결되진 않아요."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스피노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스피노자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문구라며 본인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고 읊었다.


"슬퍼하지도, 비웃지도 말고, 다만 인식하라"


스피노자가 한 말이란다. 스피노자는 유대인이고, 네덜란드 사람인데, 20대에 유대인 집단으로부터 추방당했다고. 그리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렌즈를 가공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취미로 철학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결국 그 렌즈 조각들이 폐에 쌓여 폐병으로 40대의 이른 나이에 죽었다고.


취미로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니. 선생님과 나는 같이 웃었다. 그 사람도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결국 스피노자까지 들먹이며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피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우울에 빠져있지 말고 이 세상을 연구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탐구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선생님과 나의 대화 주제는 누구 한쪽이 의견을 굽히지 않는 이상 논의가 끝날 턱이 없다.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됐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차마 돈 만 원을 택시비에 쏟아부을 순 없었다. 내 슬픔의 원인은 내가 세상을 인식하지 않고 슬픔에 빠져있기 때문인 건가. 난 세상을 알고 나서 더 슬픔에 빠져버렸는 걸. 세상은 너무 단단하고 X같다. 그 단단함과 X같음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해진다.


내 생각이 노답이라는 걸 안다. 긍정적인 탈출구를 찾아볼 수 없는 고민이다. 생산적이지 않다. 이 고민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이 고민의 해결이 결국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결국 지워졌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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