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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r 25. 2018

봄이 무섭지 않아요?

5년 차 사과농부의 봄맞이

대세는 막을 수 없다.

가고 오는 계절의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아 삐죽이 내민 풀잎 위에 눈이 내려도 우리는 안다,

저 눈이 한겨울의 그 눈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농부의 맘은 더 무거워지고 오는 봄이 무섭고 불안해진다.

사과농부로 다섯 번째 맞는 봄이지만 해가 갈수록 봄이 다가오면 불안해진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어제 만난 L교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다.

"봄이 무섭지 않아요? 농사지으면서 나는 봄이 무서워요.".

L교수님은 퇴직 후 사과재배 6년째가 되신다.

오, 감사합니다, 교수님. 혼자 가는 길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헌데 이건 좀 불공평하다.

지난주에 온 눈. 겨울 분위기는 하루만에 말끔이 녹은 눈과 같이  스러져버렸다, 아래 사진은 제일 좋아하는 휴식장소.



과거 농사와 상관이 없을 때는 봄을 위한 준비는 옷을 갈아입는 정도였고  

봄을 위해 한 일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꽃이 피었고 감탄만 하면 되었다.

당연히 봄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사과농부인 지금은 겨울은 나무가 쉬는 계절이고 농부는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겨울 동안 전정하느라 모든 사과나무와 1:1 미팅을 하고 거친 나무껍질을 긁어 

틈새에 월동하는 벌레들을 없애고 날이 풀리면서 비료 준비 , 관수 준비를 한다.

또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한 중점 실시 사항 실행 준비등 몸도 맘도 바쁘게 봄을 준비한다.

봄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봄이 무섭고 불안하다.


혹시나와 역시나


겨울 동안 사과를 포장하여 배송하며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사과를 만들리라 

반성하고 각성하고 다짐하는 절차가 반복된다.

올해는 전정을 직접 내 손으로 해서 빛과 바람이 더 잘 통하게 하고 시비 시스템도

바꾸고 등등 전과는 다른 노력을 하며 '혹시나 이번엔 좀 다르겠지' 기대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나아진 게 없네'로 된다.

미팅이야 잠시 때 빼고 광내는 게 전부지만 사과농사는 일 년 동안 노력한 결과인데 

미팅 결과나 사과농사 결과가 똑같이 혹시나 기대했다가 역시나 같은 결과이면 

문제가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무섭고 불안한 건 봄이 아닐 수도 있다.

무섭고 불안해하는 것은 봄이 되면 해야 하는 일들과 그 일들이 만들어내는 결과 때문

일 수가 있다.

매년 여러 가지 다짐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작년보다 나은 결과를 희망하지만

"역시나"로 끝나는 수확의 결과가 무섭고 불안한 것이다.


'무섭고 불안하다'는 것.


켄 윌버의 '무경계'에 따르면 '불안' 증상은  원래 그림자 형태로 변환하면 '흥분'이라고 

한다.  

시합 직전의 운동선수가 느끼는 불안은 시합하는데 필요한 파이팅을 의미한다고 이해했다.

봄이 오는 길에서 느끼는 농부의 불안 또한 같은 것이다.

결국 "봄이 무섭지 않아요?"는 농부에게는 "올 농사 지을 일을 생각하면 흥분되지 않나요?"라는

말이다.

농사란 조물주와 동업이니 날씨나 기후는 그분께 맡기고 사과농부는  올 한 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파이팅 있게 처리하면 그만이다.


기대하시라 멋진 사과, 올 가을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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