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세평하늘길 걷기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코레일의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의 분천-비동- 양원-승부-철암 구간 중 분천에서 승부역까지 이르는 12.1km 구간을 말한다. 구간 내내 산태극 수택극으로 흐르는 낙동강 상류 옆으로 걷는 길이어서 풍광이 수려한 트래킹 코스이다.
지난 2주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10월 하순부터 사과 수확, 분류하여 창고에 입고시키고 그동안 밀려 있던 주문을 처리하느라 동네 아주머니들과 말레이지아인들과 같이 바삐 보냈다. 아직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무조건 하루를 쉬기로 했다. 농부는 하늘이 참아 주는 범위 내에서 언제나 농땡이를 칠 자유가 있는 축복받은 직업이라 오늘은 온전이 하루를 내 것으로 하기로 했다. 아직 협곡열차 구간을 걸어 보지 못했다는 김형과 구형이 길동무가 되었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무궁화호가 14분 걸리는 승부역까지 8,400백 원 (무궁화호 2,600원)의 요금을 받지만 열차를 개조하여 창를 크게 내고 난방도 화목난로를 설치하여 분위기를 내고 무궁화호보다 약 2배 느린 속도로 천천히 가면서 안내원이 해설을 듣게 한다. 또 양원역에서는 10분간 정차하며 막걸리 한잔을 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지난여름 끔찍하게 더웠던 기긴에 원래 냉방시설이 없는 협곡열차는 찜통 열차라고 매스컴을 타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번쯥은 타 볼만한 기차고 아주 좋은 개념의 관광열차인데 지금은 운휴 중이어서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여 승부역까지 가서 분천역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출발지인 분천역은 집들이 예전 광산의 사택 같은 분위기도 있고 또 멀리 보이는 주황색 2층 집은 일제시대 2층 가옥 형태여서 근처 다른 역과는 달리 뭔가 돈이 되는 물건이 유통되던 곳인듯 하다. 동네를 지나는 길에 아주머니가 아주 많은 양의 무를 말리고 있어 물어보니 무먈랭이뿐만 아니라 김치를 담그는데 마른오징어도 넣는다고 한다. 다음에 내 사과를 가져올 테니 말린 무 김치와 바꿔 먹자고 하니 좋다고 하신다. 분천역은 산타마을을 표방하기에 곳곳에 크리스머스 장식과 그림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협곡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는 간이역인 비동 역에는 정차하지 않고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으로 2 정거장 구간이 된다.
트레킹 출발점인 승부역은 역 주위에 보이는 인가가 없는 곳으로 한때 유명세를 탔던 눈꽃열차의 정차역으로 많이 소개되었던 곳이다. "땅도 세평 하늘도 세평"이라는 한 역무원의 글에서 "세평하늘길"이름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역사 플랫폼 밑에 간이음식점이 있어 강을 보며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먹게 되었는데 길손을 부르는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응대하여 호객행위가 기분이 나쁘지 않다.
멋진 말과 비유들 그러나 외양과 달리 텅 비어 남는 것이 없고 다만 글 짓느라 고생했겠다란 생각이 들며 나는? 이란 걱정이 들었다.
합수지점인데 흘러나오는 지류가 있는 쪽은 소광리, 응봉산 쪽으로 큰 길도 없고 인가도 많지 않은 그야말로 오지 지역이어서 내년 여름에 탐사를 해보기로 했는데 물 많은 여름에 건너는 방법이 문제다.
김형이 어제 들은 바로는 지난주 비로 물이 불어서 어제 다녀온 팀은 물을 건너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단다. 철교로 건널지 혹은 신발 벗고 갈지를 의논하다 안전하게 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수위는 발목뿐이 안 왔지만 물이 너무 차서 머리까지 아파왔다. 그 차가운 물을 반대편에서 오던 초로의 부부 중 남편은 한 번은 배낭 2개를 갖고 오고 다시 돌아가 부인을 업고 건너왔으니 세 번을 물을 건넜다. 나는 한 번으로도 머리까지 아파서 고생을 했지만 그러나 마누라가 같이 와서 2번을 더 건넜어도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곳곳에 데크로 보도를 만드러 편하게 멋진 풍광을 보면서 걸을 수 있게 하여 예전보다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다시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야 하는 곳을 만났으나 이번에는 철교로 넘어보자고 올라갔더니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먼저번에도 옆 난간이 돼있던 것을 생각하면 굳이 물속을 걷지 않았어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동 간이역은 건물도 없이 그저 플랫폼이 전부인 곳인데 거기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서 분천역까지 4km 구간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빌려준다 (헬멧 포함 대여료 4천 원).
분천역 다 와서 마지막 다리를 건너며 본 강변 풍경, 단풍 든 나뭇잎이 개나리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집들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거의 다 내려와서 김형의 후배가 최근에 내려왔다는 마을을 들어가는데 예쁜 유럽식 집에 손님용 별채와 정갈한 정원과 넓은 텃밭이 있는 집을 지났다. 귀촌한 사람의 집인 듯했는데 주인은 다시 서울로 가야 되나를 고민하고 있다 한다. 직장생활을 하던 이라고 하니 이해가 금방 된다. 은퇴하여 시골에 멋진 집과 정원이 있는데서 사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고 한 컷의 그림이다. 재미있게 살려면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귀촌을 하였다면 아마 지금쯤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노는 것도 바쁜 와중에 짬짬이 노는 것이 재미있다. 늘 노는 것은 재미가 없다.
추운 산간지방의 집들은 모든 생활공간을 집안에 둔다. 외양간 까지도 집의 일부가 되어 안에서 지내도록 되어있는 구조다. 오래되었지만 아직 외형이 온전한 집 두 채와 주인의 집까지 세 채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집이 분천역 바로 앞에 있다.
다시 분천역 앞으로, 승부역에서 쉬엄쉬엄 오는데 4시간 걸렸다.
분천역 앞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구입한 불콩. 예전부터 있던 콩이라던데 내게는 낯이 설다. 밥 지을 때 불릴 필요 없이 같이 넣으면 된다고 하여 1kg에 만원을 주고 샀는데 아주머니가 3-4백 그람을 더 주셨다.
물이 맑고 산도 수려한 멋진 풍광 속에서 좋은 친구들과 같이 걸으며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