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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r 30. 2018

농사 방정식: 1=0.7, 1+1=3

사과나무의 전정을 마치며

3월 마지막 날 전에 드디어 전정을 끝냈다.

1월 초부터 시작하였으니 3개월이 걸린 셈이다.

시원섭섭한 것이 오랜 장정을 끝내서 시원하지만 전정은 생각을 하며 하는 일이어서 작업 자체가 재미있는데 끝나서 섭섭하다.


전정이란?

현재의 사과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에 의해 변형이 되어  자연 상태에서는 사과나무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이 관리하면 좋은 사과를 생산하지만 관리가 없으면 사과를 생산하지 못하는 단순한 나무에 불과하다. 

나무의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진화의 어두운 부분인 셈이다.

매년 겨울, 사과나무의 휴면기에 다음 해의 적절한 수확을 위하여 나무의 가지를 정리해 준다.

기본적인 목표는 모든 가지가 햇빛을 잘 받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는 것이다.

나무의 생리를 이해하고 앞으로 자라날 가지 등을 생각하여 적절하게 가지를 배치하여야 하고 추운 겨울에 야외에서 하는 일이라 사과일 중에서는 제일 비싼 인건비를 지출해야 하는 작업이다.

영하 20도가 된다는 추운 날 전정을 하러 나가며 '회사에서 시켰으면 제정신이냐고 목청을 높였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는데 결국 주인과 대리인은 엄격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예전 회사 다닐 때 근로자를 기업주의 대리인으로 간주하는 대리 이론 (Agency Theory)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었는데 근거 없는 자만심이었다.                                                


전정가지 파쇄전과 파쇄후


농사 방정식과 품앗이

예전 농사일은 사람과 소의 노동력이 전부여서 품앗이가 기본적인 형태였다.

효율면에서 혼자 일하는 것과 같이 일하는 것은 엄청 다르다.

혼자 일하면 1인분이 안 되는 0.7 분량이고 둘이 같이하면 2인분 이상의 효율이 나온다.

즉 1=0.7인분이고 1+1=3인분이라는 농사 방정식이 성립한다.

펜으로 일 할 때 보다 몸으로 일 할 때 사람 수에 따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귀농한 사람들이 기존의 마을 사람들과 품앗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고 또 귀농한 사람들끼리는

 정신적인 유대관계 및 지리적 위치가 달라 쉽지 않다.

그러나 귀농인들 간의 품앗이가 바람직하다는 말들은 한다. 


올해 귀농인들로 조직된 우리 작목반에서 처음으로 자체적인 4일간의 전정 교실 프로그램을 만들어 

반 정도의 인원이 참여했고 그중 나를 포함한 4명이 전정 품앗이를 결성하였다.

전정 교실이 끝난 후에 4명이 각자의 밭에서 2일간 돌아가며 일을 했고 

또 능력이 안 되는 작목반원의 밭을 전정해 주기도 하였다.

매년 일정 경비가 지출되던 전정 항목이 올해는 금액은 적지만 수입항목이 된 특별한 전정의 해가 되었다.

겨울이면 전정을 전문적으로 한 P 씨를 제외하곤 자기 밭에서만 제한적으로 전정을 하던 사람들이라 

전정으로 다른 작목반원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다들 뿌듯해했다.

나도 그 일원으로 다른 사람의 밭에 가서 돈을 받고 일하는 피고용인 혹은 일일 노동자가 되는 새로운 경험을 했는데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과정에서 말 이외에 참 많은 것들이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배운 것, 느낀 것은 많았지만 덕분에 작년에 3월 상순에 끝난 전정을 올해는 3월 말에 간신이 끝낼 수 있었다.

 전정하며 봉우리 터진 것을 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맘은 급했지만 터진 봉우리에  살포시 보이는 연두색이 고와도 너무 고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전정에 대한 사회주의적, 자본주의적 해석

나무의 입장에서는 많이 달고 싶은지 적게 달고 싶은지 알 수는 없지만 건강한 나무는 생식 생장보다는 영양생장 즉 사과를 만들기보다는 가지를 뻗고 나무를 키우기 싶어한다. 반면에 약한 나무는 죽기 전에 자손을 퍼트리려고 많은 사과를 맺지만 영양이 좋지 못해 상품성이 떨어진다.

결국 건강한 나무가 약해지지 안토록 하며 과일을 달도록 유지하는 것이 과원 주의 일이다.

개별 나무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모든 나무가 건강하게 적절히 사과를 달도록 유도하는 과원 주의 방식은 사회주의적 접근이라 할 수 있지만 과원 주 자신의 부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니 자본주의적 접근이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게다가 사과는 그런 인간 덕에 좋은 사과 곧 좋은 씨를 만들어 퍼지게 할 수 있으니 서로 돕고 사는 상생의 길이 된다. 


그러나 그 씨앗은 우리가 바라는 사과나무가 아닐 확률이 높고 또 그 어미나무가 원했던 나무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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