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과 친구 하기 1단계
지난 월요일은 6차 방제일이었다.
엄재열 명예교수님의 총 10차 방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으니 반이 넘었다.
사과는 4월 말-5월 초의 개화 및 착과기와 5월- 6월의 적과기가 무사히 끝나면 내용적으로도 반이상의 진도가 나간 셈이다. 이제 부지런이 돌아다니며 적절한 열매의 개수를 맞춰가며 탄저병 등 병 및 해충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만 남았다.
말이 나온 김에 방제 얘기만 들어도 농약?이라고 질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기농으로 야채 및 곡식을 하는 J선생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적은 양 혹은 적당한 양의 농약 (화학적으로 제조된 살균/살충제)을 쓰고 약병에 표기된 광분해 기간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환경적/위생적으로 유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물론 농사를 짓기 전의 내 생각과는 반대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관행농으로 사과농사를 짓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유기농과 관행농의 비교분석 자료를 구할 수 없는 데다가 유기농의 균과 해충에 대한 자료가 관행농의 제품들처럼 체계적인 분석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유기농 사과가 일 년에 몇 차례 이상 사용하는 보르도액은 유럽에서는 이미 유기농자재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유기농 관행농의 구분이 상품의 네이밍 혹은 브랜딩과 같다는 생각을 농사를 지으면서 하게 되었다.
진실은 아마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탄저병균이 죽은 이유가 화학적으로 제조한 농약으로 인한 것이거나 혹은 농약은 아니지만 농약과 같은 무기원소가 들어있는 "친환경 유기농 자재"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의의 약품과 한의원의 한약에 대한 설명과 같은 경우다.
어찌 되었던 방제는 이른 아침에 시작되어 9시 전후로 종료되고 방제를 한 날은 과원을 출입하지 않는 것이 GAP(Good Agricultural Products) 지침이다. 그래서 방제일도 우요일처럼 사과농부에겐 노는 날이다.
봉화는 백두대간의 소백산맥과 태백산맥 사이에 위치하여 양백지간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그런 연유로 국립수목원 산하 "백두대간 수목원"을 유치하여 얼마 전 개원하기도 하였다. 가끔 더운 날에는 시원한 계곡을 끼고 오르는 청옥산을 찾아 정상에서 태백산 7.5km 표지판만 보고 내려오곤 했다. 지난 4월 열목어가 하류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상류로 돌아오는 모습을 본 백천계곡이 태백산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어 등산로도 정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올해는 태백산하고 친구 하여 여러 코스를 답사 해보리라 작정했었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내심 걱정은 되었지만 안 가본 새로운 코스에 대한 기대와 산행 내내 혼자여서 여유롭게 보낸 즐거운 산행이었다.
첫 단계로 청옥산에서 태백산권역으로 진입하여 백천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고 이제
1. 청옥-두리봉- 백천계곡
2. 청옥-두리봉=부쇠봉- 태백산- 당골
2. 백천계곡- 문수봉-부쇠봉-백천계곡
3. 백천계곡- 부쇠봉- 두리봉 방향- 백천계곡
4. 백천계곡 - 부쇠봉- 태백산- 당골 등의 코스를 차례대로 답사하면 태백산과 어느 정도 친구 하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은 한 곳이지만 오르는 길이 여럿인 것이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한 곳에서 만난다.
원래 청옥산의 시발점은 청옥산 생태경영림인데 소천- 태백 구간의 직선화로 구길은 폐쇄되어 공사 중이라
넛재터널 공사현장에 차를 세워두고 공사현장을 통과하여 진입했다.
청옥산 입구에서 관리인이 나와 이름을 적게 하는데 어제 일요일에는 30여 명의 팀이 두 팀이 지나갔다.
관리인인 봉성 사신다는 아주머니가 행선지를 묻고는 길이 희미할 까 봐 걱정을 해주셔서 어제 두 팀이 지나간 길이라 하니 안심을 하신다.
이 코스는 정상까지 3.8km 중 3.0km를 냇물을 끼고 오르는 완만한 경사라 한 여름에도 시원한 길인데 한동안 비가 안 와서 수량이 적다.
수종에 따라 활엽수 길- 자작나무길- 가래나무길- 잣나무길등의 각기 다른 수종이 만들어 내는 다른 그림을 감상하며 오르는 길이 여느 산과 다르다.
청옥산 정상에서 태백으로 이어지는 길은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길인데 동저서고의 백두대간 동해안 길과 같은 느낌이다. 동쪽이 낮지만 나무들로 전망은 시원치 않고 오래된 참나무들이 자신의 무게 혹은 덩치로 눈과 바람에 쓰러져 있는 풍경이 예전 대간길을 생각나게 했다.
십 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때의 느낌이 생생하여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게 했다. 아직도 자주 보는 (나는 봉화에 있어서 더 이상은 자주 보진 못 하지만) 대간 동료들은 느낌, 말투 성격 등이 거의 그대로인데 좀 늙었을 뿐이다. (대간 동료들은 5명인데 2000년부터 13년간, 54회에 걸쳐 백두대간을 완주했다.)
인적이 드물어 깨끗하고 상쾌한 백천계곡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한데 다만 열목어에 방해가 될까 탁족도 못하는 것이 흠이다. 백천계곡 분소의 국립공원 직원들이 친절하게 석포 택시를 불러주어 차를 둔 넛재터널 입구까지 타고 오며 지난주에 걸었던 석포역 영풍제련소에 대한 얘기를 했다.
기사분은 석포면 주민이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하는데 역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보고 싶은 쪽만 보면서 다른 쪽도 다 봤다고 얘기한다.
나의 객관적인 견해는 개관적인가 주관적인가? 혹은 그전에 개인의 객관적 견해라는 게 가능한가? 등등의 의문이 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산행은 내게는 주관적이건 객관적이건 훌륭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