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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Feb 03. 2019

반야계곡 걷기

봉화 마을길 걷기 2019 년 1월 모임


일시: 2019.01.26

코스: 석포면 반야계곡 왕복

인원: 35명


오랜만이다, 마을길 걷기. 작년 10월 법전면 걸은 이후 11월 문화기행, 12월 망년회로 대체되어 행사가 없었다. 그래서 였는지 무려 35명이나 참석했다. 나는 약 8-9년 전에 이 길을 차로 통과한 적이 있다. 석개재 근처에는 귀한 꽃인 복주머니난 (개불알난)이 무려 다섯 송이가 나란히 서있어 몇 년을 계속 방문했었다,  누군가  퍼가지 전까지. 야생화에 반해서 여기저기 야생화 사진을 찍으러 다녔는데 결국은 그 행위들로 인해서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없어지게 했으니... 뭐든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남아나는 게 없다. 그래서 결국 자신은 물론 자연의 안위까지 문제가 되게 하는 과정이 줄기차게 진행 중이다.  그때는 석개재에서 사진을 찍고 차를 타고 임도로 내려와 반야계곡을 지나 석포면, 봉화 거쳐 서울로 갔었다  임도 끝나는 지점에서 맑은 개울을 만나고 꽤 넓은 밭, 그리고 그  밭 끝쪽 산 아래 다소곳하게 자리한 집들이  강원도 풍경 같은 느낌으로 기억에 남았었다. 사실 이 곳은 봉화군보다 태백시가 훨씬 가깝긴 하다. 그러나 예전에는 태백산도 봉화군 관할이었다니 강원도 태백, 경상도 봉화의 문제가 아니라 춥고 밭이 적은 산촌 농가 일 뿐이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  왕창 받을 때여서 '저런 데서 살면 이런 스트레스 없을 텐데.. 돈은 적겠지만 쓸 일도 적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 맞는 생각이었다고 지금의 내가, 사과 농부가 보증해 줄 수 있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봉화에 자리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야(盤野) 계곡, 계곡이지만 소반 같이 생긴 넓은 들이 있는 계곡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때는 불교와 관련된 이름으로 막연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동쪽으로 응봉산, 남쪽으로 소광리 지역으로 연결되는 거의 인가가 없는 산지다. 1968년 삼척 울진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공비 한 명이 이곳 가래골에서 생포되었다고 한다. 석포로 나가는 길 외는 길도 없다. 예전에는 60가구 이상이 살다가 지금은 15가구 정도 있다고 하는데 외지인이 최근에 지은 듯한 서너 채의 집을 포함한다.


집합장소인 폐교된 반야분교에 도착하는데 건너편 집에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집고 나오신다. 사람이 있는 풍경과 없는 풍경이 느낌이 많이 다르다. 오른쪽은 계곡으로 들어 가는 길.

이 계곡을 걸으며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담장이다  아주 후미진 지형 탓에 외부인이 적을 텐데 위 좌측 사진처럼 담장을 한 곳이 서너 군데 있었다. 시선을 가리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데 왕래가 빈번한 곳이 아니고 우리 마을에는 저런 담장을 한 집이 없어서 더욱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담장이 보기 드문 것도 아니건만 5년을 담장 없는 곳에서 살아서인지 눈에 설다.



바위와 소가 멋진 시내지만 바로 옆이 인가라 앵글을 낮췄다.


200년 되었다는 소나무 위로 반달이 걸렸다. 1951년 개교하여 1996년 폐교된 분교는 누군가에게로 넘어가서 담장으로 둘러쳐 있다. 주지가 죽으니 측지가 주지를 대신했다. 나무의 신기한 점은 뇌와 같은 think-tank나   결정 프로세스 없이 상황에 맞게 누군가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다. 과수원 사과나무도 주지에 부란병이 들어 나무 전체가 위험한 상태가 되면 감염 부위 밑에서 가지가 생긴다.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밑에 있는 잠아(자고 있는 눈)에게 전달되어 그만 자고 빨리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니 식물의 소통과 대처능력은 참 대단한 일이다.  하나의 세포마다에  모든 기능 (인지- 판단-대처)이 내재되어 있으면서 물관부와 체관부를 통해 화학물질 혹은 변형된 단백질 구조로 소통을 하며 필요한 행위를 촉발시킨다. 그 모든 경우의 가짓수를 예측하고 행동강령을 준비한 조물주의 위대함이여!


길을 따라 소나무 숲을 가로지르거나 넓은 소반 같은 밭 옆으로, 혹은 냇물 따라가며 지난여름의 영화를 반추하는 해먹, 꽁꽁 언 얼음장 밑에서 깊은 잠을 자는 조약돌을 만났다. 경치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런 길은 걷는 재미가 배가된다.



양지와 음지의 차이. 같은 동네에 위치에 따라 엄청 차이가 난다. 우리 동네 어떤 밭은 눈 온 지 한 달이 돼가도록 녹지 않는 곳도 있다. 농사의 기본은 햇빛이다,  양쪽 밭의 생산성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산성이 땅 가격을 형성한다. 결국 햇빛과 물 값이 땅값이다. 생산성을 고려하면  바가지를 쓰지 않는 한 빚을 내서라도 비싼 밭을 사는 것이 빚 안 지고 싼 땅을 사는 것보다 훨씬 수지가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비싼 땅은 손 볼 일이 적은데 싼 땅은 추가로 작업이 필요한 곳이 많다. 주위 귀농한 이들을 보면 대개는 후자의 길을 택한다.

마을제를 드렸을 곳인데 제사상이나 벽의 나무 상태가 깨끗하여 손 본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황폐하다. 집이나 사람이나 마음 떠나면 잠깐 사이에 황무지가 된다. 

부엌문이 아주 멋지고 상태가 좋았다.  한편 같은 집 방문에 붙어 있는 쪽지는 몸이 아파 요양차 온 이가 썼을 것 같아 애잔해 진다.


석개재 임도 길 시작점의  위로는 인가가 전혀 없는 냇물, 임도는 낙동정맥트레일이고 우리집 근처인 분천역으로 이어진다.

원래 정맥 길도 대간길처럼 산 능선으로 가야 제대로 일 테지만 정맥 길은 산마루를 따라가는  차도, 인도 혹은 임도길로 이어져 있는 듯하다. 백두대간 길로 인해서 산 능선에  길이 파이고 나무뿌리가 드러나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저 집도 담장을 일부 두르고 있다. 양동이와 비닐이 있는 이곳이 예전 방식의  무 등 야채 보관창고 입구처럼 생각된다. 아닐 수도 있겠으되 그런 느낌을 받은 것만으로도 반갑다는 마음이 든다.



오른쪽은 70대인 류 선생님 부부, 사모님이 거의 같은 위치나 한 걸음 정도 쳐져 걸으시고 왼쪽은 아직은 만 나이론 60대인 강선생님 부부, 두 분은 손을 잡고 걸으신다. 

우리 동네 90대이신 어르신 내외는 사모님이 2-3미터 뒤에서 쫒아 가신다. 60대인 나는 강 선생님네처럼 걷지만 우리 애들은 조만간 남자가 뒤에서 갈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데 고랭지 배추 밭에 남기고 간 배추가 너무 많다. 작년은 작물에 상관없이 참 힘든 한 해였는데 올해는 참 쉬운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한편으론 해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농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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