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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Jul 15. 2018

메기랑 같이 살기

성장판  글쓰기 5기를 마치며

메기와 만나다.

애초에 메기를 찾으려  한 것은 물론 아니지.

그냥 있어도 힘든데 뭣하려 메기까지 스스로 넣어서 바삐 쫓기며 살겠어, 안 그래?


서울 집에 갈 때는 되도록 책방에 들려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것이 예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인데 어느 날 신정철 씨의 '메모 습관의 힘"을 만났지. 평소에도 생산성에 관한 책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는데 독서에 관한 기록이라 구입을 했어. 읽고 보니 좋아서 마침 그때 군에 간지 얼마 안 된 아들에게 붙여줬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아들이 전화가 왔어, " 아빠 좋은 소식이 있어서요, 제가 쓴 독후감이 군단장 표창을 받게 되었어요."
 "OMG!!!"  내가 알기론 그 상은 아들이 독후감으로 받은 최초의 상으로 우리 가족은 모두 매우 놀랐었어. 

(이 글은 아들이 안 보는 게 좋을 텐데..ㅎㅎ).
그 책의 힘인지, 메모 습관의 힘인지 아니면 우리 아들의 글 힘인지 그건 아직도 모르지. 다만 얼마 전 가족들이 얘기할 때 이 책 얘기를 하니까 아들이 한마디 하더군. " 응 ,  그 책 좋아".  내가 보낸 책을 읽은 것은 확실하지.

당연히 페북에서 신정철 씨를 팔로우했지.


어느 날 페북에서 카톡의 성장판이 뜬 거야 타고 난 호기심으로 성장판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사실 성장이란 단어가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젊어서 여러 가지로  좀 어색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요즘 사람들의 단면을 보게 되는 좋은 기회고 또 책에 대한 소개도 받을 수 있어서 그냥 눌러앉았어.

온라인 모임이 좋은 점이 가만있으면 아무도 개의치 않거든, 나이 란 것은 오프모임에선 가만있어도 어느 한쪽( 보는 사람들 혹은 당사자)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어요.  좀 젊었으면 오프모임에도 나갔을 텐데 하면서. 

초창기에는 나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두어 번  쥔장의 답변이 다른 모임에선 훨씬 나이 드신 분들과 같이 한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 어쨌거나 가끔은 카톡의  높은 숫자의 메시지 수에 부담을 느껴 한번에 본 것으로 처리도 하면서 지나는데 "3기 성장판 글쓰기" 공고를 본 거 거야,  메기를 만난 거지.


처음으로 하는 농사일을 거의 혼자 일을 하며 일에 대하여 또 내 감정에 대하여 차분하게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늘 하곤 있었지. 성장판 글쓰기의 구조가 내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반 강제적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하루를 고민하다 결정을 했어, 그래 메기랑 같이 살자.

그렇게 시작된 메기와의 동거가 3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분간 계속될 수도 있겠지.


메기와 같이 살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일에 쫒고 쫓기며 살았지만 지금은 사과와 자연에 쫓기어 사는데 전자가 마라토너라면 후자는 오리야, 안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젓는.... 농사일과 자연은 한가한 풍경이지만 자연은 시간을 못 맞추면 자비가 없어.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늘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판에 메기까지 끼어드니 정신이 없는 야. "써야 하는데 뭘 쓰지?, 뭘 써야 되지?" 늘 고민하고 지내다 첫 마감일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놓고 저녁 6시부터 앉아서 마감 몇 분전에 끝냈지.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낫지만 거의 같은 멕락이야.

그런데 왜 계속 메기랑 살고 있을까?


1. 화두 혹은 나를 거르는 거름망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을 잡아야 하고 글감을 잡으면 얼개가 나와야 하고 그리고 옷을 입히는 작업이 필요한데 대개는 글감을 잡으면 그다음은 좀 쉽지, 상대적으로. 언제나 시간에 쫓기어 쓰려고 생각한 것은 잃어먹고 쓰다 보면 다른 곳으로 가긴 하지만.

글감을 잡는 것이 마치 화두를 잡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늘 마음에 품고 살며 답을 구하는 과정이 비슷해 보여서 말이지. 몰론 화두를 잡아 본 적이 없으니 개념적으로 하는 말이지. 결국 성장판 숙제를 하는 과정이 곧 글을 쓰는 과정이 나를 거르는 과정이 된다고 생각하지. 어떤 글이 나오던 상관이 없는 것이 글감을 찾고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초점이 거든. 아 물론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성적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척 하긴 하지만... 그러나 글감이란 것이 결국은 내가 한 것이거나 내가 느낀 것에서 나오고 글감을 잡기 위해 한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을까?


2. 관찰력 증대를 위한 연습장


얼마 전 들은 김훈 씨의 강연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치밀한 관찰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특히 와 닿은 이유가 있지. 내가 매일 과원에 나가 일하지만  그 일들이 실제적 관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념적 관찰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요즘 나무들이 1차 여름잠을 자고 2차 성장을 하는 때이거나 혹은 2차 휴면에 들어갈 때인데 그 상태가 얼른 눈에 들지 않아. 생각해 보면 어떤 순서로 가지의 눈이 또 다른 가지가 되어 꽃눈 혹은 잎눈으로 마감되는지의 그림이 머리에 선명이 그려지지 않아요.

글을 잘 쓰려면 변하지 않는 듯 변해 가는 것들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이 김훈 씨가 얘기하는 "생을 통과해 나온 언어"가 되어 웃자라지 않을 텐데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나마 이런 연습도 없으면 갈 길이 더욱 멀거야. 

오늘 과원이 어제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런 하루하루 지나가면 사과가 달려있는 가을이 온다는 걸 생각하면 참 신나기도 하지만 눈이 참 어둡기도 하다는 생각도 하지.


3. 동료에게서 배우는 상호교감


내가 제일 못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참 글 잘 쓰는 이들도 많고 소재도 다양하여 읽는 재미와 함께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장점 중에 하나.


사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 농부에겐 없는 월요병이긴 하지만 숙제를 안 하면 일요일이 가면 안 되는 것이 큰 단점이고 늘 메기를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인데 나는 당분간은 좀 더 같이 살아야 될 것 같아. 아직 하산할 때가 아니란 말이지.


어때, 당신도  메기 한번 키워볼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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