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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Sep 02. 2018

빈익빈 부익부, 자연의 법칙

쓰가루(아오리)를 수확하고...

우리 농원의 사과 수확은 8월부터 시작한다. 8월에 조생종 쓰가루 계열인 하향, 9월에 중생종인 홍로와 부사착색계인 히로사키 그리고 10월 말/11월 초에 만생종인 시나노 골드와 부사를 수확하면 끝이 난다. 꽃은 같은 시기에 피지만 수확기가 길게는 2 달반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경도, 보관성, 맛 등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조기낙과 비율도 수확기가 빠를수록 더 크다. 올해 쓰가루는 공격적인 자세로 방어하여 (붉게 되어 떨어질 것 같은 사과를 날 저녁에 선별 수확했다) 낙과는 전년도에 비해 반 정도 줄었으니 수확이 그만큼 더 돼야 하나 오히려 예년의 60% 정도에서 마감했다.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봄에 문제가 된 착과 된 열매가 떨어진 현상과 일부 나무의 해거리가 주된 사유로 생각된다. 수확량이 너무 적어서 미리 신청했던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 5kg씩 공급하여 못 받은 분은 안 계셨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올해는 그렇게 넘어갔으나 정작 문제는 내년이다.  올해 못 달은 사과들까지 내년에 달리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사과가 적게 달린 나무는 내년에는 더 적어질 수 있다. 빈익빈 부익부는 냉정한 자연의 법칙이다.


나무에게  CPU가 있을까?  어떻게 어떤 꽃눈은 (혹은 꽃눈이라고 생각된 것은)  과일을 달고 어떤 눈은 잎이 되는 걸까? 나무도 나름의 원칙에 의해 한정된 자원을 배분을 한다고 하고 일부 알려진 원칙도 있으나 세부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무는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본래 자신을 위한 성장을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무의 일반적인 선호도는 영양생장으로 자신의 잎과 줄기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고 생식 생장은 차선이다. 그러나 비상상황이 되면 생명체의 본능으로 많은 자식들을 낳아 씨를 퍼트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과농부의 입장에서는 사과나무를 너무 튼튼이 키우면 안 된다. 적당이 약하게 그러나 튼실한 사과를 만들게 키워야 한다. 튼튼한 나무- 꽃눈의 감소- 열매의 감소- 튼튼한 나무순으로 빈곤의 악순환이 된다.  반대로 사과가 너무 많은 경우는 자원의 고갈로 꽃눈 감소로 이어지고 빈곤의 악순환의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그에 반해 부익부 현상은 적당한 열매- 가지의 하향- 꽃눈 증가- 체격 유지-적당한 열매의 선순환 단계가 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냉정한 자연법칙이라면 열매가 적게 열린 밭은 나무만 키우는 사과나무장작 밭으로 되는 것외에 다른 길은 없는가? 냉정한 자연법칙이라고 하면 나무를 키우고 사과는 없게 되겠으나 우리는 그 자연법칙을 피하여 사과를 열리게 하도록 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나무줄기에 홈을 파서 영양공급을 저해시켜 나무에게 위기감을 갖게 하여 생식 생장을 유도

-가지들을 하향으로 유인하여 성장을 지체시키면서 꽃눈 유도

-땅에 접해있는 부분에 대목을 노출시켜 수세 약화

한 가지 이상의 방법을 같이 하기도 하며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내게는 짐 콜린스 (Jim Collins)가 그의 책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에서 언급한 플라이 휠 효과 (Fly Wheel Effect)를  연상하게 했다. 


플라이휠 효과(Fly Wheel Effect) 

짐 콜린스는 자동차의 기계장치인 플라이 휠에 비유하여 크고 무거운 플라이 휠을 돌리는 것은 힘이 들지만 계속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플라이 휠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고 무거워서 방해가 되었던 무게가 유리하게 작용하여 더 빨리 돌아가게 된다는 것으로 그 시점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는 시점이라고 하였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와 존 우드 감독이 이끈 UCLA 농구팀의 성공적인 적용 예로 언급이 된다. 위대한 기업으로의 도약이 조직원들의 일관되는 누적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문화유산 답사기 1권 서문

플라이 휠 효과를 얘기하면서 생각나는 비슷한 사례는 유흥준 씨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서문에 저자가 소개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조선시대 문장가 유한준 선생의 말이다. 책을 읽었을 때는 '알면 보이나니" 구절이 마치 "빈익빈 부익부" 구절과 같다고 생각하여 알아야만 보인다면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문제라고 생각하여 "많이 보면 보인다"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구절이다. "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가 곧 플라이 휠 효과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두 가지 관점의 공통점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노력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한편으론 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길 바라며 사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법칙과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당연히 현재와는 다른 조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지난주에 사과마이스터 동기 몇 명과 김천의 다른 동기생들의 과원을 방문했었다. 모두 올봄에 방문했던 곳으로 그중 한 곳은 젊은 친구 K의 과원으로 나무들이 모두 수세가 강하여 가지 대부분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서 걱정을 했던 곳이었는데 놀랍게도 잘 정리된 세력에 사과도 충분히 달려 있었다. K에 의하면 가지를 하향하고 대목을 노출시키니 수세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열심히 플라이 휠을 돌렸고 그 덕에 휠이 빨리 돌고 있었다.  


빈익빈 부익부의 자연법칙이 당연히 적용되지 않도록 내 사과나무를 위한 플라이 휠과 더불어 소득격차와 빈부격차가 증가하며 심화되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는 이들의 플라이 휠도 을 힘차게 돌아가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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