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mbrella Oct 12. 2021

“코어가 전혀 없네요.”

이 한 마디에 난 폼롤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큰맘 먹고 끊은 필라테스의 오티날이었다.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예요?”  “친구들이 다 해서 저도 해보고 싶어서요.”


선생님이 웃었다.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렇지만 진심인데. 하지만 잽싸게 또 다른 이유를 말했다. “제가 코어가 약해요, 근데 친구들이 필라테스를 하면 신기하게 코어를 많이 키우더라고요. 그래서요.”


그 한 마디 때문인지 오티는 코어 운동으로 진행됐다. 첫 운동부터 부들부들 떨어대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놀라셨다. 점점 운동 단계를 낮췄다.


“자 그럼, 이거를 해보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디선가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필라테스 오티에서 울어버리는 바보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았다.


“은진님, 코어가 전혀 없네요.”


기초 운동까지 못 해내자 선생님은 내 특징을 말씀하셨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고,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해버리고, 선생님 말을 집중해서 안 듣고. 그중 몇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적어도 오늘 수업에선 다 사실이었으니까. 듣고만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걸 알아채지도 못한 채.


“은진님, 우세요…?”


날 울린 건, 멀티태스킹이 안 되고, 끈기가 없고, 집중력이 없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코어가 전혀 없다는 말.” 그 한마디였다.


“코어가 전혀 없네요.”


그건 지난 내 2년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문장이었다.


하루의 2/3를 잠만 자며 지냈다. 깨어 있을 땐 먹었다. 정신을 차려 눈을 떠보았을 땐, 살이 쪄 있었다.

절망한 채로 또 먹고 잤다. 학교에 다닐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늘도 제발 아무도 마주치지 않길 바랐다. 비대면 수업으로 바뀐 뒤엔 더 가관이었다. 실시간 수업을 틀어놓은 채 잠이 들곤 했다. 마지막 학기는 수업의 1/3도 다 듣지 못한 채 시험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30kg이 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중 1/3을 뺐다. 살을 더 빼기로 마음 먹은 건, 아니 뺄 수밖에 없는 건 취업을 위해서다.

면접에선 날카롭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니까. 그것에 날씬함 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 그래서 큰맘 먹고 두 달 치 헬스와 필라테스를 끊었다. 그 스타트가 눈물로 시작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50분 오티의 절반은 선생님이 날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괜찮다고, 누구나 처음은 있고, 자신이 하는 말은 지적이 아니라 교정이었다고. 그리고 그룹 필라테스는 오늘처럼 상세하게 한 명 한 명 한테 말해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현실적인 농담(?)도 함께.


그러면서 힘들 땐 자기 번호로 ‘언니..’ 한 마디 보내면 커피 한 잔 사주겠다는 따뜻하고도 효과적인 위로도 함께. 내 모든 속사정을 물어보지 않으면서도 날 안고 내 손을 어루만지며 괜찮아, 하는 뻔한 위로가 아닌, “근데 하나뿐인 오티를 이렇게 날려버려서 어떡해.”라는 적당한 온도로.


그렇게 뻔한 장삿속이라는 불신에서 시작한 오티는 묘하고 우스꽝스러운 눈물과 위로로 마무리됐다. 하나뿐인 1:1 오티 기회는 날려버렸지만. 실컷 무너져버린 어제,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왠지 모르게 후련하다.


작가의 이전글 미라클 슬리핑. 조금 더 푹신한 세상이 되길 바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