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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Dec 30. 2018

 1등급 산책코스

동네 한 바퀴를 걷다.

겨울은 농부에게 여유가 있는 계절이다. 며칠 전 반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을회관을 개방하였으니 놀러 오라고. 농한기 동안 모여서  식사를 같이하며   윷놀이도 하고 탁구도 하며 논다. 말하자면 겨울 휴가인데 연말연시에 2주 정도 그리고 설날 연휴 때 잠깐 모여 친목을 도모한다. 모두 30여 가구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늘 모이는 사람들만 모이지만 그나마도 봉화읍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아직 옛날 인심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도 가끔 마을회관에 가서 놀다가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오긴 하지만 내겐 겨울은 산책을 즐기는 계절이다. 내년을 위한 동계 체력 강화 프로그램인 셈이지만  음악을 들으며 급할 것 없이 걷는 것이 참 좋다.

걷는 것은 마음에 좋기도 하지만 뇌세포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니 사는 동안에 조금은 덜 멍청하게 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활동이다. 제주 올레길 이후에 걷는 것이 활성화되어 모임도 많이 생기고 전국 방방곡곡에 코스도 많이 생겼지만 내게 제일 좋은 산책코스는 저녁 식사 후에 가족과 혹은 마누라와 바쁠 것 없이 동네 한 바퀴 돌며 이런저런 얘기하다 돌아오는  산책이었다. 큰애 낳기 전에는 동네 어귀 슈퍼에서  맥주 캔 하나 사서 들고 다니며  홀짝거린 산책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봉화로 온 후에는 첫 2년여간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산책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그 후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산행을 하거나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다행스럽게 주위 여건이 좋아서 우리 집에서 시작하는 2가지 산책코스는 동네 산책코스로는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순전이 주관적인 견해다. 


집에서 나와 낙동강을 건너 강 따라가다가 다시 현동천으로 갈아타서 야트막한 산을 넘어 돌아오는 코스로 고도는 300미터에서 370미터를 오르내리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고도 그리고 좋은 경치인데 길에 사람도 거의 없어 늘 내가 혼자 전세를 내서 다닌다. 재수가 좋으면 기차가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일부 구간은 외씨버선길의 제8구간인 '보부상길'과 겹치는데 사진상 우측의 도로와 접한 부분이다.


마당끝의 고욤나무와 그 열매

이제 출발한다. 마당 끝에 큰 고욤나무가 있어서 떨어진 열매로 길에는 고욤 씨가 늘 흩어져 있다. 처음 봉화로 내려와서 내 나무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아주 뿌듯했다. 대추나무, 은행나무, 돌배나무, 개복숭아나무, 산초나무, 탱자나무, 앵두나무, 고욤나무 그리고 1000그루가 넘는 사과나무.  고욤나무는 처음 보았다. 산에 가서 고욤이나 개암을 따 먹었다는 얘기만 들었었다. 동네 분들에게 들은 바로는 고욤은 감의 시조로 고욤 자체도 감 맛이 난다, 단지 씨가 많고 과육이 적을 뿐. 예전에는 고욤 열매를 따서 항아리에 담아두면 아플 때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떠 먹이는 맛 좋은 간식이었다고 한다. 요즘 홍시를 숟갈로 퍼먹는 것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그것보다 덜 달긴 하지만.


멀리 보이는 주황색 지붕이 우리 집이고 그 앞은 과수원. 다리는 난간이 없어서 전 주인의 호의로 2일간 묵으면서 중생종 수확하는 것을 배우러  왔을 때 밤중에 산책하며 전화기 들여보다가 떨어질 뻔했었다. 난간이 없는 이유는 저 다리가 일종의 잠수교 개념이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다리를 넘는데 그럴 때 난간이 있으면 부유물이 난간에 걸려 다리가 무너진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 쓰는 다리가 3번째 다리라고 알고 있다. 걷다 보면 예전 무너진 다리의 교각 흔적이 있다. 다리가 침수된다고는 전혀 상상이 안 가지만 7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어떨 때는 굉장히 근시안적이다.


소나무길을 따라 산의 사면을 넘으면 울진 가는 방향으로 홀로 있는 농가와 밭이 강 따라 나있다. 이 밭은 메밀을 심어 메밀꽃을 볼 수 있는 근방 유일의 장소가 되었다.


길 아래 남아 있는 폐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던 집이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지붕까지 내려앉아 있다. 바로 강앞에 있는 위치 때문인지 예전의 생활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게하는 집이다. 우측 사진 중앙길 좌측이 메밀 심는 밭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일은 마감이 곧 시작이다. 거의 모든 밭들은 수확 이후에는 내년 농사로 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말끔하게 정리해 놓는다. 


오른쪽의 잠수교를 건너면 외씨버선길과 합류한다. 왼쪽의 멀리 보이는 다리가 내가 건너야 할 다리. 이곳은 소수력 발전을 하는 곳으로 산태극 수태극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표고차를 이용하여 발전기를 돌린다.  수시로 수문을 개폐하여 수면의 높이가 달라져 우리 집 앞 낙동강에서 낚시를 해 본 친구는 고기들이 예민하다고 한다.

나는 낚시와는 인연이 없지만 그럴듯한 설명이다.


다리를 건너 외씨버선길 구간으로 접어들어 강을 따라 올라간다. 외씨버선길은 청송군 주왕산에서 시작하여 영양군, 봉화군을 거쳐 영월군 김삿갓면에 이르는 240km, 13구간의 걷는 코스이다. 백두대간길을 13년 54회에 걸쳐 끝낸 우리 대간팀 5명이 작년 11월 새로운 코스로 야심차게( 5명중 내가 제일 젊은이)  시작했으나 H사장님이 주왕산 첫 코스에서 넘어지며 발을 접질려서 일 년을 쉬고 내년 2월 다시 2코스부터 시작한다. 조만간 대간팀 5명이 이 길을 지나가리.


이 좋은 길을 늘 혼자 다녀서 기분은 좋으나 미안하기도 하다.

걷기 여행의 달인이 엄선한 50개의 보석 같은 길에 속해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 보석 같은 길의 코스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지방도, 일반도로와 철도 표시만 해 놓았다. 다만 3번 감전마을의 메밀꽃 핀 사진이 우리 마을이다.

우측의 사진이 거의 같은 앵글로 이날 찍은 것으로 왼쪽의 감전마을 사진 중간에 푸른 곳이 우리 과수원이고 그 앞의 노란 부분은 논. 그 외에 보이는 밭은 모두 메밀밭이다. 우리 마을은 사스가 유행한 그 2년 전에 메밀꽃피는 마을로 지정되어 많은 지원을 받으며 메밀꽃 축제까지 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스가 발생하여 축제가 연기되면서 중단되었다. 모든 관주도 프로젝트가 첫해까지 준비로 많은 돈을 투자하고 2-3년의 운전자금이 지원되며 그동안 계속성여부를 판단하여 지원하거나 혹은 자생책을 강구하여 지속하게 하는 모델인데 메밀꽃 축제는 사스가 맥을 끊었다. 여타 권역생활센터등은 십억단위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지만 거의 자금지원이 될 동안만 운영되고 끝난다. 그러나 지금도 봉화군 사람들은 메밀꽃피는 마을에 산다고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봉화군이 메밀 생산량이 전국 1위였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원도 봉평은 이효석 작가의 후광으로 지명도가 높은 것이고 실제 생산은 봉화군이 많이 했다고 하니 메밀꽃 축제가 빨리 시작되었으면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내가 올 수 없었을테지만. 메밀은 내가 내려온 해 그리고 다음 해인 2014년에도 보였으나 지난 3년간은 전술한 곳 외엔 볼 수가 없는데 날씨가 따뜻해져서 열매가 잘 안 맺는다고 한다. 2013년에는 메밀꽃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을 만났었고 내려오기 전에 나를 생각하여 만감이 교차했었다.


현동터널은 기찻길과 직각으로 교행 하는데 마침 영동선 열차가 지나간다. 터널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현동천을 따라간다. 현동천은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고선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인데 고선계곡은 차로 들어가는 거리만도 14-5km가 넘는 긴 계곡이다.


왼쪽의 좌측으로 오르는 길이 산을 사면으로 넘는 소나무길 입구로 산을 넘어 다시 감전마을 길로 접어들면 낙동강을 만나는데 처음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가 이 산길을 넘으며 말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속세와 이별이네".

소천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우리 집까지는 4km인데 중간에 이 고개가 번잡함을 덜어 주어 늘 고개를 넘으며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그 친구의 표현이 절묘했다. 이 길은 2000년에 개설이 되었고 그 전에는 산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철로 길인 터널을 이용하여 마을에는 사고로 죽은 사람과 손을 잃은 사람이 있다.


다시 집으로. 오늘은 오랜만에 걸어서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늦어야 1:30분 대개 1:20분대 였는데 오랜만이라 이유를 대는 것은  사과 수확 후 두 번째 산책으로 정말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서 달라지는이전의 내가 아님을 인정하기가 싫어서가 절대 아니다. 이번 길은 다리를 건너서 우회전한  코스인데 "산골 물굽이 길"로 봉화군에서 만든 길은 다리을 건너 좌회전하여 건너 마을인 거네를 횡단하여 강물이 보이는 산 중턱 길로 가는 호젓한 길이다. 다음에는 그 길로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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