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농부 세네월 Mar 17. 2023

봉화 명품을 모아 놓은 길

도심3리-서벽리금강송숲길- 백두대간수목원-도심3리

 * "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에서 발행하는 "컬처라인 2022년 28호" 게재 글


춘양면 도심3리- 금강소나무 숲길- 주실령길- 백두대간 수목원 외곽 - 도심3리로 이어지는 이 길은 외씨버선길 (도심3리 – 주실령길 구간)과 백두대간 수목원의 울타리를 따라 돌아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사과밭 사이의 집들과 특히 문수산 자락에 자라는 평균수령 80년의 1,488주의 금강소나무 숲길을 지나 잘 정리된 수목원 울타리를 따라 걸으며 수목원을  감상 할 수 있는 길이다.  

시작은 춘양면 소재지에서 영월로 이어지는 88번 국도변의 도심3리에서 시작한다. 특히 춘양면의 춘양역은 억지로 기차 길을 돌려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억지춘양'의 발원지로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표준어사전에는 ‘억지춘향’ 만 실렸으나 ‘억지춘양’ 또한 같은 의미의 관용어로 인정하고 있다. 또 주변지역의 우수한 소나무가 모여 반출되면서 '춘양목'이라는 소나무이름을 만들게 한 아주 특별한 기차역이다. 춘양면을 출발하여 백두대간 길인 도래기재에 이르는 직선거리 약 18km는 넓은 계곡이 거의 모두 사과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에는 새로 난 잎과 사과꽃으로 가을엔 빨간 사과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마을길도 정겹지만 밭사이에 있는 자리잡고 있는 집들 또한 좋은 구경거리다. 세월따라 변해가는 내 얼굴이나 내 인상처럼 집들도 세월 따라 또 집주인 따라 변해가며 그 느낌이 달라진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 많은 모든 집 들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때로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집과 구매 당시 전 주인이 관리하던 집의 모습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정리 좀 하고 살자”. 집에 관해서 궁금했던 것은 우리의 시골집과 외국의 시골집과의 규모의 차이다. 관광을 하건 다큐멘타리 필름을 보던 이름 난 곳, 혹은 유명한 곳이어서 인지 몰라도 시골집의 규모가 우리보다는 커 보인다. 티벳,네팔의 고산지대 집들도 분명히 우리보다 힘든 조건인데 2-3층 집이다. 그 답은 아마도 “간단한 집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경북 산지의 집들이 추위에 대비한 폐쇄형 집으로 외양간을 집안으로 들이듯이 모진 겨울을 넘기려면 모든 것이 집안으로 들여 올 수 있어야 했다. 겨울 한 철만 버티면 되고 가축도 많이 없는 우리는 서너 칸이면 살 수 있기에 비교적 단출한 집으로 지냈을 것이다. 단출해도 살 수는 있지만 봉화군에만 100여곳이 있는 정자가 말해주는 것은 규모, 신분 그리고 재산의 차이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정자란 것이 단순이 돈만 있다고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신분적, 문화적 벽을 넘어야 가능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그런 과거를 뒤로 하고 사과농사가 비교적 돈이 되는 농사가 된 지난 20여년의 기간동아 집들도 조금씩 나아지는 경제적 상태를 반영하게 되었다. 어느 곳이나 예전처럼 힘든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곳은 거의 없지만 도심3리의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집들은 비록 정자는 없으되 정갈하고 말끔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오래 된 빈집을 보면 지금은 비어 있지만 풀어지지 않는 지나온 이야기 실 꾸러미가 가득 찬듯하다.vs 비교적 새집,  앞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집

.
 황터ㆍ황기ㆍ황기리
 몇대의 주차 공간이 있는 마을회관을 지나면 마을숲이 멋있는 황터성황당을 만난다. 성황당콘테스트가 있다면 상위 입상이 기대되는 잘생기고 분위기 좋은 성황당이다.


부족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에 句利王(구리왕)이 나라를 세우고 살았다 하여 황터라 부르게 되었다. 약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앞 숲에 당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구리왕의 위패와 구리왕에 대한 내력을 적은 기록문과 높이 약 15cm, 길이 약 20cm정도 크기의 구리로 만든 말 두 마리가 함께 보존돼 있어 매년 음력 대보름이면 마을에서 나는 곡식으로 5일간 근신한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 왔었는데, 구리로 만든 말 두 마리는 약 1980년에 분실되었고, 위패와 기록문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당집에 불을 놓아 소실되었다. 그후 동네사람들이 구리왕 유적이 없어진 것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던 차 82년도에 황터마을내 고층계에서 기금을 모아 옛날 당집자리에 비석을 세워 다시 옛 유적을 보존케 되었는데 그 비문에는 句利王位牌墓基城隍位(구리왕위패묘기성황위)라 적혀있다. 
(봉화군청-봉화관광-지명유래)  
  
성황당과 위패 사진  (위패사진은 퍼 온 사진)


마을 분 말씀에 의하면 성화당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소실되었다고 하였다. 새마을운동이 근면 자조 협동에 기반한 잘살기위한 운동이어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다. 정신과 문화를 바꾸기 위한 중국의 ‘문화대혁명’이었으면 큰일 날뻔했다. 중국에게는 안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에게 경제부흥의 기회가 온 것과 오천 년 역사상 중국을 우습게 볼 수 있는 기간 (1-20년에 불과했으나)을 우리 세대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우리가 가발 수출을 위해 머리카락 모으듯이 중국이 했다면 우리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 중국이 지금은 미국과 세계의 패권을 다투고 있다.

 
 마을을 지나 산길을 따라 오르면 사과밭 사이를 지나 외씨버선길의 풍경액자를 만난다. 길에서 만나는 사과밭의 수형도 저마다 다른 것도 재미있다. 다만 지나다니는 관광객의 손을 타는 듯 보이는 표지판이 안타깝다. 수많아 보이는 사과도 수많은 사람이 하나씩 들고 가면 남는 것이 없다. 
 

풍경액자



풍경액자를 지나면 서벽리금강소나무숲길이 시작된다. 봉화지역의 대부분의 산은 소나무 일색이라 낙엽 지는 전나무가 단풍 때문에 대우받는 드문 곳이다. 전나무를 비하 할 생각은 없으나 단풍을 얘기하면서 전나무를 언급하리라곤 나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전나무를 단풍으로 띄울 수 있는 곳이 봉화의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는 춘양목으로 대표되는 봉화의 명품이다. 그런 소나무들 중에서도 궁궐등의 문화재 보수용으로 쓰이는 나무는 금강소나무로 불리며 국가가 관리하는 숲이 몇 개 존재한다. 울진 소광리의 금강소나무숲길, 봉화의 서벽금강소나무길과 울진의 금강생태림등이 있는데 예약없이 간단하게 금강소나무 숲길을 체험하는 데는 서벽금강소나무 숲길이 제격이다. 춘양목은 얼마 전까지 우수한 건축자재인 소나무를 대표하는 단어였는데 현재는 (주변 생산지역의 반발로) 학문적 개념인  '금강소나무'로 통칭되고 있다. 소나무로 유명한 울진 소광리 소재지인 금강송면은 원래 서면이었으나 2015년 금강송면으로 변경되었다.   

황장목(黃腸木)은 ‘누런 창자 나무’란 뜻처럼 속이 붉은 나무를 말한다. 여기에 의미가 더 추가된다. 조선 시대 임금의 관(棺)을 만드는데 쓰인 질 좋은 소나무, 금강송(금강소나무)은 식물분류학에서 정의하는 학명이다. ‘백두대간 금강산에서 경북 영덕에 걸치는 산악지대에 주로 자라는 질 좋은 소나무의 한 품종’이 학문적 개념으로서의 금강소나무다. 정의에서 유전적, 형태적 특징은 없다. 지역적 구분에 가깝다. 강송은 금강송의 줄임말이고, 적송과 홍송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장목과 뜻이 같다. 육송은 해송과 구분되는 이름이며, 해송과 곰솔은 같은 나무다. 춘양목과 안면송은 금강송처럼 지역적 구분에 따른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경북 봉화군 춘양역에 품질 좋은 소나무가 모여 ‘춘양목’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안면송’은 충남 태안 안면도에 자라는 소나무를 말한다. 반송은 엎어놓은 쟁반 모양의 조경수다. 여기에서 금강송, 강송, 적송, 홍송, 춘양목, 조선소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붙은 이름이다. 특히 적송, 홍송, 춘양목, 조선소나무는 일제 강점기 벌목꾼과 목재업자가 편의로 붙인 이름이다. 황장목과 금강송, 강송, 적송, 홍송, 춘양목, 조선소나무는 사실 같은 소나무를 가리킨다. 소나무의 여러 이름 가운데 금강송만 학문적 개념이다. 이 작업을 일제 강점기 일본인 산림학자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1882∼1976)가 주도했다. 그의 동경제대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한국소나무 분류 연구’였다고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47522


생산은 주로 울진군 등에서 되는데 열차에 실리는 곳이 춘양이라 춘양목이라 불리며 양질의 건축자재로 알려졌으니 생산지에서는 섭섭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황장금표가 있던 소광리가 소재한 울진군 서면이 학문적 개념인 ‘금강송’을 이용하여 ‘금강송면’으로 변경되면서 춘양목의 명성이 쇠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봉화 사는 사람으로서는 섭섭하지만 울진군의 능동적 대처는 평가 받을 만 하다. 잘 관리된 장대한 소나무들과 길은 소나무숲 특유의 향이 어울려 눈과 코가 즐겁다.  이 멋진 산책길은 주실령가는 차도까지 약 4km 이어지는데 중간지점에 숲해설가 사무실이 있어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길의 우측은 입구까지 백두대간수목원의 담장을 끼고 이어진다. 걷는 이들에게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전 코스가 차량통행이 가능하여 걷는 것이 불편한 이들이 차량 안에서 편안하게 가을구경을 할 수 있는 숲길이다. 이 숲길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화장실 배치”가 어느 길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숲길에는 두 군데의 화장실이 있는데 길 아래 옆쪽에 위치해서 길을 걸으며 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화장실의 위치 선정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작지만 중요한 차이점을 만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숲길과는 살포시 돌아 앉아 있는 화장실들



‘숲길입구’까지 나가서 차도를 따라 수목원 담장을 끼고 돌아도 좋고 ‘숲길입구’ 와 숲해설 안내소 2/3 지점 사이에 문이 열려있는 곳으로 내려오면 서벽2리 버스정류소 종점 근방이 된다. 이 곳은 수목원에서 추가 공사가 필요한 곳으로 수목원 후문이 있는 두내약수탕까지는 차도가 아닌 수목원 도로를 따라 내려올 수 있다. 두내약수탕 아래지역은 수목원으로 공식 개장된 지역으로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수목원 후문으로 나가서 차도를 따라 정문까지 걸으면 수목원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떤 면에서는 안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좋은 풍경이다. 수목원 외곽돌기 입장권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수목원 대부분의 시설들이 길에 인접해 있고 내려가는 길이어서 발길이 가볍다.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은 백두대간 및 고산지역 산림생물자원 보전에 특화된 수목원을 기치로 2018년 5월 개장하였다. 약 15백만평 규모로 아시아지역 2번째로 큰 수목원이며 백두산호랑이 보존센터와 세계에서 2개뿐이 없는 시드볼트 (Seed Vault)를 갖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시드볼트는 노르웨이에 있는데 스웨덴과 공동 운영한다고 하는데 우리 혼자 운영하는 시드볼트의 존재의 의미가 빨리 실현되기를 바란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정경


수목원 정문을 돌아 차량이 있는 황터성황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문 옆 수목권가든을 돌아 운곡천을 건너 서벽교회를 지나면 이미 지나갔던 풍경액자 가는 길을 만나고 성황당에 도착하게 된다.. 운곡천을 건너기전에 만난 어느 빈집은 입구의 커다란 호두나무 한 그루가 채마 밭으로 변한 마당을 바라보며 빈집에 가득 차있을 지난 기억과 얘기들을 혼자 곰 삭이고 있는 듯 했다. 그 옆을 지나는 나도 지금은 지난 기억과 추억을 되새기며 아쉬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 많은게 아쉬운 것은 없고 오히려 우리나라 경제 활황기을 체험한 운 좋은 세대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운곡천을 건너 지나온 황터길 고개에 닿을 때까지 계속 사과 밭이다. 주차해둔 성황당 건너편에서 사과 수확중인 70대 중반의 농장주는 “이젠 힘들어서 못해” 라고는 했지만 갱신해야 할 나무 옆에는 새로운 나무를 심어 놓았다. 2-3년후에 큰 나무를 베어 공백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지만 그도 인정했듯 나무 자람새가 신통치 않다. 기존의 나무들이 잘 관리된 것으로 보아 고수의 기술을 가지신 분으로 보이는데 그런 기술이 필요한 수형은 관리비가 많이 든다. 요즘은 기술의 난이도가 낮아지고 생산비가 적게 드는 고밀식 다축형 수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무재배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지는 것인데 생각해 보면 사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풍요를 구가하던 지난 2-30년의 세계경제와 그 안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우리나라의 경제가 예측이 몹시 어려운 앞 날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모두 어떤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란 생각을 하며 차에 오른다.


이 길을 걸으려는 이들을 위한 정보
 -도심3리 원점회귀 약 14.5 km/ 4-5 시간

-주차공간 : 황터성황당, 두내약수터 주차장, 백두대간수목원 주차장
             그외의 지역은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음.
 -고도 : 서벽금강소나무 숲길이 가장 높은 지역 (480미터에서 801미터)
 - 전구간 차로 주행가능



매거진의 이전글 낙동강 원시비경 탐방길, 날 것의 강가를 걷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