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발제문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고영남의 <깊은 밤 갑자기>입니다. 이 영화는 1981년 영화입니다.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과 이만희의 <삼포가는 길>을 보면서 제가 반복적으로 말씀드렸던 것이 ‘산업화’입니다. 정확하게는 ‘산업화’가 되면서 직업이 세분화 되고,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다시말해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잉여’ 가 되면서 ‘재투자’ 되기 시작한 시간의 두 영화들이었습니다. <바보들의 행진>의 대학생들은 이 사회가 작동하기 위한 그 어떤 경제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단순히 테니스채를 들고 다니며 읽으나 마나 한 소설이나 뒷주머니에 꽃고 다니고 생맥주나 마시고 다니는 산업화 시대 노동해방 계층을 보여줍니다. <삼포가는 길>의 두 주인공. 장씨와 영달은 자신의 육체를 끝없이 돈으로 바꿔야 하는. 산업화 시대 노동계층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여자주인공 백화 역시 방식은 달라도 결과적으론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재화로 바꾸어야 하는 슬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난 두 번의 영화에서, 제가 이 작품들을 골랐던 이유는 ‘시대정신’에 있었습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한 켠으로는 허무주의에 빠지고 절망하면서. 한 켠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면서. 창작자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생각하는 걸 포기하지 않은 흔적들이 보이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영화들이 양산되었던 70년대의 영화와 다른 지점들이 있어서 이 작품들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영화 <깊은 밤 갑자기>는 그런 시대정신과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대정신과 아무 상관 없는 영화가. 자기도 모르게 영화가 만들어진 그 때 그 시간.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동시대성을 획득하게 된 특이한 사례가 <깊은 밤 갑자기> 입니다.
이런 재미없는 얘기는 일단 좀 뒤에 하고. 조금 재밌는 얘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혹시 ‘컬트’라는 단어 들어보셨습니까? <깊은 밤 갑자기>는 한국영화사의 ‘컬트영화’로 꼽힙니다. 우리 모두 90년대를 살아왔으니까. 물론 깨알같이 제가 보기보단 좀 어리다는 걸 어필하면 90년대에 저는 나이가 한 자리였으니 그 시대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순 없겠지만. 하여튼 우리나라로 이야기를 한정하면 ‘컬트’라는 단어가 적극적으로 보급된 시기가 이 시기입니다. ‘컬트’라는 이름을 단 밴드도 등장 했었습니다. ‘너를 품에 안으면’ 이라는 노래로 꽤 나름 히트도 쳤드랬습니다. 뭐 뒷 이야기 지만 이 밴드에서 앨범 녹음할 때까진 참여했다가 첫 방송 하기로 한 날 야반도주 해서 한동안 업계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컬트’의 초기 멤버가 바로 ‘김바다’입니다. 훗날 나비효과 라는 밴드로 <첫사랑>이라는 히트곡도 냈죠. 이 밴드가 최근에 <슈가맨>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MBC 5기 개그맨 세 명이 모여서 만든 개그팀 이름이 ‘컬트 삼총사’ 였습니다. 이 팀의 멤버가 정성한, 정찬우, 김태균 입니다. 네. 우리가 아는 그 ‘컬투’의 모체가 바로 이 팀입니다. 이 사람들이 만든 개그가 당시 사람들이 익숙하게 소비하던 개그의 형태와는 좀 달라서. 사람들이 인지하기도 전에 개그가 끝나버리기도 하는 터라 개그가 뭔가 좀 다르다, 특정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개그가 좀 난해하다, 등등의 반응을 얻자 그냥 자신들이 개그를 ‘컬트 개그’로 지칭하고, 자기들의 팀 이름도 컬트 삼총사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 단어를 써서 팀 이름을 지을정도로. 이 단어의 사전적이고 문화사적인 뜻은 잘 모른다 해도 이 단어를 이야기 했을때 뭔진 몰라도 어떤 이미지를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는 통용되었으니 이 단어로 팀 이름을 지었겠죠.
우리나라에서 90년대에 ‘컬트’라는 단어가 조금 더 본격적으로 확산 될 수 있었던 것은, ‘세기말’의 정서 때문입니다. 80년대 중 후반부터 ‘종말론’이니 ‘지구종말’이니 하는 얘기가 ‘소년중앙’이나 ‘선데이 서울’ 에 가십거리로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90년대가 되면 이게 장난이 아니게 됩니다. 이 ‘해괴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용어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컬트’라는 단어가 적극적으로 사용된 게 아닐까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의 시기가 사이비 종교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오대양 이라는 괴이한 단체가 사람들끼리 모여 집단생활하다가, 식당 천장에 떼죽음 당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말 그대로 ‘경악’에 빠뜨렸던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87년이었습니다. 1992년에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의미로 ‘다미선교회’ 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이 ‘휴거’. 그러니까 ‘공중들림’ 해서 사람들이 다 하늘로 사라진 다는 해괴한 종말론을 내세운 단체가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며 사방 난리를 쳐놨습니다. 이 시기에 대한 기억이 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이 시기에 지하철역 역사에 사방팔방 이상한 유인물들이 붙어있고, 지하철 내 방송으로 이 종교단체의 설교방송 테이프가 나오는 등 정말 말 그대로 ‘미쳐돌아갔다’는 말이 적합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10월 28일이 다가오자 뉴스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결국은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까지 이 사안을 다뤘습니다. 물론 이 시기 그것이 알고싶다는 말 그대로 미스터리에 집중한 방송이었으니 잘 어울리는 내용이었겠죠. 물론, 아시다시피 우리는 92년 10월 28일을 무사 살아남아 2018년 8월 13일 더운 오후에 이렇게 모여있습니다.
1994년 1월 12일에 조희성 이라는 사람이 구속되었는데. 이 사람은 ‘영생교’라는 종교의 교주였습니다. 구속당한 이유는 ‘사기’, ‘횡령’ 이었는데. 종교문제연구소와 신도의 가족들이 여기서 실종된 사람이 15명이 넘는다고 본격적인 수사를 요구했습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결국 이 종교단체는 배교자들을 살해해서 뒷산에 암매장 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비슷한 시기. 1996년에 다른 종교단체 신도 30여명이 진정서를 내서 한 교주가 체포되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김기순’입니다. 이 사람은 전북 익산에 있던 ‘아가동산’의 교주였습니다. 여기도 80년대부터 신도암매장, 금품갈취, 납치 및 감금, 노동착취 등 화려한 전적을 자랑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생교 교주 조희성은 감옥에서 죽었고, 김기순은 지금도 떵떵거리고 잘 삽니다. 명목상 서류에는 김기순의 이름이 올라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김기순은 지금 한 회사의 회장입니다. 서류상으로 회장은 김기순의 종교를 믿던 신도가 올라있죠.
말 그대로. ‘괴이’한 시대죠. 정말 ‘컬트’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시기였을 겁니다. 좀 다른 방향으로는, 전에 제 어머니하고 9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당신께서는 그 때 나왔던 애들, 그러니까 H.O.T나 젝스키스를 말하는 겁니다. 걔내들 머리를 보면서 참 괴이했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데 조금 재밌는 게. ‘사이비 종교’를 부르는 영어단어가 ‘컬트’입니다.. ‘컬트’의 원래 뜻은 종교적인 의미라고 합니다. ‘소규모의 종파’, 혹은 ‘추종자’ 들을 부르는 표현이 ‘컬트’인데요. 당대의 주체적인 기운, 어쩌면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일종의 대안적인 기운을 끌고 들어오는 일련의 움직임, 사람들을 부르는 말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이비 종교’를 부를 때 많이 쓰는 표현이라고 하네요. 즉 ‘컬트’라는 단어는 사회사적인 의미, 문화사적인 의미 두 가지의 방법으로 쓰입니다. 물론 두 가지가 아예 관계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가 흔히 문화현상, 특정작품, 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사체 같은 것들을 부를때의 ‘컬트’는 일종의 ‘대안적 움직임’ 그 ‘기운’등을 부를 때 씁니다. 근데 그 사람들이 하는 행태가 보편적인 사람들이 눈으로 보기엔 잘 이해되지 않는 경향도 있겠죠.
‘한국영화’는 ‘컬트’와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작품이 별로 없었습니다. 소규모의. 하지만 열광적인 팬덤이 특정한 영화를 숭배해서 아무도 안 볼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 폄하받은 영화의 가치를 끌어올린다거나 하는 행태는 90년대. 비디오가 널리 보급된 이후의 이야기이고 그 이전 영화들은 그다지 이런 숭배를 받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90년대 이후. 비디오가 보급되고 이전 영화들이 알음알음 출시되고, 조금 있어보이는 표현으로 하면 ‘시네필’이라고 불리는. 광적으로 영화에 빠져드는 영화 매니아들이 재발견해낸 감독이 ‘김기영’입니다. ‘김기영’의 대표작은 ‘하녀’입니다. 말 그대로 음악선생님 집에 하녀가 들어와서 그때부터 주인마나님과 음악선생, 하녀 사이의 대단한 긴장감이 폭발하는 영화죠. 그런데 어디서 보신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 본 <깊은 밤 갑자기>는 하녀의 81년판 버전입니다. 정식으로 리메이크라고 얘기만 안 할 뿐이죠. 좋게 말하면 오마주 나쁘게 말하면 베껴먹기라고 해야할 까요
<하녀>는 60년 영홥니다. 60년대의 한국은, 저로선 정말로 훗날에 사료를 통해서 본 문서의 역사입니다. 어쨌든 제가 본 바에 따르면,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십시오. ‘인스턴트 커피’나 ‘카레’같은. 서구식 식문화. 다시말해 서구식 ‘모더니즘’이 유입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피아노’를 다룰 줄 아는 음악선생. 즉 인텔리 라면 당대의 지식계층 중에서도 맨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남자주인공입니다. 60년. 그러니까 전쟁 끝나고 7년 뒤. 아직 전후복구도 다 끝나지 않은 시기에 몇 안되고 ‘하녀’를 집에 둘 수 있는 부르주아 계층. 그런데 이 부르주아 계층으로 침입해 들어오려는 사람이 ‘하녀’. 프롤레타리아 중에서도 저 아래. 저 바닥에 있는 여자입니다. 부르주아인 마님 입장에선 용납이 안 되죠. <깊은 밤 갑자기>는 거기에서 조금 더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보신 분들도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전에 김병욱 이라는 연출자가 TV용 시트콤으로 <지붕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도 부르주아지인. 중소식품기업의 사장인 이순재 가정에 시골에서 아빠가 사기당해 서울로 도망온 자매가 얹혀사는 데 그 중 언니인 신세경은 이 집의 식모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이순재네 집의 손자인 의사 최다니엘과 멜로 라인이 발생하지만, 연출자 김병욱은 응 그런거 없어 라고 악의적으로 신세경과 최다니엘의 끝을 파국으로 맺어놓습니다. 형태가 좀 다릅니다만. 부르주아지 가족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이 들어와 판이 뒤 흔들린다는 이야기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야깁니다. <깊은 밤 갑자기> 역시 그렇죠. 한 가지 재밌는 건, 김기영 감독 자신이 <하녀>를 여러 번 다시 만들었는데. 이를테면 <하녀>, <화녀>, <충녀>, <화녀 82>, <육식동물> 에 걸쳐서. 정작 <하녀> 말고 다른 영화는 그렇게 자주 이야기 되진 않습니다만. 물론 못 만들었단 얘기는 아니고요. 고영남의 <깊은 밤 갑자기>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꽤나 무서운 영화로 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선 한국영화사에서, ‘정사’에는 들어갈 영화가 아니지만. 그러니까 <오발탄>이나 <삼포가는 길>이나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기쁜 우리 젊은 날> 같은 영화는 아니겠지만 ‘야사’에는 들어갈. 취향의 영화로는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다’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건 재미 없는 일 일겁니다. 일단 연출이 꽤나 ‘으스스’하고. 대충 찍은 것 처럼 보이는 장면이 없다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동시에, 70년대 활발하게 ‘싸게’ ‘막’ 만들어진 싸구려 공포영화들. 물론 그 중엔 <여곡성> 같이 재평가 된 작품도 있습니다만 공포영화들이 70년대 후반이 되면. 즉 시대가 점점 더 혼란해지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데 81년. 1년 전 광주에서 으스스한 일이 있었다고 소문으로 전해지던 시절에 나온 공포영화라는 것도 어딘가를 쿵 내려앉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이 원고는 2018년,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인천의 <대안공간 듬>에서 진행된 세미나 <한국영화의 뉴웨이브_돌연변이들>을 위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