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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Jan 04. 2021

끝내지 못할 글

어제 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갔다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는 3년 전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으셨다. 3년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고 통보받았다. 할머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3년을 아프다 가셨다. 지난 추석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명절이었다. 그때 쓴 글이 있었다. 브런치에 발행하진 않고 저장만 해두었던 글이다. 하지만 그 글은 영영 끝내지 못할 것 같다. 그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했던 이 마음은 이제 사랑으로만 간직하려고 한다.


그들의 대화


byumbrellaOct 03. 2020


추석을 맞아 할머니댁에 갔습니다. 한 달 만이었던 거 같아요. 자주 가는 편이지만 추석에 가는 건 왠지 의미가 더 특별해집니다. 사실 저번주 통화 너머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기운이 많이 없으신 것 같아서 걱정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말이죠. 전 추석 전날 여행을 다녀온 철부지 손녀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본 할머니의 모습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전하셨습니다. 투석을 시작하신 이후로 피부도 가라앉았습니다. 예전에 할머니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한동안 가라앉지 않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 피부를 보고 부러워하시는 모습에 그렇게 마음이 짠할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원망하지만 동시에 사랑합니다. 어릴 적 저를 돌봐주시고 길러주신 분이니까요. 단단히 체해서 울고 있는 저를 업어가며 달래주신 분도, 좋아하는 갈치를 구워 손수 발라주신 분도 할머니입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일찍 하교하는 손주들을 데리고 짜장면을 사주셨던 분도 할머니입니다.


14년 전, 할머니는 화장터에 들어갈 자신의 큰아들이 담긴 관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그때 '젖 먹던 힘'이 뭔지 알게 됐다. 사람 몇이 달라붙어 할머니를 저지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울부짖고 관을 붙잡던 할머니가 너무나도 순순히 화장터에 들어갔다. 그게 너무 슬펐다. 죽음이 가져간 할머니의 체온과 혈색과 힘이. 할머니가 더 이상 날 안아줄 수 없다는 사실이.


할머니네에 놀러 갈 때면 할머니는 우리가 고스톱 치는 걸 참 좋아했다. 웃음소리로 시끄러웠을 텐데도, 할머니는 잘 주무셨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낸 소음을 인생의 배음으로 삼으신 분이었다.


할머니의 푸근한 품이 그립다. 할머니의 큰 손이 그립다. 할머니의 물렁물렁한 살이 그립다. 할머니가 그립다.


머리가 커진 이후로, 난 할머니를 미워했다. 할머니도 그걸 알았다. 그걸 알면서도 통화를 끝낼때면 꼭 '은진아 사랑해'라고 말해주던 당신이 그립다. 당신이 보고싶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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