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나리 출사에 함께하다.
살면서 늘 내 나름의 낙(樂)은 가지고 살려고 했다. 내가 해서 좋은 것이 있어야 즐거운 인생이 되는데 도움이 될 터이니까. 직장이나 집이나 내가 속한 조직이 재미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을 하면서 늘 낙을 끼고 살려고 했다. 노는 것에도 때가 있고 유행이 있어서 부지런이 시류를 따라 취미를 바꾸어 가며 낙을 키웠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낙은 산에 가는 일이다. 인적 드문 자연 속에서 나무 냄새,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은 좀처럼 질리지 않는다. 산을 오르려면 자연스레 시선이 아래로 향하게 되고 그래서 야생화가 눈에 들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김춘수 님의 시구절 때문에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내게로 다가와서 꽃이 되는데 나는 이름을 몰랐다.
이름을 알려면 사진이 필요했고 콤팩트 필름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현상해서 식물도감과 비교하며 이름을 찾았다. 디지털 시대가 되니 사진기는 더욱 작아지고 현상할 필요도 없어졌다. 게다가 인터넷의 동호회에서는 그때그때 피는 꽃들이 올라와 있어 꽃 이름 찾는 것도 더욱 쉬워졌다. 그러나 사진의 품위가 달랐다. 어찌 내 사진과 저리 다른 사진이 나올까? 그래서 시작된 새로운 낙이 야생화 사진 찍기였다.
봉화 내려오기 전까지 7년간 거의 매 주말을 야생화 사진 찍는 재미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큰 즐거움을 맛보았다. 마크로 렌즈로 들여다보는 조그만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웁다. 자신이 나타나야 하는 때를 알고 또 그때가 지나면 다음 차례 꽃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야생화의 미덕은 곰 씹을수록 더욱 맛이 났다. 또 몇 센티미터 차이로 달라지는 사진기 안의 그림은 늘 어떻게 보는 것이 어떤 것을 보느냐 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새벽에 집을 나와 자정 가까이 귀가할 때까지 영남 호남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은 것은 같이 다니는 일행 간에 “케미스트리”가 잘 맞아 늘 즐거운 분위기가 가능하였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어느 교수는 그 책에서 동호회 회원들과의 모임을 가장 효과적인 재미의 창출 수단으로 꼽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몇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사진을 찍고 밤늦게 돌아와 자기 전에 오늘 찍은 사진을 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집사람은 야생화 사진 찍는 사람들이 제일 독하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찍은 사진에 스스로 감탄하고 뿌듯해하면서 이렇게 상대적으로 쉽게 스스로 한일에 만족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을 주말마다 돌아다닌 것이 지금의 사과농부의 단초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사과농사를 위해 봉화에 자리를 잡은 후 야생화 출사 동료들이 처음 방문하고 돌아갈 때의 그 쓸쓸한 감정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늘 함께 움직였는데 그들은 가고 나만 남았다. "아, 달라진 환경조건!!!".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솔나리를 찍으러 봉화 인근으로 올 테니 그곳에서 만나자고.
그렇지, 그때는 솔나리 찍고 돌아가는 길에 '봉화가 완전 산동네네, 사람들이 어디서 뭘 먹고살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봉화에서 사과농사 지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아침에 사과의 일소방지를 위해 탄산칼슘을 살포하고 카메라와 매크로 렌즈, 망원렌즈 대신에 핸드폰과 핸드폰용 소형 삼각대를 들고 출동했다. 오랜 친구들은 늘 한결같다, 예나 제나 변햠이 없어 좋다.
내 장비에 실소를 한 것 만 빼고...
내가 좋아하는 꽃은 솔나리와 남방바람꽃인데 둘 다 분홍 색감의 꽃이다.
솔나리는 "품격"이라는 말을, 남방바람꽃은 '요염"하다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솔나리는 백합과의 식물로 잎이 소나무 잎 모양으로 솔잎나리라고도 부르는데 다른 나리 류가 짙은 주황색으로 도발적인 느낌인데 반하여 분홍색으로 잎이 여리어 다소곳한 인상을 준다.
자생지가 제한적인 것으로 아는데 이곳의 개방된 지역의 개체수는 적어지고 통행을 제한 한 곳의 개체수는 증가했다.
"야생화 출사 인구가 늘수록 줄어드는 야생화"는 야생화를 찍는 사람들의 딜레마다.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 사진을 찍고 돌아와 포토샵 작업을 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2차 적과도 밀려있고 유목의 가지 유인도 해야 하기에 핸드폰만 가지고 갔지만 꽃 앞에 있으면 행복한 것은 예전과 같았다.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작은 세계의 아름다움이 야생화 출사의 큰 즐거움인데 핸드폰으로도 섭섭하지 않았다.
사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마음에 새겨진 영상의 차이는 없었고 서로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낄낄 거리는 즐거움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젠 헤어질 때도 쿨하게 마치 다음 주말 다시 만나는 것처럼...
돌아오는 길에 본 플래카드.
석포면의 영풍제련소의 환경오염 기사에 대한 "석포주민일동" 명의의 플래카드.
오염원은 '석포주민일동'이 아니기 때문에 "영풍제련소"로 바뀌어야 하는데 저것을 보는 순간 제련소에 생계가 달린 "석포면주민일동"을 앞세운 무리들과 그들의 사고방식에 분노를 느꼈다.
저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환경법을 지키며 일을 할지에 대한 염려도 함께.
오랜만에 즐거운 출사 길에 고춧가루가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