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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Aug 30. 2021

미라클 슬리핑. 조금 더 푹신한 세상이 되길 바라며

for Anna

지난 2년간 나는 잠보였다. 24시간 중 18시간을 잠만 잤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운이 좋게도 학교랑 30분 거리에 사는 덕분이다. 택시를 애용했다. 다행히도(?) 잠만 자는 덕분에 사람 만날 일이 적어 돈 쓸 곳이 택시비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알바비의 대부분은 택시비로 쓰였다.


코로나 이후로는 이런 생활이 더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3시 수업이면 2시 55분에 일어나서 줌을 켜면 된다. 1시간 15분짜리 수업이 끝나면 노트북을 덮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퇴근 시간 즈음에 맞춰 오늘도 생산성 가득한 하루였던 척 2시간 즈음 연기를 한 뒤 10시쯤 잠에 든다. 그게 내 2년간의 루틴이었다.


그래서 그 2년간 행복했냐고? 아니, 지옥 같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많이 먹는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는 사회에서 잠보가 자기혐오를 안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잠보가 되기 2년 전만 해도, 난 우울증으로 지독한 불면을 앓고 있던 상태였다. 그땐 아무리 잠을 자고 싶어도 자지 못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썼다. 잠을 자지 못했지만, 무언갈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불면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잠만 자는 이 잠보는 무언갈 생산하기는커녕 잠의 늪에 빠져 허우적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더 괴로웠던 것은, 당시에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거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때와 지금의 나는 여전히 우울한데, 내 증상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차라리 지옥같이 힘들어서 내 몸을 할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땐 차라리, 몸이 모든 양분을 거부해 살이 빠지고, 잠을 못 자서 몸이 말라가기라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이 빠졌다며, 예뻐졌다며 칭찬해주기라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난? 현저히 줄어든 운동량으로 살은 더럭더럭 찌고, 생산량은 0에 가깝다. 과제를 내는 날에도 집중력이 떨어져 1시간 과제를 하다 보면 2시간 낮잠을 자야 했다. 엄만 그런 날 보며 요새 은진이가 잠이 늘었어, 라며 그저 아무렇지 않은 변화처럼 말했다. 하릴없이 잠을 자는 내가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며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의사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운동하세요.’ ‘좀 움직이세요.’


의사에게 그 움직이는 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너무 부럽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한다는데, 나는 미라클 웨이크업이라도 제발 하고 싶다고 악을 질러대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바꿨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낮에 아무리 많이 자도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24시간 중 18시간을 자도, 주말엔 20시간을 넘게 잠을 자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밤이 찾아오는 건 두려웠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내일이 오니까. 내일이 오면, 난 또다시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안 왔다. 잠이 드는데 2-3시간이 걸렸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고민 끝에 병원을 바꿨다. 새로운 의사에게 말했다. 하루에 2/3은 잠으로 보낸다고. 그랬더니 의사가 물었다. 밤에 잠은 잘 자냐고.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제가 asmr을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걸 굳이 찾아들어도 잠이 안 와요. 잠이 드는데 2-3시간이 걸려요. 근데 자기 전에 핸드폰을 봐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현대사회에 자기 전에 핸드폰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그 정도면 불면증이 맞다고 했다. 낮에 많이 자는 건, 밤에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이라고. 밤에 잘 자는 게 일단 우선이라고 했다.


“불면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울고 싶었다. 내가 전 의사한테 듣고 싶었던 단어였다. 전 병원에서 나는 수면제를 얻기 위해 밤에 잠들지 못하는 내 증상을 억지로 부풀려서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결국 낮에 너무 많이 자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끝날 수 없는 되돌이표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잠은 내 본성이라는 거였다. 잠은 끊어낼 수 없는 내 습성, 내 성향.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깔깔대며 웃던 내 모습은 사실 진짜 내가 아니었던 거야.’ ‘나는 사실 잠만 자는 사람이었던 거야.’ ‘내 인생은 잠만 자다 끝나겠구나.’ 작년에 난 내 인생이 잠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아니다. 난 잠보가 아니었다. 난 아팠던 거다. 잠이 필요했던 거다.


병원을 바꿨고, 불면증 진단을 받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았고, 이젠 꽤 잘 잔다. 지금 이 글도 나름 아침에 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잠으로 끝나는 인생이 나쁜가 싶다. 누군가는 잠으로밖에 끝날  없는 인생을 살기도 한다. 그리고  삶의 좋고 나쁨을 우리가 판단할  없다. 그리고 밤에  자야 낮에    있는 것처럼, ‘자체는 나쁜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이라는 단어 자체를 게으름의 대명사처럼 여긴다. sleeping이라는 단어가 떨어지면 왠지 모르게 끈적하고 지루하고 끈끈한 무언가가 연상된다. 사실 잠은 우리를 움직이게    있는 원동력인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도 우습다. 누군가의 미라클 모닝을 가능하게 하는 건, 누군가의 미라클 이브닝 덕분이다. 누군가 우리가 우리의 밤을 안전히 지켜주고, 우리가 낮에 생산한 쓰레기를 처리해주고, 아침에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집 앞까지 배달해주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의 미라클 모닝이 가능한 거다.


사람들이 잠에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에 잠을 자든, 그 순간 그 사람에게 필요한 순간이라고 인정하고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쯧쯧하면서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잘 자라고, 조금 더 편안하게 잘 자라고 불을 꺼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지나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푹신한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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