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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Jul 27. 2018

봉화마을길 걷기 - 7월

춘양역-구인골-모래재-관석-솔둔지-가매골-높은터-씨라리골-노룻재

한낮의 더위가 30도를 넘는 날씨가 10일째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 걷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더운 날에는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에 있을 수 있으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야 걷는 것도 좋다.  때론 나무 그늘 아래서 혹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땀 속에 젖어 걷다가 만나는 산들바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또한 이번 코스가 외씨버선길의 보부상길 일부로 우리 이웃동네 춘양역에서 시작되어 현동이  종점이 되는 일정으로 보부상길은 가봐야만 하는 길이다.

울진에서 십이령을 넘은 보부상들이 현동장으로 오거나 혹은 현동을 거쳐 춘양장을 보기 위해 오는 길인데 이곳에서 나서 춘양면장을 역임한 이선생의 말에 따르면 보부상들과 춘양 우시장으로 가는 소들이 차마고도의 말들이 줄줄이 엮어 가듯 여러 마리 엮어서 다녔다고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원주인은 소천면 제일 부잣집이었다는데 그 집이  맡겨놓은 소의 코뚜레가 한 지게가 되었다는 우리 동네  박 여사님 어머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농기계가 없던 시대에 소는 아주 중요한 재산이자 농사도구였다. 소를 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 있는 사람이 어린 소를 맡겨 기르며 일을 시키게 하고 적당한 시기에 회수하여 돈을 버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러나 돈 있는 이가 더 좋았든 예전의 목축(?) 방식이었다.  걷기 모임의 좌장인  송 선생 댁은 예전에 방물장수가 묵고 가던 집이었다고 하니 지금 우리 세대가 옛날부터 현재까지의 다이내믹한 변화 속에서 살고 있는 징검다리 마지막 증인 세대인 셈이다.


 지난번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에서 있은 강연에서 김훈 선생이 말씀하셨다.

"책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사물/사태/사건/자연/인간 모두를 통하여 배운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 걸어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길이란 걸어야 생기는 것이어서 걷는 이가 없으면 빠르게 없어지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길을 분류하면 

살아있는 길, 죽어있는 길, 죽어가는 길, 살아나는 길로 나눌 수 있겠다.

외씨버선길을 통하여 죽어 있던 보부상길이 살아나는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보부상길이 올레길보다 한 수 위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올레길은 살아 있는 길+ 살리려는 길+ 새로 만든 길의 조합으로 방문객에게 좋은 곳을 보여주려는 인위적인 고려 사항이 반영된 길이지만 보부상길은 살아있는 길+ 살리려는 길의 조합으로 예부터 다닌 길로 사람들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길이기 때문이다. 넓고 때로는 좁아진 길을 걸으며 이 길을 걸었을 보부상 및 예전 우리 동네 살았던 선대분들을 생각했다.


주최 측에서는 날씨 때문에 10명 이하를 예상하였다는데 12명이 모였다. 그중에는 이곳이 고향인 분들이 여럿이 있고 오늘 지나는 길에는 밴드지기 송 선생의 고향마을이기도 하다.

밴드지기 송 선생은 매번 코스의 지명을 조사하여 올려놓는데 이번에는 그의 설명을 보며 걷기로 한다.


◆ 의양4리

▷ 운곡 : 춘양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운곡천을 건너 있는 동네가 운곡으로 이 마을 동쪽으로 높은 산이 둘러 있고 산 위에 묘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항상 구름에 가리어 여기에 신선이 살았다고 하여 이 신선을 운중 선인이라 하였다. 이 뜻을 새겨 구름이 덮인 골이란 뜻으로 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현 춘양역 터는 신라시대 절터였다고 하며 1950년대 영동선을 만들 때 춘양역 부지 정지 작업을 하면서 매몰되어 있던 석불을 발견하여 동민들이 현 위치인 의양리 155번지에 옮겼는데, 좌대를 포함한 불상의 높이는 2.5M 정도이며 얼굴은 듬직하고 귀는 길면서 반달처럼 휘어져 있고 체구는 뚱뚱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원만한 인상을 주어 거의 완전한 석불입상으로, 신라  말이나 고려 초인 10세기경에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지방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운곡에는 1987년 KBS 라디오 중계소가 설치되었으며, 춘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운곡천은 수많은 전설을 남긴 채 그 발원지인 문수산, 옥석산, 태백산 지령을 분수령으로 명호면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 내 운곡, 구닛골 : 운곡마을 동쪽과 북쪽으로 위치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통틀어 내 운곡이라고 한다. 즉 영동선 철도 너머 마을을 이르러 내운곡이라 한다. 내운곡에는 1970년대 중반에 지은 보양사라는 절이 있고 이 절 북쪽으로 4km 정도 골짜기를 들어가면 백운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이 보양사 안 법당 옆 산자락에는 샘이 하나 있는데 예부터 이 우물을 옻물이라 하여 인근에서 많이 사용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물을 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보양사와 백운사 중간 지점쯤에 후생촌이라는 7호쯤 되는, 산기슭에 서향으로 자리한 마을이 있다.
백운사는 내운곡 제일 깊은 골에 위치한 절로서 1950년대 들어와 옮겨진 절이다. 원래 내운곡 입구에 있었으나 인접하여 민가가 들어서서 옮겨졌다.



봉화군에서 발간한 간이역이란 책자에 의하면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춘양 장날에는 장을 보려고 기차에서 내린 행렬이 1km나 길게 이어졌다고 하는데 옛 춘양의 사진을 보면 충분히 그러했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그때만 해도 자동차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고 지금은 34000명 정도의 군민 숫자가 그때는 10만 명 수준이었다는 것 그리고 예전에는 춘양이 경제적 중심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춘양역 철길을 넘어가는 길이 초행인데 역 앞에서만 보던 풍경 뒤로 깊은골짜기와 전답이 숨어있어 골골이 스며든 인적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을 닮았다. 예전에 석개재에 야생화 찍고  봉화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탈 때는 도대체 봉화 사람들은 어디서 살까 가 궁금했었다. 봉회에서 영주로 가는 파인토피아로를 지나면 보이는 것은 산뿐이 없으니까.

의양리 155번지 앞길에서 역사부지에서 발굴한 부처님을 모신 곳을 지나는데  앞선 이를 쫒다가 그냥 지나쳐 버려서 끝나고 다시 찾았다. 이선생 말씀에 의하면 그 부처님은 원래 일생에 하나의 소원은 들어주시는 분인데 요즘은 찾는 이가 없어서 1년에 한 번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으로 바겐세일을 하신다고 한다.



◆ 소로 2리
▷ 관석 : 춘양역 동쪽으로 재를 넘어가면 관석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뒤에는 절터가 있는데 그곳에 관석 암이 있어 관석이라 한다. 마을 앞에 반추 봉이란 산봉우리 위에 마을의 번창을 비는 돛대를 세워 놓는 풍습이 50여 년 전까지 지속되었다고 하며, 마을의 형상이 돛단배 모양이므로 돛 없이는 갈 수 없고 이 마을의 번영도 없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가매골 : 관석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하여 유래되었다.  수백 년 전에 고양 노인 김생원이 살았는데 그는 점을 잘 쳤다고 한다. 하루는 무엇을 이고 가는 여자를 보고 이고 가는 게 뭔지 맞추어 보라고 권하니 김생원이 밤 64개라고 했는데 이유인즉 서쪽으로 까치가 팔팔 나니 64라고 정확하게 맞추어 유명해졌다고 한다. 또한 가매골이 소로 300번지 일대로서 지형이 마치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고 가마골이라고도 전한다. 
▷ 방터골, 방기동 : 소로리 30번지 일대로서 검은 바위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옛날에 집을 많이 지어 놓았다고 하여 장터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흑석, 거믄돌 : 관석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현재 6가구가 살고 있으며 이 마을에는 3개의 검은 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거믄돌이라고 하며 현재는 2개의 검은 바위가 있다.
-샘골 : 거믄돌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끊어지지 않는 좋은 샘이 있는 골이라 하여 샘골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현재 그 샘은 없어졌다.
-객씨골, 객씨곡 : 소로리 90번지 일대로서 흑석 서쪽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며 북서쪽으로는 의양4리와 연접하여 있고, 뒷산에 여자같이 생긴 각시봉이 있어 각시 골이라고 불리다가 차츰 변형되어 객시골이라 하였다. 객시골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자생하여 주민 소득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재를 넘으니 모래재 푯말이 보이고 곧 너른 들( 봉화 기준)이 펼쳐져서 겉에서 보는 것과의  차이를 실감했다.

집 앞에 앉아계신 여든은 조이 넘으셨을 할머니께 인사드렸더니 간단히 물으신다."노는가벼?", "네", 대답도 간단히. 그 옆  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는 이런 더위 평생에 처음이라고 하신다. 추위는 몰라도 더위는 계속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니 당신 생전에 아직 처음인 더위는 좀 더 남아있을 수도 있다. 저 연세에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것은 당신들 및 자손들의 복이다. 가족으로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감자를 캐고 있었는데 승용차 한 대는 시동을 걸어두고 있었다. 이런 더위에는 몽을 식힐 공간이 당연히 필요하다.

더운 날씨에 걷는 것 반이고 쉬는 것이 반이라 예정한 곳 이전에 산길 양쪽에 앉아 길을 식탁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런 산길 누가 오겠어했는데 누가 왔다, 5명의 산악자전거 동호인들. 일행 중의 한 명이 먹여주지도 않고 운동만 한다고 농치는 것을 보니 그들도 시장했을 것인데 우리는 마침 김밥과 막걸리가 좀  남아 나눠먹을 수 있었다. 받는 이들나 주는 이들에게 모두 운 좋은 날.

어제 영월에서 출발했고 국립수목원에서 자고 오는 길이라 하니 외씨버선길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다.

부러운 사람들. 서울에선 한강변의 조밀한 자전거족들로 인해 포기했고 지금은 여건은 좋으나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몸이 유일한 작업도구인 농부의 생업에 지장이 있어서 가끔 동네 한 바퀴로 만족하고 있다.

꿈은 울진까지 가서 물회 한 그릇 먹고 돌아오는 것, 기약 없는 꿈이지만 계속 가지고 간다.

산악 자전거인들의 뒷모습이라도 찍어 놔야 했는데 난 먹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외씨버선길 표지와 캥거루 소나무



◆ 현동리
▷현동 (縣洞) : 小川部曲의 중심지였다, 小川 石城이 남아 있다. 창마을, 창촌 (倉村) :옛날에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마을로 부른다, 소천중고등학교 자리다.
▷장터 : 신구 장터로 나눈다. 구장터는 현동 서쪽이고, 신시장은 현동 소재지이다.
▷시동, 씨라리골(柴洞,時羅里洞) : 골이 깊고 숲이 무성하여 전쟁시에는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에 억새가 많아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억새풀에 베어 쓰라림을 맛 봐야 한다는 데서 "싸라리골"이란 말이 생겨나고 세월이 지나면서 씨라리골로 변했다.
▷살피재 : 임진란시 봉화 의병대장 류종개가 김인상, 윤흠신, 윤흠도와 더불어 의병을 거느리고 이 고개에서 싸우다가 모두 흉봉(凶鋒)에서 죽었다. 부근에 살피터, 높은터, 절골이 있다
▷자작정(自作亭) : 옛날부터 이곳에는 자작나무가 많아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파평 윤씨 집안에서 지나는 행인들을 위하여 자작나무 정자를 지어 쉬어가게 했다 한다.



봉화에서는 소나무만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뜻밖에 자작나무 숲을 만나서 놀랐는데 자작나무가 가로수가 되어 높은 터까지 계속 따라왔다. 높은 산 언저리에 자작나무가 많은 듯하여 찾아보니 화촉의 화는 자작나무를 말하며 옛날 촛불 대신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기 때문이고 팔만대장경도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하니 생활에 필요한 수종이었던 셈이다. 자작나무를 끼고 돌아가 느 산길은 일월산의 옛길(여기도 외씨버선길에 속한다.)을 생각나게 했다. 두 길모두 일제시대때 손을 본 길이 어선 지도...


일행 12명중 3분이 군자,


더운 날씨를 감안한 주최 측의 배려로 씨라리골 초입까지 올려둔 트럭을 타고 옛 노루재길을 넘고 카페에 들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목을 축이니 살만해졌다. 춘양역으로 가는 길을 소로리길을 경유했는데 입구는 조그만 굴다리인데 들어와 보니 엄청 넓은 들로 관석으로 이어진다.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들이 많아서 정감록의 십승지로 꼽혔을 것이라는 송 선생의 말이 금방 이해가 된다.

춘양역에서 헤어지고 다시 돌부처를 보러 간다.

동네 한쪽 끝에 단정한 정면 3칸 한옥에 모셔진 부처님은 예상외로 잘생기신 분이었다.

설명에 의하면 신라 말 고려초 10세기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한다고 하는데 수수한 모습이 요즘 절들이 경쟁적으로 행하는 불사에서 느끼는 싸구려 분위기가 없어서 좋았다.

바겐세일 중이신 부처님께 평범한 일상의 지속을 부탁드리고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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