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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Aug 19. 2021

낙동강 세평 하늘길 : 승부역 – 분천역

봉화 마을길 걷기, 낙동강 물길로 이어진 마을들

<컬처라인 2021 1 vol 25, 발행처:(사)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 게재글>


  물길과 기찻길은 오르막길을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다. 기찻길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생기고 그 기찻길 위로 혹은 옆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만들어진다. 따로 인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철길을 이용하여 걸어 다닌 길이었다. 석탄 수송을 위해 1956년 1월 16일 개통된 영동선(당시 영암선)은 강원도 철암에서 경북 영주까지 오르막길을 피해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으로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가며 연결되었다. 그 기찻길 덕분에 산 넘고 물 건너가던 먼 이웃 마을들이 조금은 가까워졌다.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12.1km 거리에는 가운데 양원역 그리고 역무원이나 간이역사가 없이 관광열차 이용객들을 위한 임시승강장인 비동역까지 4개의 역과 그 역을 중심으로 한 4개의 마을이 있다. 기차를 제외한 육로교통 기반시설이 없었던 때에 영동선은 한때(1960년 말) 12만 명을 상회하던 봉화군민의 주 교통수단이었다. 석탄의 시대는 갔지만 수려한 산세들과 강이 이루는 풍경은 남아서 철도청은 분천-철암을 운영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라는 관광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는데 코로나19 이전의 주말 열차편은 예약이 힘들 정도였다. 물이 흐르고 기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몰리자 걷는 길이 생겼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             

지금은 물론 각 역까지 별도의 차도가 있으나(양원역은 근처까지만) 예전에는 따로 길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춘양장이나 태백 통리장을 보곤 분천역이나 승부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철길을 걸어서 귀가하였다. 예전 기차의 출입구는 항상 개방이 되어 있었으므로 장을 본 짐은 마을 근처에 던져 놓았었다. 문명의 이기로 편해진 대신 기찻길을 이용하면서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부담이 늘 있었다. 임기역 근처 우리 동네에도 아픈 기억을 가진 그런 집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낙동강과 영동선 철길을 따라가는 또 다른 안전하고, 쾌적한 멋진 길이다. 봉화군과 코레일 대구경북본부에서 강가와 철도시설물 그리고 잔도로 이어져 멋진 산세와 맑은 물을 보며 철길을 따라 걷는 아주 수려한 트레킹 코스를 만들었다.     

출발역 가는 길 (분천승부역)

이 코스가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출발점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차의 시발점은 "산타마을"로 유명해진 분천역이고 걷기의 시작은 분천역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승부역에서 시작한다. 기차를 탄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닌 요즘에 기차를 타고 곧 걸을 길을 사전학습을 하며 간다는 것은 아직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약간의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이미 그림인데 곧 그림에 내가 등장할 것이니 멋진 일 아닌가? 협곡열차가 운행될 때엔 분천-승부 구간이 8,400원으로 KTX 요금에 버금갔다. 관광열차로 시속 30km로 서행하며 평소 15분 걸리는 거리를 40여 분에 주파했다. 또 차량은 관광용으로 특별 개조된 것으로 전망창이 넓었으며 간이역 포함 2군데 정차했는데 그 중 양원역에서는 막걸리 한 잔에 어묵 한 점을 먹으며 사방 경치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차량 내부는 직접 나무를 때 난방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하여 분위기를 살렸지만 몇 대의 선풍기 외에 별도의 냉방시설은 되어 있지 않아서 2년 전 더운 여름날 어떤 방송에 비싼 돈 받으며 땀 흘리게 한다고 비난하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내가 담당자였다면 냉방에 대해 고려했을까? 또 그 기자였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협곡열차"가 "옛날 기차"를 모델로 하여 기차 안에서 나무를 태우는 난로를 설치하긴 했으나 에어컨은 눈에 띄는 시설이 아니니 설치해야 좋았겠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곧잘 "옛날 기차"라는 개념에 함몰되어 그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그 비난에 쉽게 동조할 수가 없었다. 협곡열차 승차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던 까닭에 그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아래 QR코드를 첨부한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쉽게 유튜브 영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협곡열차가 코로나19로 인해 운행 중지된 요즘에는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승부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를 이용하면 되는데 하루에 3번 있고, 요금은 성인 기준 2600원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유튜브                 

사진 차창을 통해 보이는 낙동강 길, 강과 철길 사이를 걸어 내려온다.          


승부-양원 낙동강 비경길 (5.6km)

트레킹 출발역인 승부역은 분천역에서 두 정거장으로 기차로 약 15분 소요된다. 역사 앞 돌에 새겨진 내용으로 그리고 눈꽃열차 정차역으로 유명한 역이다. 그 글은 어느 역무원이 썼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세평 하늘길"이란 이름이 나왔다.    

사진 승부역

승부역 다음 역은 북쪽으로 경상북도의 마지막 역인 석포역이고 그 다음은 강원도에 속하는 철암역이 된다. 승부역에서 내리면 바로 역 앞에 있는 낙동강변이 출발점이다. 역에서 보이는 인가는 몇 안 되지만 석포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러나 분천역과는 반대 방향이고 분천역방향으로 다음 마을은 5.6km 떨어진 양원역까지 가야 한다. 일단 길을 나서면 강, 나무, 철길 그리고 산 만 있다. 일반적으로 이어지는 강 - 평지 - 산의 구성이 아니라 강물의 경계는 곧 산이다. 초록색을 띠는 맑은 강물과 소나무가 주종인 화강암 돌산과의 어울림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강을 따라가는 길은 많지만 이곳처럼 푸른 산, 맑은 물 그리고 나 홀로 호젓이 걸을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산세를 따라 흐르는 강물을 보며 주위의 산보다 강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은 물이란 것이 노자의 말처럼 낮은 곳으로 몰려서 변화가 무쌍하기 때문일 것이다.            

上善若水(상선약수)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이만물이부쟁)  물은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故幾於道(고기어도)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8장- 노자

봉화로 귀농하여 8년 차인데 사과밭 일부가 분천역을 지나 임기역으로 흐르는 강가에 있어서 강물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덕분에 강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흐르는 강물과 달리는 강물

우리말로 '달리는 강물'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진 않지만 팝송에는 강의 흐름에 대하여 'running'이란 단어를 종종 본다. 내가 좋아하는 "A change is Gonna Come"은 Sam Cooke이 인종차별이 없어지는 변화를 기대하며 만든 노래로 Bob Dylan의 "Blowing in the wind"에 대한 답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가사가 이렇게 시작한다.            

I was born by the river in a little tent 
나는 강가에 있는 작은 텐트에서 태어났지
Oh And just like the river, I been running ever since
오, 마치 강물처럼, 계속해서 달려왔지
It's been a long time coming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But I know a change is gonna come
변화는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네

노래:A change is gonna come(일부) - Sam Cooke
A change is gonna come - Sam Cooke

'running' 이란 단어가 강물에 대해 쓰이면 "흐르다"로 번역해야겠지만 집도 없이 텐트에서 태어난 흑인의 삶은 살기위해 급류의 강물처럼 "달려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어찌 보면 큰 시냇물 같은 이 구간의 낙동강은 때로는 달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용히 흐르기도 한다. 강물이 달릴 때는 혹은 달린다고 느낄 때는 여울을 지날 때인데 강물이 얕을수록 소리가 크니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 같아 내공이 있으면 무거운 수레로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지날 수 있다. 강물은 여울을 지나면 담(潭)을 만난다. 담에서는 물이 고여 깊은 수심은 조용하고 느리게 흐르며 다음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한다. 곧 다시 여울을 만나고 다시 담을 만나는 흐름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여울을 만나면 담이 있다는 것을 알아 버틸 수 있고 담은 다시 여울을 만나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강물은 항상 같은 곳으로 흐른다

강심을 보면 본디 바탕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강물이 늘 넉넉하게 전 강폭을 메우며 흐르는 것이 아니어서 지형에 따라 강폭은 강물이 있는 지역과 평소엔 물이 없다가 수위가 높아지면 물이 흐르는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작년 태풍이 연이어 지나가며 강가에 있던 단면 20-30센티미터의 아까시나무가 쓰러지고 강변에 백사장이 생기고, 마을로 들어서는 다리 위로 강물이 넘칠 정도의 큰 물이 들었었다. 마을 분들 말씀으로는 15년 만의 큰물이라고 했다. 나는 물이 빠지고 난 후의 강물의 흐름이 이 장마로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전과 동일했다. 물길의 흐름은 바닥의 고저 차이에 따라 생기고 물은 많은 토사를 몰고 다니니 결국 강의 흐름은 그 토사의 분포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그 큰물이 지나간 뒤에도 강물 흐름은 전과 같았다. 본성이란 것이 강에도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단어를 발견했다. 결국 강바닥이나 내 얼굴이나 세월에 걸친 세굴과 퇴적으로 만들어진다.     

◆ 안정하도 (평형 하상)
천이나 수로는 장기간에 걸쳐 국부적인 *세굴이나 퇴적을 거친 후 종국에는 그 하상 경사와 단면의 크기 및 형상이 일정한 상태,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고, 이 상태에서는 바닥면의 토사 공급과 토사 유송률이 같아져서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하도를 말한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洗掘:강물에 의하여 강바닥이나 강둑이 패는 일)

걷는 길은 강물이 바로 기찻길을 위해 쌓은 석축과 맞닿아 강이 흐르는 곳에서는 철길 옆의 축대 위를, 또 돌산을 감아 흐르는 곳에서는 잔도로 이어지게 하여 걷는 재미를 더한다. 중국의 잔도처럼 높지는 않으나 잔도에 서서 보는 낙동강과 주변 산세의 어우러짐이 잡념을 잊게 한다.                

사진 철길과 잔도잔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양원역

두 번째 잔도 구간을 지나면 중간역인 양원역에 도착하는데 양원역은 기차가 지나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과 강 건너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원곡마을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 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란 이름이 따라다닌다. 이 역이 세워진 사연을 주제로 "기적"이란 영화가 제작되어 개봉을 준비 중인데 코로나19로 연기된 개봉 시한이 2021년 6월 중이었으나 이마저도 다시 연기되리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보낸  (막내아들 교육을 위해 대통령에게) 수없이 많은 탄원서의 결과로 생긴 양원역은 협곡열차 이전에는 아주 조용한 역이었다. 협곡열차 이후에는 분천리 원곡 마을은 관광열차가 이곳에 10분간 정차하면 막걸리에 어묵을 먹거나 혹은 동네 할머니가 파는 산나물도 구입할 수 있었으니 마을에 돈이 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다리를 건너 있는 울진군 원곡마을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서 전망이 좋아 몇몇 집들은 민박을 운영한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도 간이매장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나  코로나19가 물러나 다시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운행이 되기 전에 예전처럼 오가며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는 5.6km 떨어져 있어서 천천히 구경하며 가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09:31분 분천역을 출발하면 약 15분 후인 09:46분에 승부역에 도착하는데 양원역에서 12:40분에 분천으로 향하는 기차가 있으니 3시간의 여유가 있다. 많이 걷는 것이 부담이 되는 이들이라면 양원역 기차 탑승을 이용해 볼 만하다. 반대로 분천역에서 양원역까지 걷고 12:40 기차로 분천역으로 회귀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영화 기적 예고편"    

사진 양원역


양원 비동역 체르마트 길 (2.2km)

분천역이 스위스 체르마트 역과 자매결연을 한 기념으로 명명된 길로서 이 코스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강을 떠나 얕은 산을 넘어서 다시 강을 대하는데 그 산에 뚫린 기찻길 터널을 우회하는 코스이다. 산을 넘기에 "체르마트"길로 명명되었을 수도 있겠다. 길지 않은 터널을 돌아오는 길이 상대적으로 꽤 길어서 두 점 사이를 잇는 빠른 길이 "직선"임을 실감한다. 그런 이유로 기찻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터널을 애용하였고 사고도 많았다고 한다.

비동마을은 강을 건너는 잠수교 너머에 위치해 있어서 길에서는 계곡 초입의 인가만 보인다. 교각을 건너 승강장만 있는 간이역인 비동역에 도착하면 여기서부터 분천역까지는 차도와 동행한다.        

사진 / 정자가 보이는 철교 시작 지점이 비동역으로 협곡열차만 정차한다.


비동 분천역 (4.3km)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으나 차도가 없었던 강변길을 걷다가 도로를 걷는 것이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와는 달리 하늘이 많이 열려있고 넓은 하상에 수중보로 물이 고여 있어 나름 운치가 있다. 협곡열차 운행 시에는 비동역에서 자전거 대여소를 운영하여 비동역부터 분천역까진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고 분천역에 자전거를 반납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분천역에서만 빌릴 수 있다. 도중에는 잠시 쉴 수 있는 벤치나 소나무 공원 안에 정자 등이 있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나름 멋이 있다.                    


분천역

이곳을 가면 늘 찾아가는 곳이 있다. "황부잣집"이라고 불리는 집인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안채와 더불어 사람이 살지 않는 옛 건물 2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집이다. 갈 때마다 기웃거려도 안채의 인기척이 없어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으나 어느 마을 분 말씀으로는 "예전에 잘 살았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황부잣집. 앞쪽의 건물은 창고 혹은 외양간 그리고 일꾼방이었을 것이다. 이 집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왼쪽의 살림채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원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집 한가운데 대청마루가 있는 한강 이북쪽의 집들과 달리 모든 공간이 문과 벽으로 막혀 있어서 겨울의 한기를 피하도록 되어있는 추운 산간지방의 가옥 전형이다. 겹집(양통집)으로 우측이 부엌, 그리고 부엌 옆의 문을 열면 봉당 혹은 봉당마루로 불리는 곳일 것이다. 대청의 역할은 측면에 깔린 마루가 대신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집의 형태는 함경북도로부터 강원도를 거쳐 경상도 쪽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조만간 내부를 구경 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할 텐데...    

마을을 나서면 "산타마을"의 각종 장식과 조형물들이 조용한 계곡 트레킹이 끝났고 이제 속세의 여울로 달려야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지금까지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깊고 조용한 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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