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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Aug 19. 2018

비극속의 낙관 - 삶의 의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원제 (Man's Search fo Meaning: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와 번역본의 제목이 아주 다르지만 w저자의 이름으로 양쪽이 아우러지는 흔치 않은 경우인데 빅터 프랭클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원제는 책의 내용을 충실이 반영하고 있으나 “의미 정신치료학 개론”으론 대중성이 너무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책을 알았고 보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읽기 싫어서 버티던 책이다.

내 기억으론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존경하는 선생님이 빅터 프랭클의 책을 소개하시면서 뜨거운 물을 목에 부어 넣는 고문을 받는데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담아 두었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뜨거운 물의 온도를 낮추며 견뎠다는 일화를 말씀하셨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빅터 프랭클의 책은 내게  보고 싶지만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각오해야 하는 그런 책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성장판 독서모임에서인가 이 책의 사진을 보았고  또 책방에서 진열된 책들을 만나면서 이제 읽을 때가 된 것으로 이해하고 주문했다.
( 이 책에선 그런 일화가 나오지 않으므로, 아마도 다른 일화와 빅터 프랭클의 얘기를 함께 하셨을 수도 있었겠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치료학의 제3학파(제1학파- 프로이트, 제2학파-아들러)인 로고테라피의 창안자로서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1부는 전체 2/3 분량으로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일화 형식으로 서술하여 2부에서 소개하는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을 이끌어 낸다. 로고테라피의 로고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3부는 1983년 6월 서독의 제3회 로고테라피 세계대회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로고테라피에 대한 요점정리이다.

인터넷으로 보니 로고테라피 컨퍼런스는 2018년에도 3월 터키를 시작으로 유럽 브라질 등 총 11개국에서 11월까지 돌아가며 열리고 제4회 세계대회는 이번 달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것으로 되어 있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정신치료학임이 분명하다. 과문하여 우리나라 정신치료학에서 로고테라피의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바 없지만 근래 대형 책방에 진열된 빅터 프랭클의 책들을 보며 얼마 전 서점가를 풍미했던 아들러 시리즈를 생각했다.


1부의 강제수용소 체험들은 순화되고 정제된 표현덕에 생각했던 것보다 읽기에 많이 불편하지 않았고 2,3부의 로고테라피의 개념과 프랭클 박사의 논점이  프로이트처럼 원초적인 이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중점을 두어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어 진도가 빨리 나갔다. 여담이지만 책에 가끔 나오는 라틴어가 프랭클박사 (1905-1997)가 예전 세대 유럽 지식인의 임을 중간중간 상기시켜 주었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다

강제수용소의 체험 중에서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일화는 "미래에 대한 기대 갸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추운 날 극심한 발의 통증을 이기며 몇 키로 떨어진 작업장을 가며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다가  문득 "매일같이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져서 생각을 바꿨다. 앞에 있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제수용소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하고 그 자신과 문제는 그가 주도하는 그의 정신과학 연구대상으로 만들었다.


이 대목을 보며 나는 최근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혹은 쓰려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매주마다 글한 편을 제출하는 의무는 나의 선택이었지만 왜 쓰는가에 대한 뚜렷한 목적,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글감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며 같은 행위를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고 바로 그것이 글을 쓰려는 이유 혹은 써야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대목에서 든 스피노자의 <윤리학> 대목은 위빠사나 혹은 마음공부의 "알아차리기"를 연상하게 했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동부 해안의 자유의 여신상 보완으로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우자

수용소의 체험을 통하여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자유를 주장하며 그가 한 말이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두 번째는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 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미는 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 세 번째 길이다.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결국 인간의 삶은 각 개인 나름대로 부여한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절대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가치는 언제나 그 사람과 함께 있다............(생략)...... 실제로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차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든다.

로고테라피에서 얘기하는 많은 경우들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어서 더욱 피부에 와 닿는데 실직자들이 느끼는 신경질환 (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나 세계적으로도 많은 자살률 그리고 100세 시대의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인식 등이 그렇다. 저자의 눈에 비친 미국은 행복을 강요하는 나라라는 말을 했는데 우리나라는 그의 눈에 비친 미국보다 훨씬 심한 행복 중독에 걸려있다.


기독교의 원죄 혹은 불교의 여러 번뇌와 고통과도 맥을 같이하는 "비극속에서 낙관"이란 그의 발표 주제는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세 가지 비극적 요소 ( 고통, 죄, 죽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하는 것, 즉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비극속의 낙관(optimism)이란 말을  라틴어의 Optimum 즉 "최선"이라는 말이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가끔 지금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생각하곤 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던 내겐 선택의 자유가 있으며  돼지가 되든 성자가 되든 그것은 내 선택의 결과로 내 책임하에  나의 가치괸에 근거를 한 것이다.

물론 나이 든 사람에게 미래도 없고, 기회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 대신 과거 속에 실체,  즉 그들이 실현시켜썾ㄴ 잠재적 가능성들, 그들이 깨달았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 그 어느 누구도 과거가 지니고 있는 이 자산들을 가져갈 수 없다.


잘못 알고 있어서 늦게 만난 것이 아쉬운 책으로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읽으면서 이런저런 동양의 종교, 가치들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블렛포인트는 책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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