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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무형 May 20. 2020

상상의 영화가 영화적 순수함의 본령을 찾아나서다

존 토레스 <이상한 루카스>

상상의 영화


 흥미로운 인터뷰에서 시작해보자.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의 ‘워크 인 프로그레스’(제작중인 독립영화를 모아 제작지원을 위한 피칭을 거쳐 최종 선정작에 지원해주는 제도) 최종 경쟁 5편 중 한 편으로 선정되었던 <이상한 루카스>(그해 최종 선정작에 뽑히지는 못 했다. 그해 최종 선정작은 마티아스 페네이로의 <비올라>, 홍리경의 <탐욕의 제국>이었다)는 2013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정식으로 상영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 내한했던 존 토레스는 영화잡지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이상한 루카스>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필리핀 감독 이스마엘 베르날에 대한 헌사 같은 작품이다. 80년대 40여편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다. 영화를 하면서 그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마음먹었다. 그의 작품 중 <Scotch On The Rocks To Remember Black Coffee to Forget>은 감독이 제작자와 불화로 필름을 불태워버려서 아무도 보지 못한 작품이다. 그 작품의 다음 작품에서 인물과 내용, 배경을 가지고 와서 <이상한 루카스>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내 영화를 통해 이스마엘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빈 부분에 연속성을 주고 싶었다.>     


  이스마엘 베르날은 필리핀 영화계에서는 전설적인 감독이다. TV연출자, 연극연출자, 배우와 감독을 모두 거친 이스마엘 베르날은 70년대부터 시작된 일군의 필리핀 대학 독립영화 운동의 핵심인물이다. 그의 작품 중 80년에 발표된 <밤의 마닐라>는 필리핀 현대영화사의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기도 하다. 이스마엘 베르날은 71년부터 영화를 발표하기 시작해 사망 직전까지도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는데, 존 토레스가 언급한 <Scotch On The Rocks To Remember Black Coffee To Forget>은 원래대로라면 1976년 언저리에 개봉되었어야 할 작품이다.   


 하지만 존 토레스의 말 대로 이 작품은 필름을 불태워버려서 아무도 보지 못한 전설의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존 토레스는 <이상한 루카스>를 통해 이스마엘 베르날의 구멍난 필모그래피를 채우고자 한다. 사후적인 해석임을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필모그래피는 결국 어떤 연속성을 지닐 확률이 높다. 존 토레스는 이스마엘 베르날의 <Scotch On The Rocks To Remember Black Coffee to Forget>과 다음 작품 사이의 간극을 상상해 <이상한 루카스>를 만들었다. 즉 <이상한 루카스>는 영화를 통한 상상으로 상상속의 영화를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완벽히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겠지만, 김태용은 <만추>를 만들 때 원본인 이만희의 <만추>를 어떻게 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김수용의 리메이크인 <만추>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상상 속으로 들어가 이만희의 <만추>가 전하고자 했던 감정적 파고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상한 루카스>는 존 토레스가 <이상한 루카스>를 통해 자신의 상상을 형상화 시키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루카스>안에 이스마엘 베르날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작업이라는 큰 대명제가 전면에 있다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영화를 찍는 존 토레스 라는 영화감독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로 진입해 이스마엘 베르날이 보았을지도 모를 그 어떤 정념을 존 토레스가 더듬거리며 만져본 영화로 보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상한 루카스>에는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를 끊임없이 사유하는 몸짓이 담겨있다.           


순수함의 본령     

 

 <이상한 루카스>의 내용을 논리적이며 시간순대로 배열하는 행위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애초에 그런 방식을 의도했다면, 끊임없이 앰비언스와 무성영화적 미쟝센을 대립시키면서 영화를 초현실적인 무드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선택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상한 루카스>는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주술과도 같은 효과에 더 집중한다.      


 

 <이상한 루카스> 안에서 소년 ‘루카스’는 본인이 반인반마라고 믿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소년은 총알에도 상처 입지 않는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니면 <이상한 루카스> 안에서 영화를 찍으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찍고 있는 극중극 속에서의 설정인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모호하게 보인다. 영화가 현실과 영화사이의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서 그 자신의 자리를 획득하는 예술이라는 특징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토레스>는 영화가 가진 순전한 매력에 집중하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초기영화들이 목표했던 것은 사람을 ‘홀리는’ 것이었다. 처음의 관객들은 단순히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홀렸을지 모르겠으나, 현대의 관객들을 ‘홀리기’ 위해서는 더 정교한 플롯이나 더 압도적인 스케일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존 토레스는 <이상한 루카스>에서 아주 단순하지만 현대의 상업영화(올바르지 못한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하나, 존 토레스나 여타의 실험영화 진영 반대편을 설명하기 위한 편의적인 단어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가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 영화 자체가 주술적인 힘을 실어보내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현실과 영화사이의 경계를 끊임없이 혼란시키는 작업을 조심스레 해낸다.      

 

 <이상한 루카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제시된 단어는 ‘망각’이다. 강을 건너면 그 자신이 가졌던 이전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설정이 극중극에 붙고, 누군가는 실제로 이 강이 존재하며 자신이 이 강을 지나왔기 때문에 기억을 잃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망각은 신화와 설화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 중에 하나이고, 존 토레스는 필리핀 파나이섬의 설화를 모티브로한 <후렴은 노래속의 혁명처럼 일어난다>를 만든 감독이다. 동시에 신화와 설화는 영화가 끊임없이 그 기본적인 모티브로 끌어들이는 어떤 원형과도 같다. 존 토레스는 본인이 구축한 세계를 끊임없이 리얼리즘과 주술, 가상과 실제를 포개는 방식으로 직조한다. <이상한 루카스>에 시종일관 등장하는 나레이션의 신뢰도는 어느정도인지 판정불능이고, 등장인물들은 강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억을 잃고, 혹은 기억을 잃지 않으려 버틴다. 이 싸움이 ‘영화’라는 매개체에 태워져 스크린 앞에 던져질 때, 현실과 영화가 맺는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발생한다.     

 

 물론 이 ‘망각’의 테마를, 이스마엘 베르날이 <Scotch On The Rocks To Remember Black Coffee to Forget>을 만들었던 70년대 중반의 필리핀 정치상황에 대입해서 볼 수도 있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65년에 당선되고 70년대 중반 필리핀은 경제적으로는 나아졌을지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자유가 억압된 시대였다. 그때 망각으로 도망쳐버리고자 하는 심리와 버텨내고자 하는 심리가 공존하는 것이 당대 엘리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는 식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존 토레스가 이스마엘 베르날에 대한 오마주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존 토레스는 2010년대의 감독이다. 허우 샤오시엔이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찬 영화 <카페 뤼미에르>를 만들었다 해도, 샤오시엔의 시선은 이 영화를 만든 2003년에 가있지 오즈의 시대에 가있지는 않다.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된 베그니노 아키노는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 아버지(아버지 아키노는 마르코스의 정치적 라이벌 이었고 미국에 망명했다가 고국에 돌아와 투쟁할 것을 맹세하고 귀국길에 올라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했다)와 어머니(어머니는 남편의 사망이후 국민의 의해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사이에서 자라 정치에 입문하고 2010년 15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스마엘 베르날이 영화를 만들던 70년대의 필리핀과 존 토레스의 2010년대 필리핀은 같지 않으므로, <이상한 토레스>를 정치적인 알레고리로 읽는 행위는 그렇게 흥미로운 방법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2016년 현재, 마르코스 시대보다 더 난망한 시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는 두테르테 시대를 맞은 존 토레스가 <이상한 루카스> 당시보다 더 잔혹하게 뒤바뀐 컨텍스트 안에서 어떤 새로운 작품을 만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IMDB를 살펴보아도 현재 존 토레스의 필모그래피는 <이상한 루카스>에서 멈춰있다. 나는 존 토레스가 <이상한 루카스>에서 보여준 영화 그 자체의 매혹을 더듬거리며 쫓아나가는 태도를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 영화 그 자체가 가진 순수한 주술 같은 힘을 찾아나가는 순수주의자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어만 간다. 그런 시류 안에서 필리핀 독립영화계의 일군의 감독들(존 토레스, 시린 세노, 라야 마틴, 그리고 물론 라브 디아즈)이 보여준 영화의 주술적인 힘에 매혹될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기원한다.   


※ 이 글은 2016년, <분더캄머: 동남아시아 실험영화의 방> 프로그램을 위해 썼다. 존 토레스는 이후 2016년에 필리핀 배우 리즈 알린도간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2019년에는 <우리는 여전히 눈을 감아야만 한다>라는 단편으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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