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랑 같이 살기

성장판 글쓰기 5기를 마치며

by 사과농부 세네월

메기와 만나다.

애초에 메기를 찾으려 한 것은 물론 아니지.

그냥 있어도 힘든데 뭣하려 메기까지 스스로 넣어서 바삐 쫓기며 살겠어, 안 그래?


서울 집에 갈 때는 되도록 책방에 들려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것이 예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인데 어느 날 신정철 씨의 '메모 습관의 힘"을 만났지. 평소에도 생산성에 관한 책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는데 독서에 관한 기록이라 구입을 했어. 읽고 보니 좋아서 마침 그때 군에 간지 얼마 안 된 아들에게 붙여줬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아들이 전화가 왔어, " 아빠 좋은 소식이 있어서요, 제가 쓴 독후감이 군단장 표창을 받게 되었어요."
"OMG!!!" 내가 알기론 그 상은 아들이 독후감으로 받은 최초의 상으로 우리 가족은 모두 매우 놀랐었어.

(이 글은 아들이 안 보는 게 좋을 텐데..ㅎㅎ).
그 책의 힘인지, 메모 습관의 힘인지 아니면 우리 아들의 글 힘인지 그건 아직도 모르지. 다만 얼마 전 가족들이 얘기할 때 이 책 얘기를 하니까 아들이 한마디 하더군. " 응 , 그 책 좋아". 내가 보낸 책을 읽은 것은 확실하지.

당연히 페북에서 신정철 씨를 팔로우했지.


어느 날 페북에서 카톡의 성장판이 뜬 거야 타고 난 호기심으로 성장판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사실 성장이란 단어가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젊어서 여러 가지로 좀 어색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요즘 사람들의 단면을 보게 되는 좋은 기회고 또 책에 대한 소개도 받을 수 있어서 그냥 눌러앉았어.

온라인 모임이 좋은 점이 가만있으면 아무도 개의치 않거든, 나이 란 것은 오프모임에선 가만있어도 어느 한쪽( 보는 사람들 혹은 당사자)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어요. 좀 젊었으면 오프모임에도 나갔을 텐데 하면서.

초창기에는 나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두어 번 쥔장의 답변이 다른 모임에선 훨씬 나이 드신 분들과 같이 한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 어쨌거나 가끔은 카톡의 높은 숫자의 메시지 수에 부담을 느껴 한번에 본 것으로 처리도 하면서 지나는데 "3기 성장판 글쓰기" 공고를 본 거 거야, 메기를 만난 거지.


처음으로 하는 농사일을 거의 혼자 일을 하며 일에 대하여 또 내 감정에 대하여 차분하게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늘 하곤 있었지. 성장판 글쓰기의 구조가 내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반 강제적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하루를 고민하다 결정을 했어, 그래 메기랑 같이 살자.

그렇게 시작된 메기와의 동거가 3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분간 계속될 수도 있겠지.

메모습관의 힘.jpg
KakaoTalk_20180621_201205182.png


메기와 같이 살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일에 쫒고 쫓기며 살았지만 지금은 사과와 자연에 쫓기어 사는데 전자가 마라토너라면 후자는 오리야, 안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젓는.... 농사일과 자연은 한가한 풍경이지만 자연은 시간을 못 맞추면 자비가 없어.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늘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판에 메기까지 끼어드니 정신이 없는 야. "써야 하는데 뭘 쓰지?, 뭘 써야 되지?" 늘 고민하고 지내다 첫 마감일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놓고 저녁 6시부터 앉아서 마감 몇 분전에 끝냈지.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낫지만 거의 같은 멕락이야.

그런데 왜 계속 메기랑 살고 있을까?


1. 화두 혹은 나를 거르는 거름망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을 잡아야 하고 글감을 잡으면 얼개가 나와야 하고 그리고 옷을 입히는 작업이 필요한데 대개는 글감을 잡으면 그다음은 좀 쉽지, 상대적으로. 언제나 시간에 쫓기어 쓰려고 생각한 것은 잃어먹고 쓰다 보면 다른 곳으로 가긴 하지만.

글감을 잡는 것이 마치 화두를 잡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늘 마음에 품고 살며 답을 구하는 과정이 비슷해 보여서 말이지. 몰론 화두를 잡아 본 적이 없으니 개념적으로 하는 말이지. 결국 성장판 숙제를 하는 과정이 곧 글을 쓰는 과정이 나를 거르는 과정이 된다고 생각하지. 어떤 글이 나오던 상관이 없는 것이 글감을 찾고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초점이 거든. 아 물론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성적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척 하긴 하지만... 그러나 글감이란 것이 결국은 내가 한 것이거나 내가 느낀 것에서 나오고 글감을 잡기 위해 한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을까?


2. 관찰력 증대를 위한 연습장


얼마 전 들은 김훈 씨의 강연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치밀한 관찰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특히 와 닿은 이유가 있지. 내가 매일 과원에 나가 일하지만 그 일들이 실제적 관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념적 관찰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요즘 나무들이 1차 여름잠을 자고 2차 성장을 하는 때이거나 혹은 2차 휴면에 들어갈 때인데 그 상태가 얼른 눈에 들지 않아. 생각해 보면 어떤 순서로 가지의 눈이 또 다른 가지가 되어 꽃눈 혹은 잎눈으로 마감되는지의 그림이 머리에 선명이 그려지지 않아요.

글을 잘 쓰려면 변하지 않는 듯 변해 가는 것들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이 김훈 씨가 얘기하는 "생을 통과해 나온 언어"가 되어 웃자라지 않을 텐데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나마 이런 연습도 없으면 갈 길이 더욱 멀거야.

오늘 과원이 어제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런 하루하루 지나가면 사과가 달려있는 가을이 온다는 걸 생각하면 참 신나기도 하지만 눈이 참 어둡기도 하다는 생각도 하지.


3. 동료에게서 배우는 상호교감


내가 제일 못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참 글 잘 쓰는 이들도 많고 소재도 다양하여 읽는 재미와 함께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장점 중에 하나.


사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 농부에겐 없는 월요병이긴 하지만 숙제를 안 하면 일요일이 가면 안 되는 것이 큰 단점이고 늘 메기를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인데 나는 당분간은 좀 더 같이 살아야 될 것 같아. 아직 하산할 때가 아니란 말이지.


어때, 당신도 메기 한번 키워볼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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