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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Dec 22. 2021

감당할 수 있는 가난이란 게 있을까요.

입사한 지 일주일만에 퇴사를 했습니다. 회사의 명백한 잘못으로 내린 결정이고, 해서 잘한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두통과 우울 그리고 이 울렁거리는 멀미는 어쩔 수가 없네요.


퇴사문자를 보내고 나온 오늘 아침 바퀴벌레가 알을 깐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생명체들은 꽤나 가엾기도 또 징그럽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가엾음은 뒤로 하고 열심히 잡았습니다. 가엾음이 제 트라우마를 살찌우게 할 순 없으니까요.


벌레를 잡고 바닥을 청소하면서 느낀 좌절감과 비참함은 꽤나 오래갈 것 같습니다. 전 여전히 이 벌레가 득실거리는 집 구석을 벗어날 돈이 없고, 입사의 설렘과 고뇌, 그러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돈을 왕창 써버린 터라 수중에 남은 생활비 마저 없는 상황이거든요.


어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그랬습니다. 난 진짜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난만 겪었으면 좋겠어, 라고. 하지만 애초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가난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있다면, 전 그 가난을 꽤나 잘 감당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젠 솔직히 자신이 없네요. 그럼에도 전 해낼 거라는 걸 압니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요. 그저 오늘은 우울에 푹 잠기고 싶은 날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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